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함 4화: 현대사회와 '보여주기'의 시대

진짜 확신이 있으면 증명할 필요가 없다.

by 크리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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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장, 문을 열고 들어가면 큰 음악, 하이톤 목소리로 떠드는 사람들, 탈의실과 목욕탕에서조차 끊임없이 이어지는 수다. 요가복은 형광색으로 눈이 부시고, 에어로빅 음악은 귀가 먹을 듯 크다. 때로는 생동감을 준다고 느낄 수도 있고 때로는 피곤하다.


튀고 싶어 안달 난 사람도 있고 요란한 차림은 그래도 예쁘게 봐주고 싶고 귀여운 편이다. 그런데 특히 특이한 한 사람이 있었다. 하이톤 목소리로 락커룸을 돌아다니며 모르는 사람에게도 말을 걸었다. 무례하게 참견하고, 평가하고, 조언했다.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이렇게 해야지", "어머 그거 어디 거예요?". 눈은 항상 부릅떠 있었고, 목소리는 공간을 지배했다.


처음에는 참았다. '원래 헬스장이 이런가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견디기 힘들어졌다. 운동하러 가는 게 아니라 소음을 견디러 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1년 회원권을 끊었기에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최근, 수영을 하느라 같은 공간의 헬스장을 옮겼다.


첫날,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조용했다. 음악이 없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운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락커룸도 조용했다. 목욕탕도 조용했다. 옷차림도 수수했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아무도 참견하지 않았다.


평안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아, 세상에는 이런 곳도 있구나. 나는 그동안 "헬스장은 원래 시끄럽다"라고 믿으며 살았구나.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조용한 헬스장도 있었다. 은은한 공간도 있었다. 내가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헬스장만 그런 게 아니구나. 세상 전체가 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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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시끄러운 게 정상"이라 착각하는가


시끄러운 헬스장의 사람들은 때로는 운동에 집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피해를 주고 있다는 걸 모른다.


그들은 "친근하다"라고 생각한다. "활기차다"라고 생각한다. "에너지 넘친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용한 공간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소음이 과할 수도 있고 경계 침해가 될 수도 있다.


요란한 사람들은 왜 모를까?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헬스장의 문화가 그랬다. 큰 음악, 화려한 옷, 과장된 몸짓, 시끄러운 목소리. 모든 것이 "더 크게, 더 강하게, 더 눈에 띄게"를 조장했다. 그 환경에 오래 있으면, 그게 정상이 된다. 조용한 사람이 이상해 보인다. 은은한 사람이 소극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현대 사회 전체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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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과시가 미덕이 된 세상


SNS를 열면 모두가 "보여주고" 있다.


여행 사진, 운동 인증, 음식 사진, 자기 계발 루틴, 아침 기상 시간, 독서 기록. 하루 24시간을 쪼개어 증명하고, 인증하고, 과시한다.


왜?


"보여주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좋아요와 댓글이 존재의 증명이 되었다. 팔로워 숫자가 가치의 척도가 되었다. 아무도 보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래서 더 크게, 더 화려하게, 더 과장되게 보여준다.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은은하게 존재하는 사람은 "존재감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틱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모든 플랫폼이 "더 자극적으로, 더 짧게, 더 강렬하게"를 요구한다. 알고리즘은 조용한 것을 걸러낸다. 은은한 것은 추천되지 않는다.


결과는?


사람들은 점점 더 시끄러워진다. 목소리를 높이고, 몸짓을 과장하고, 존재감을 만들려 애쓴다.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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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철학, 법학을 전공| 화가 | 작가 | AI·반도체·기업분석, 사유의 결로 꿰어진 이야기들, 다양한 분야의 통찰을 삶의 층위를 담아 저만의 방식으로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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