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란티어 제2화: 9/11이 만든 회사

테러와의 전쟁, 그리고 PayPal 마피아의 복수

by 크리슈나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오전 8시 46분.


미국항공 11편이 뉴욕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에 충돌했다.

17분 후, 유나이티드항공 175편이 남쪽 타워를 들이받았다.

오전 9시 37분, 미국항공 77편이 펜타곤에 추락했다.

오전 10시 3분, 유나이티드항공 93편이 펜실베이니아 들판에 떨어졌다. 승객들이 테러범과 싸우다가.

그날, 2,977명이 죽었다.

미국은 충격에 빠졌다. 세계는 경악했다.

그리고 3,000km 떨어진 캘리포니아 팰로앨토에서, 한 남자가 TV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피터 틸.

그는 막 PayPal을 eBay에 15억 달러에 매각한 33세의 억만장자였다. 성공한 기업가. 벤처 투자자로의 전환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이날,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회고했다.

"9/11은 제 세계관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기술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는 낙관적 믿음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취약했습니다."

막을 수 있었을까?

9/11 이후 몇 주 동안, 미국 전역에서 같은 질문이 반복됐다.

"이걸 막을 수 있었을까?"

2002년, 의회가 구성한 9/11 위원회는 2년간 조사를 진행했다. 2004년 발표된 567페이지 보고서의 결론은 충격적이었다.

정보는 있었다.

FBI는 2001년 7월, 애리조나 지부에서 의심스러운 중동인들이 비행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팬보스 메모"라고 불리는 이 문서는 본부로 전달됐지만, 우선순위가 낮았다.

CIA는 2000년 1월부터 알카에다 조직원 두 명이 미국에 입국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FBI나 국토안보부에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NSA(국가안보국)는 테러범들의 국제 전화를 감청했다. "무언가 큰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단서들을 포착했다.

국무부는 비자 발급 기록을 갖고 있었다. 일부 테러범들은 비자 신청서에 의심스러운 내용을 적었다.

문제는 연결이 안 됐다는 것이다.

9/11 위원회 보고서는 명확히 지적했다:

"가장 중요한 실패는 정보 공유의 실패였다(The most important failure was one of imagination and information sharing)."

각 기관은 자기들만의 시스템을 썼다. 서로 다른 데이터베이스, 서로 다른 보안 등급, 서로 다른 조직 문화.

FBI와 CIA는 경쟁 관계였다. 정보를 공유하기보다는 숨겼다. 각자의 성과를 내는 게 우선이었다.

만약 모든 정보가 한 곳에서 연결됐다면?

아마도 누군가는 패턴을 봤을 것이다.

"비행 훈련받는 중동인 + 알카에다 조직원의 미국 입국 + '큰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감청 내용"

이 세 가지를 연결하면?

비행기 납치 테러.

하지만 아무도 연결하지 못했다. 시스템이 없었으니까.

피터 틸은 이 문제에 사로잡혔다.



PayPal 마피아의 다음 목표


9/11 당시 피터 틸은 이미 실리콘밸리의 전설이었다.

1998년, 그는 맥스 레브친과 함께 Confinity를 창업했다. 초기 제품은 Palm Pilot용 암호화 결제 시스템이었다. 잘 안 됐다.

1999년, 일론 머스크가 X.com이라는 온라인 은행을 시작했다. 두 회사가 2000년 합병했다. 내부 권력 투쟁 끝에 머스크는 CEO에서 밀려났고, 틸이 CEO가 됐다. 회사 이름을 PayPal로 바꿨다.

PayPal은 eBay 판매자들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온라인에서 안전하게 돈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해 줬다. 사기를 막는 시스템도 만들었다.

2002년 2월, eBay가 PayPal을 15억 달러에 인수했다.

틸의 지분은 약 5,500만 달러 가치였다. 33세에 수천만장자가 됐다.

그리고 그는 다음 문제를 찾기 시작했다.

PayPal이 해결한 문제는 온라인 거래의 신뢰였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안전하게 돈을 주고받게 만들었다. 사기를 탐지하고 막았다.

9/11 이후, 틸은 훨씬 더 큰 문제를 봤다.

정보의 연결과 신뢰.

테러를 막으려면, 정보를 연결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시민의 자유를 침해해선 안 된다.

이 모순을 어떻게 풀 것인가?



알렉스 카프와의 운명적 만남


2003년 초, 피터 틸은 스탠퍼드 시절 친구를 다시 만났다.

알렉스 카프.

두 사람은 1980년대 후반 스탠퍼드에서 만났다. 둘 다 철학과 법학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그 후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

피터 틸의 여정:

1989년: 스탠퍼드 철학과 학사

1992년: 스탠퍼드 법학 박사

1993~1996년: 뉴욕 법률회사 변호사 (7개월 만에 그만둠)

1996~2002년: 금융, 기술 투자, PayPal 창업

2003년: 억만장자, 다음 도전 모색

알렉스 카프의 여정:

1987년: 하버포드 대학 법학 학사

1989~199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 철학 박사

전공: 신플라톤주의 (Neoplatonism)

박사논문: 플로티노스의 일자(一者, The One) 개념

2000년~: 법률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운영

두 사람은 극과 극이었다.


피터 틸:

보수주의자, 공화당 성향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신봉

정부 개입 최소화 주장

비즈니스와 투자에 능숙

냉정하고 계산적


알렉스 카프:

진보주의자, 사회민주주의 성향

인권과 시민 자유 옹호

정부의 적극적 역할 긍정

학계 출신, 철학자

열정적이고 이상주의적


하지만 9/11 이후, 두 사람은 한 가지에 동의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

독일에서 배운 교훈

카프가 틸의 제안을 바로 수락한 건 아니었다.

사실, 처음엔 거부했다.

"저는 철학자입니다. 국가 안보 비즈니스는 제 영역이 아닙니다."

하지만 틸은 설득했다. 그리고 카프 자신의 경험이 마음을 바꿨다.

1990년대, 카프는 독일에서 7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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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철학, 법학을 전공| 화가 | 작가 | AI·반도체·기업분석, 사유의 결로 꿰어진 이야기들, 다양한 분야의 통찰을 삶의 층위를 담아 저만의 방식으로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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