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결국 가면을 벗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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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이 사람이 좀 의아했다.
새 회원의 락카를 안내하는데 대충 형식적으로 하고, 헬스 머신 사용법을 요청하니 기본값은 한다. 나는 속으로 이 사람은 삶이 피곤하거나 좀 귀찮은가 보다고 생각했다. 살짝 우울증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민은 헬스장 강사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 가는 달라졌다. 열심히 일했고, 겸손해 보였고, 은은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과시하지 않았고, 조용히 자기 일을 했다.
생각해 보니 첫 만남부터 일부러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으려고 억지로 웃고 과장하지 않는 게 오히려 나는 이 사람이 진짜라고, 다른 강사들이 과장되고 시끄러운 것에 비해, 지민은 차분하고 자연스러웠다. '아, 이 사람은 진짜 은은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좀 관심을 줬다. 존중했고, 응원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지민이 변했다.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어떤 이해관계가 얽혔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다. 냉랭해졌다. 인사도 건성으로 했다. 눈빛이 달라졌다.
그리고 시작됐다. 은근한 반란.
직접적이지 않았다. 교묘했다. 내 앞을 슬쩍 지나가며 방해하거나, 다른 회원과 이야기하면서 나를 흘끔 보며 웃거나. 시설물이용에도 불편을 줬다. 아주 미묘하게, 그러나 집요하게, 오랫동안.
그리고 어느 날,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
샤워를 하러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지민이 갑자기 나타나 내게 다가왔다. 나는 벌거벗고 있었고, 지민은 옷을 입고 있었다.
"엊그제 운동하다 다치셨다면서요?"
락커룸 사람들이 다 듣는 소리로. 나는 한 번도 운동하다 다친 적이 없었다. 크로스핏을 2주 정도 해보다가 공기가 안 좋고 관절에 무리가 가는 것 같아서 그만뒀을 뿐이다. 하지만 지민은 그걸 "부상"으로 만들어 떠들었다.
그 순간, 나는 길게 사실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벌거벗고 서 있는 내가, 옷 입고 웃고 있는 지민에게 뭘 말할 수 있었겠는가. 상황의 불균형. 공개적 꺼림칙함. 가장 무방비한 순간을 골라서 공격한 것이다.
나는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 늙었잖아요~"
스스로를 낮췄다. 사실 나는 지민보다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내가 깎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 나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지민의 허리를.
나는 지민이 크로스핏 하다 허리를 다쳤다는 짐작하고 있었다. 보여주기식 무리한 턱걸이를 할 때 억지반동을 주며 바른 자세 S커브를 유지하지 못하고, 허리가 밖으로 많이 밀려 나오는 것도 봤다. D자 자세로 억지로 무리한 반동주며 많이 하려다 보니 디스크가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근데 혹시... 턱걸이할 때 허리 조심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S커브 유지 못하면 디스크 위험할 수 있거든요."
그녀를 위한 진심이었다. 진짜 좋은 팁이라고 생각했다. 그 짧은 순간, 얄밉기도 했다. 발가벗긴 채로 나를 망신 주는 사람. 하지만 그 감정보다는, 가슴에 손을 얹고 거짓 없이 말하면, 나는 진심으로 지민의 허리를 지켜주고 싶었다.
공격받는 순간에도, 망신당하는 순간에도, 나는 상대를 해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돕고 싶었다.
그게 뱀과 나의 차이였다.
그 후로도 지민의 반란은 계속됐다. 새벽 6시부터 헬스장이 끝나는 시간까지, 지민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내가 내 스케줄상 게릴라 식으로 시간을 바뀌어 가도 그녀는 항상 거기 있었다. 내 주위를 맴돌고, 끈질기게.
하지만 나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끄덕도 안 했다. 그냥 내 운동에 집중했다. 사실 관심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지민은 결국 포기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 근처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아, 이 사람은 뱀이었구나.
지민에게서 드러난 이러한 특징들은 '뱀'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그 패턴을 자세히 분석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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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유혹 기술: 순수함을 연출한다
뱀은 처음부터 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순수해 보인다. 가장 겸손해 보인다. 가장 은은해 보인다. 그게 뱀의 무기다.
지민이 그랬다. 다른 강사들이 시끄럽고 과장되게 구는 동안, 지민은 조용하고 차분했다. 대비 효과였다. 다른 사람들이 힘을 주는 동안, 지민은 힘을 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연출이었다.
