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도영 Sep 17. 2022

생후 4개월, 카메라 앞이 제일 쉬웠어요

#30

최근 몇 년 동안 내 사진의 피사체는 대부분 아내였다. 연애 시절부터 신혼 초까지, 언제 어디서든 나는 그녀의 '찍사'를 자청했다. 나의 수고(?) 덕분에 아내는 적지 않은 인생 사진을 건졌다. 내가 주인공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예쁜 모습을 담아내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었다.


아들이 태어난 이후 스마트폰 사진 폴더엔 온통 '그'의 모습으로 꽉 찼다. 아이를 갖기 전엔 휴대폰 바탕화면이나 카톡 프로필을 아기 사진으로 도배하는 이들이 좀처럼 이해가 안 갔는데, 지금 내가 그런다.(그렇다고 단체 카톡방에 스팸처럼 아들 사진을 올리진 않는다) 비록 난 목이 늘어난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있어도, 아기는 예쁜 옷을 입혀 렌즈에 담고 싶은 것이다.


다행히 아들은 카메라 앞을 즐기는 편이다. 칭얼대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도, 렌즈만 들이대면 얼굴 근육이 풀린다. '일단 사진은 잘 나오고 봐야죠'하듯 표정이 밝아진다. 희한한 일이다. 생후 100일을 넘기고 얼굴 표정이 다양해지면서 촬영에 여유도 생겼다. 매일 같이 '방구석' 화보를 찍는 덕에 양가 부모님께 손주의 하루하루 성장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어제는 100일 기념 스튜디오 촬영을 했다(아내 수술 때문에 아들은 생후 143일에 '100일 촬영'을 했다). 지금까지연습이었다면 본 공연을 치른 셈이다. 아이는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사방을 요리조리 살폈다. 마치 자신의 끼를 한껏 펼칠 무대를 점검하는 것 같았다.


촬영은 두 벌의 옷을 입고 두 가지 콘셉트로 진행됐다. 첫 컷은 베이지색 멜빵바지를 입고 곰돌이 인형들과 함께, 두 번째 컷은 '슈퍼마리오와 친구들'이었다. 옷을 갈아입을 땐 찡찡거리며 불편한 기색을 비치던 아들은 카메라 앞에 서자 그간 연습했던 '천의 얼굴'을 뽐냈다. 촬영 작가님은 '아이 표정이 너무 좋아요' '모델이 따로 없네~' '아이구, 너무 귀엽다!' 라고 연신 칭찬했다. 내가 가르친 것도 아닌데, 왠지 어깨가 으쓱해졌다.

You've got a friend in me; 어느 쪽이 인형일까요

아들의 활약 속에 1시간 정도 예상했던 촬영은 20분 만에 마무리됐다. 덕분에 나와 아내의 체력도 크게 아꼈다. 얘기를 들어보니 아이가 계속 우는 통에 촬영 애를 먹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효자 아들아 고맙다.'


사실 처음엔 이런 스튜디오 촬영이 달갑지 않았던 나다. 아이 둔 부모에게 벌이는 상술 같기도 하고, 공장 같은 곳에서 찍은 사진이 얼마나 가치 있을지 의문이었다. 50일, 100일 촬영을 경험하며 생각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소중한 추억 하나를 더 선물한 것 같아 뿌듯하다. 하긴, 생각해보면 남는 건 사진이기도 하니.


앞으로도 꽤 오랜 시간 내 사진의 주인공은 아들일 것 같다.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엄마아빠와 함께 하는 순간들을 남겨 시리즈 앨범으로 만들 생각이다. 내가 가끔 오랜 앨범을 꺼내 보며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 듯, 내 아이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전 14화 가족이지만, 아직 '패밀리'카는 없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