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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영 Sep 07. 2022

떠나는 계절, 주인 잃은 아기 옷

#27

평소 온라인 쇼핑몰에서 옷이나 신발을 자주 사던 아내는 출산이 임박하자 본인 것 대신 아기 옷을 하나둘 사들였다. 그러더니 아들이 태어난 이후로는 그 구매 개수와 횟수가 크게 늘었다. 어느새 집 한편엔 아기 옷을 쌓아두는 공간이 생겼다. 참고로 '옷 좀 사달라'며 시위하는 내게 아내는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물려 입거나 선물로 들어오는 아기 옷도 적지 않다. 중고라도 새것처럼 번듯한 옷들이 꽤 많다. 지인이나 친척들로부터 받은 선물 중엔 아이에게 입히고 사진으로 남기고 싶을 만큼 귀여운 옷이 있다. 빨간색 '조던' 우주복이 꼭 그랬다. 아기가 생후 100일을 지나며 외출하는 일이 이따금 생기면서, 그간 입히고 싶었던 예쁜 꼬까을 꺼내게 됐다.


문제는 아기의 성장 속도가 이 옷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헐렁했던 75사이즈가 제법 맞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스키니진으로 '변신'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조던' 우주복은 딱 두 번 입혀봤다

그래도 여러 번 입은 경우라면 덜 억울하다. 고작 딱 한 번 입혔을 뿐인데, 어느새 아기 몸보다 작아져 '영구 퇴출'되기도 한다. 야심 차게 새로 꺼낸 옷이 아이에게 딱(너무 딱) 맞을 땐 '아끼다 X 된다'는 선조들의 지혜를 새삼 깨우친다. 아이가 큰다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이런 부작용(?)도 긴다.


어쩌다 보니 편한 옷만 자주 찾게 되는 것도 고민이다. 내가 그렇다. 옷장엔 분명 걸칠 것들이 적지 않은데, 정작 입었을 때 딱 떨어지는 '내 몸' 같은 옷만 자주 찾게 된다. 아직 말은 못 하지만 아들은 내게 어떤 옷이 편한 지를 눈빛으로 전하는 것 같다. 물론 엄마아빠가 입히기 수월한 옷들(예컨대 똑딱이가 달린 우주복)에 손이 더 자주 가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옷은 많이 사고 얻어 놨는데, 아이는 하루가 달리 크고 입는 건 한정적이다 보니 한 두 번만 입고 유명을 달리하는 '친구들'이 많다. 속절없는 시간과 계절 속에서 아이는 커가는데 옷 그대로다. 엄마가 왜 중학교 교복을 그렇게 큰 치수로 골라줬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내가 엄마의 기대만큼 크지 못한 건 함정ㅠ)


그렇게 아들의 여름옷이 쌓여 간다. 겨우 생후 130일을 넘긴 아기에게도 몸에 맞지 않아 수납장으로 향한 옷이 한 보따리다. 이제는 사진으로만 남아 추억이 된 옷들.. 오늘도 아들의 옷을 검색하는 아내에게 난 이렇게 말한다. '그러지 말고 내 옷도 하나 좀 사. 난 정말 오래 입을 자신 있다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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