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도영 Sep 04. 2022

아들아,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니

#26

"내가 하루 동안 XX이 봐줄게. 너희도 푹 좀 쉬고."

누나가 건넨 뜻밖(?)의 제안에 가슴이 뛰었다. 1박 2일이라니.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결코 불행한 건 아니었지만, 우리 부부에게 찾아온 해방의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건 기회야.'


대망의 디데이를 앞두고 아내와 나는 1박 2일 일정 짜기에 신이 났다. 실제로 주어진 시간은 24시간 정도. 잠자는 8시간 정도를 빼고 16시간은 의미 있고 알찬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호캉스? 영화관? 근사한 레스토랑? 무얼 상상해도 즐겁지 아니한가.


줄이고 줄였지만 1박 2일 아기 짐은 작을 수 없었다. 젖병 6개부터 손수건과 기저귀 한 뭉치, 장난감 그리고 역방쿠(역류방지쿠션) 등등. 한 보따리 짐을 챙겨 누나네 도착하니 9살, 7살 조카들이 반겼다. 고모와 고모부, 형, 누나와 함께라면 아이도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겠지.


덕분에 오랜만에 아내와 연남동 데이트를 즐겼다. 집에서 버스로 10분이면 닿는 곳이지만, 큰 수술 후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닌 아내를 위해 차를 끌었다. 금요일 오후, 꽉 막힌 서울 시내 운전에도 콧노래가 흘렀다. 늘 그랬듯 둘이서 음식 세 접시를 주문해 배를 든든히 채웠다. 연남동의 '불금'도 구경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해도 모자란 시간인데, 자꾸 두고 온 아들이 눈에 밟힌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느새 아이 사진을 쳐다보며, 자리엔 없는 '그 녀석'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대화 주제가 그랬다.


그때 누나가 보내온 사진과 영상. 사촌 형, 누나와 재밌게 놀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었다. 흠, 뭐지 이 배신감은. 사실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 엄마아빠 없이도 해맑게 웃으며 잘 지내는 아들의 모습에 왠지 모를 '서운함' 한 스푼. 그래도 보채지 않고 잘 지내고 있는 것에 대한 '안도' 한 스푼. 혹시나 낯선 곳에서 잠은 잘 잘까 하는 '걱정' 한 스푼. 그리고 맡겨놓은 지 2시간도 채 안돼 아들이 눈에 선한 '보고픔' 한 스푼까지. 이게 부모 마음이란 걸까.


결론적으로 우리 부부는 연남동 외식 후 집으로 돌아와 그간 못 잔 잠을 청하는데 시간을 모두 썼다. 사실 다른 어떤 것보다 그게 제일 필요했다. 온전한 휴식 말이다.


다음 날 우린 한달음에 아들을 만나러 갔다. 다행히 그리고 여전히 아이는 잘 지내고 있었다. 매형은 "세상 이렇게 순한 아이가 없다"며 오랜만에 갓난아이를 봐서 힐링이 됐다고 말했다. 내가 "하루 더 봐주실래요?"라며 농을 던지자, 옆에 있던 누나가 서둘러 손사래를 쳤다. '역시 고모는 고모다. 이모가 아니다.'(영화 '리틀포레스트' 中)


집에 돌아온 아들은 그간 엄마아빠가 고대하던 '첫 뒤집기'를 선보였다. 늘 오른쪽 어깨가 걸려 몸 전체가 못 넘어갔는데, 그 '벽'을 처음 넘어선 것이다. 아내와 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외박의 효과인 건가. 문득 거실 한편에 둔 디데이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D+130'. 태어난 지 130일 되는 날, 아이는 첫 외박과 첫 뒤집기에 성공했다.

이전 11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