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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영 Sep 14. 2022

가족이지만, 아직 '패밀리'카는 없습니다

#29

아이가 생기고 차를 쓸 일이 꽤 많아졌다. 부모님 댁을 가거나 병원, 아렛 어디를 가더라도 차 없이 생후 4개월 아이와 함께 움직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다행히 아들은 차 타기를 꽤 좋아하는 편이다(아니 그렇다고 믿는다). 차를 타면 좀처럼 우는 일 없이, 잘 자거나 창밖 풍경을 보느라 쉴 새 없이 눈동자를 움직인다.


얼마 전 아이와 함께 나란히 타고 있던 아내가 "뒷좌석이 너무 좁은 것 같아. 좀 더 큰 차로 바꾸면 어떨까"라고 물었다. 가볍게 던져본 얘기였나 싶었는데, 이후 아내는 거실 TV로 여러 SUV 리뷰 영상을 돌려보며 속마음을 더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나도 자연스럽게 영상을 함께 보며 '와. 좋네' 하고 몇 번 감탄사를 내뱉었다.


사실 차를 바꾸는 건 여러모로 쉽지 않은 결정이다. 지금 타고 있는 준중형 승용차 '아반떼'뽑은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이제 갓 2만 km를 탄 '중고 신차'에 가깝다. 크기는 다소 아담하지만, 세 식구가 타기에 큰 불편은 없다(다만 아기 카시트좋은 걸 쓰고 싶다는 아내 말에 100만원 짜리 독일제를 장착했다). 차를 바꿀 정도로 주머니 사정이 썩 넉넉한 것도 아니다. 이렇게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차를 당장 바꿀 이유는 없다.


그런데 신차 리뷰 영상들 속에 단어 하나가 귓가에 맴돈다. 패밀리카. '3~4인 가족이 탈 수 있는 넓은 실내 공간' '갖은 짐들을 보관할 수 있는 넉넉한 트렁크' '뒷좌석 탑승자도 불편함 없는 널찍한 2열 레그룸'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확실히 '아반떼'보다는 좋아 보인다.


진정한 가족의 완성을 이루려면 '패밀리카'를 타야 할 것 같은 압박감도 든다. '왠지 조금 무리를 하면 외제 SUV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언젠가 태어날 둘째를 생각해서 미리 큰 차를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렇게 허파에 바람이 들었다가 이내 정신을 차려본다. 그래, 2년 탄 차를 바꾸기엔 역시 무리다.


문득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첫 차를 되짚어봤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끌고 오신 중고 '포터'였다. 뒷좌석이 따로 없는 1톤 트럭이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가 앞 좌석에 앉고 난 바로 공간(확실히 '2열'은 아니다)에 주로 탔다. 어린 나는 차에서 누워있을 수 있다며 그 자리를 좋아했다. 좁은 차 안에서 네 식구는 늘 시끄럽게 떠들었다. 피서철이면 넓은 짐칸에 텐트나 아이스박스 같은 짐을 싣고 꽤 많은 곳을 여행했다. 아버지의 차는 그 후로 꽤 많이 바뀌었지만, 첫 차 포터에 대한 기억이 가장 선명하다.


나도 결혼 후 처음(엄밀히 생애 처음) 마련한 첫 차 '아반떼'에 벌써 정이 많이 붙었다. 아이가 없던 신혼 때는 틈날 때마다 아내와 교외 드라이브를 즐겼다. 아내가 임신했을  이 차를 몰고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태교했다. 몸이 무거운 아내의 출퇴근을  돕기도 했다. 출산 후에는 어느 곳을 가도 우리 가족의 '' 노릇을 한다. 아직은 갓난아기인 아들과도 앞으로 많은 곳을 누비며 추억을 쌓을 것이다. 언젠가는 넓고 큰 패밀리카로 바꿀 날이 오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리 부부에게나 아이에게도 오래 기억될만한 첫 차를 좀 더 타야 겠다. 아니, 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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