진짜 은은한 사람은 일관된다. 상황이 바뀌어도, 이해관계가 생겨도, 시간이 지나도 같다. 하지만 연출된 은은함은 조건부다. 얻을 게 있을 때만 은은하다. 필요 없어지면 본색을 드러낸다.
♤뱀은 사람을 유혹하는 재주가 있다.
1. 순수해 보인다
말투가 부드럽고, 눈빛이 맑고, 웃음이 자연스럽다. "이 사람은 진짜구나" 싶게 만든다.
2. 겸손해 보인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고, 과시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욕심이 없구나" 싶게 만든다.
3. 동정심을 유발한다
때로는 약해 보이고, 힘들어 보이고, 도와주고 싶게 만든다. "이 사람을 지켜줘야지" 싶게 만든다.
4. 초반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먼저 잘해주고, 배려하고, 챙기는 것 같다. "이 사람은 내게 관심이 있구나" 싶게 만든다.
그리고 당신은 마음을 연다. 신뢰한다. 더 많이 준다.
그게 뱀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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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관계가 생기는 순간, 본색이 드러난다
뱀을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해관계를 관찰하는 것이다.
진짜 은은한 사람은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일관된다. 손해를 봐도, 얻을 게 없어도, 그 사람답다. 왜냐하면 은은함이 전략이 아니라 본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뱀은 다르다. 뱀에게 은은함은 전략이다.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이해관계가 생기면, 본색이 드러난다.
지민의 경우: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매우 열심히 일했고 나는 그녀가 진심으로 빛나고 잘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지민의 계산이 바뀌었다. 이유는 모른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러자 순간 돌변했다. 친절은 사라졌고, 배려는 없어졌고, 겸손은 연기였음이 드러났다. 대신 차갑고, 공격적이고, 계산적인 본모습이 나타났다.
이게 뱀의 특징이다.
조건부 친절. 조건부 은은함. 조건부 겸손.
조건이 충족되면 천사처럼 굴고, 조건이 사라지면 본색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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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한 반란: 뱀의 보복
더 흥미로운 건, 뱀은 직접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면으로 싸우지 않는다.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명백한 적대를 드러내지 않는다. 왜? 그러면 자신의 이미지가 망가지니까. "은은하고 순수한 사람"이라는 가면이 벗겨지니까.
대신 은근하게 괴롭힌다.
지민이 그랬다. 직접적인 말이나 행동은 없었다. 하지만 미묘한 방해, 마주침, 아주 교묘하게, 증거 남기지 않고, 오랫동안.
이런 행동은 피해자를 꽤나 불편하게 만든다. 명백하지 않으니 항의할 수도 없고, 증거가 없으니 설명할 수도 없다. "내가 예민한 걸까?" 자기 의심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것도 뱀의 전략이다.
뱀은 상대가 반응하기를 기다린다. 화내거나, 대들거나, 똑같이 공격하기를. 그러면 "저 사람이 먼저 그랬어요"라고 할 수 있으니까.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중요한 건,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뱀은 반응을 먹고 산다. 반응이 없으면, 재미없어진다. 효과가 없으면,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포기한다. 다른 타깃을 찾는다.
지민이 그랬다. 내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자, 어느 순간 포기했다. 내 근처에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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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모든 걸 드러낸다
뱀을 구분하는 두 번째 방법은 "시간"이다.
연기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처음 몇 주, 몇 달은 완벽할 수 있다. 하지만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균열이 생긴다.
왜?
연기는 에너지가 든다. 자신의 본성을 억누르고, 다른 사람인 척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조금씩, 실수가 나온다. 말과 행동이 어긋난다. 상황에 따라 태도가 달라진다.
진짜 은은한 사람은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다. 그냥 자기 자신이면 되니까.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일관된다. 피곤할 때도, 기분 안 좋을 때도, 바쁠 때도 그 사람답다.
하지만 뱀은 다르다. 피곤하면 본색이 나온다. 기분 안 좋으면 가면이 벗겨진다. 이해관계가 생기면 태도가 바뀐다.
그래서 급하게 사람을 판단하지 마라.
처음 몇 번 만난 사람을 "이 사람은 진짜 좋은 사람이야"라고 확신하지 마라. 시간을 둬라. 관찰하라. 다양한 상황에서 보라.
- 여유로울 때만 친절한가, 바쁠 때도 친절한가?
- 얻을 게 있을 때만 겸손한가, 없어도 겸손한가?
- 당신이 필요할 때만 챙기는가, 당신이 도움 안 될 때도 챙기는가?
시간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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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관성: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선
뱀을 구분하는 세 번째 방법은 "일관성"이다.
진짜 은은한 사람은 상황에 관계없이 일관된다.
- 윗사람 앞에서나 아랫사람 앞에서나 같다.
- 사람 많을 때나 적을 때나 같다.
- 혼자 있을 때나 남과 있을 때나 같다.
왜? 은은함이 전략이 아니라 본성이기 때문이다. 꾸밀 필요가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면 된다.
하지만 뱀은 일관성이 없다.
- 윗사람 앞에서는 겸손하고, 아랫사람 앞에서는 오만하다.
- 사람 많을 때는 친절하고, 적을 때는 무시한다.
- 혼자 있을 때와 남과 있을 때가 완전히 다르다.
왜? 은은함이 연기이기 때문이다. 목적에 따라 켜고 끈다.
지민을 보라. 회원들 앞에서는 은은하고 겸손했다. 하지만 스스로 마음이 바뀌거나 이해관계가 생기면 완전히 달라진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래서 다양한 맥락에서 사람을 관찰하라.
회의실에서만 보지 말고, 식사 자리에서도 보라.
공식 석상에서만 보지 말고, 일상에서도 보라.
잘 나갈 때만 보지 말고, 힘들 때도 보라.
일관되는가? 그게 진짜다.
일관되지 않는가? 그게 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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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의 최종 테스트: 반응이 없을 때
뱀을 확인하는 가장 결정적인 방법이 있다.
반응하지 마라.
뱀은 반응을 원한다. 당신이 화내거나, 흔들리거나, 반응하기를. 그래야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게임을 계속할 수 있다.
하지만 반응이 없으면?
뱀은 당황한다. 효과가 없으니까. 재미가 없으니까. 의미가 없으니까.
그리고 결국 포기한다.
지민이 그랬다. 나를 은근히 괴롭혔지만, 내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자 결국 사라졌다. 왜? 같이 게임을 할 상대가 아니다. 반응도 없고, 에너지도 안 빼앗긴다. 그런 류는 트럭으로 와도 아무 미동할 가치도 없다.
진짜 은은한 사람은 반응과 상관없다. 당신이 반응하든 안 하든, 그 사람답다. 왜냐하면 당신에게 뭔가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뱀은 반응에 의존한다. 반응이 목적이니까. 반응이 없으면 다른 타깃으로 간다. 이 무반응은 뱀에게 재미가 없어짐, 에너지의 고갈을 넘어 자기 존재감의 괴멸로 인한 초조와 불안함을 안겨준다. 그래서 뱀 앞에서는:
화내지 마라
설명하지 마라
반응하지 마라
그냥 무시하라. 당신의 운동에, 당신의 일에, 당신의 삶에 집중하라."
뱀은 알아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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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은은함 vs 연출된 은은함
정리하자.
진짜 은은한 사람:
- 시간이 지나도 일관된다
-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같다
- 상황에 관계없이 그 사람답다
- 얻을 게 없어도 친절하다
- 반응과 무관하게 존재한다
연출된 은은함 (뱀):
- 시간이 지나면 본색이 드러난다
- 이해관계가 생기면 돌변한다
- 상황에 따라 태도가 바뀐다
- 얻을 게 없으면 차갑다
- 반응이 없으면 포기한다
차이는 명확하다. 문제는 처음에는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 시간을 두고 관찰하기
- 다양한 상황에서 보기
- 이해관계가 생길 때 주목하기
- 일관성 체크하기
- 반응 없이 지켜보기
급하게 판단하지 마라. 서두르지 마라. 시간은 모든 걸 드러낸다.
당신의 에너지는 진짜 은은한 사람들을 위해 아껴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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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서는, 또 다른 역설을 다룰 것이다. 은은해지려고 노력하는 것도 또 다른 힘주기라는 역설. 은은함을 "연습"한다는 것의 모순. 자기 수용과 자기 계발의 경계.
6화 예고: "은은함의 역설"
힘을 빼려고 노력하는 것도 힘주기다. 어떻게 진짜 자연스러워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