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녹 채 10화

소설 녹채 10화 고요히 밟고 지나간 자리

여름의 재회, 서로 다른 길

by 크리슈나


7월 하순의 햇살이 눈부시게 따갑다. 지영은 치악산 밑 부곡리에 위치한 작업실의 창으로 가까이 손에 잡힐 듯 우뚝 솟은 초록의 산을 바라보았다. 만 가지의 초록의 향연이 느껴졌다. 산 밑에 터를 잡은 작업실은 여름에 특히 좋다.


집에서 나와 오 분 정도만 걸어 올라가면 치악산 향로봉 쪽 입구가 나온다. 입구부터 온갖 앙증맞은 보라색 달개비 꽃들이 무릎높이에서 허리까지 지천으로 널려있고 분홍빛 물봉선화도 지루하지 않게 반겨준다.


산죽이 널려있는 입구를 조금 걸어가면 부곡폭포가 0.6km 이어지는데 계곡물이 얼마나 깨끗하고 시원한지 맑은 물소리를 듣노라면 매일 신선이 된다. 1시간 정도 걸어서 계곡이 끝나는 데 까지 산책을 한 지영은 생강나무를 특히 좋아한다. 다양한 나무의 싱그러운 자태를 감상하며 생강나무 가지를 조금 꺾어 맛을 보았다. 달콤하면서 쌉쌀한 생강 맛이 났다.


전화벨이 울렸다. 금희가 근처 있으니 잠깐 들른다고 연락이 왔다. 원주 우산산업단지 내 업체를 방문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어차피 금요일이라 차가 막히는 시간이니 지영의 작업실에 차를 마시러 온다 해서 지영은 서둘러 집으로 내려갔다.


현관 입구 옆에 우뚝 서있는 소나무 자태를 감상하며 지영은 마당에 있는 조그만 샘물에 손을 담갔다. 더위를 좀 식히고 있으니 특유의 검고 진한 눈썹이 먼저 눈에 띄는 금희가 지영과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으며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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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지영아!"


금희가 두 팔을 벌리며 다가온다. 3개월 만에 보는 얼굴이다.


포옹을 나누며 지영은 금희의 변화를 느꼈다. 예전보다 어깨가 더 당당해 보이고, 눈빛도 더 예리해졌다. 승진을 앞두고 있다는 게 온몸에서 느껴진다.


"와, 여긴 정말 별천지네. 공기부터 다르다."


금희가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한다.


지영은 그녀를 작업실로 안내했다. 문을 열자 물감 냄새와 함께 캔버스들이 곳곳에 걸려 있는 공간이 드러난다.


"이게 다 네 작품이야?"


금희가 작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바다를 그린 그림, 산을 그린 그림, 그리고 추상적인 작품들까지. 모두 지난 3개월 동안 지영이 그린 것들이다.


"아직 미숙하지만..."


"미숙하긴. 이 바다 그림, 묵호에서 그린 거지?"


금희가 안개 자욱한 바다 그림을 응시하자 방안 공기가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 먼 산을 스쳤다. " 응, 바다는...

마음을 치유해 주는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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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자차와 진솔한 대화


투명한 유리잔에 오미자 냉차가 붉게 번졌다. 여름 열기가 순간 맑아지는 듯했다.

금희가 한 모금 들이켜자 어깨 힘이 풀렸다.


“정말 시원하다. 몸속 먼지가 씻기는 기분이야.”

그녀의 목소리에는 도시의 뜨거운 공기를 덜어낸 안도감이 실렸다.


지영은 웃으며 말했다.

“여기선 오래 있으면 얼굴이 맑아져. 공기랑 물이 좋아서.”

그러면서도 속으로, 이곳이 자신을 살려냈음을 설명하긴 어렵다고 느꼈다.


잠시 침묵. 창밖에서 벌레 울음이 퍼졌다.


"지영아, 난 네 선택이 용감하다고 생각해. 나 같으면 못했을 거야."


"너같이 도시에서의 멋진 생활도 좋겠지만 난 아름답고 화려함 보다는 결핍이 있는 삶이 팔딱팔딱거려서 좋아. 여담인데 어릴 때부터 난 항상 마음속으로 반 고흐 같은 삶을 부러워했었거든. 그가 자신의 귀를 자르면서까지 자신을 지켜내고 고독과 싸우는 모습들....... 그의 처연한 열정과 가난함 이런 것들이 나에겐 무척 특별하게 다가오기도 했었지. 난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많이 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 않더라고."


금희의 표정이 복잡해진다.


"때로는 사람들이 화려한 결과만 보고 그 과정의 노력이나 고통은 보지 않고 쉽게 판단을 해서 그래. 난 항상 생각해.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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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희의 성공과 그림자



근데 좋은 소식 있는 거야? 이번에 본부장 승진물망에 올랐다며. 축하한다. 우연히 투자파트 서 대표한테 들었어."


금희의 얼굴이 잠깐 밝아졌다가 이내 복잡한 표정이 된다.


"하~ 돼야 되는 거지. 힘들긴 하지만 나한텐 이 일이 잘 맞는 같아.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로 운이 정말 좋았어."


"단순히 운만 좋은 건 아니지. 네가 그 운을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만든 걸 난 잘 알지. 내가 겪어 봤으니까. 웬만큼 해서 그만한 연봉을 받는 건 아니잖아. 난 항상 네가 입버릇처럼 외치던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이 매우 설득력 있고 가슴에 와닿아. 그리고 입사하자마자 너의 눈부신 활약과 겸손함은 모든 동료들에게 귀감이 되었잖아."


"뭘....... 그건 내가 사회생활 초년에 비서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 거 같아. 덕분에 윗분들 성향을 잘 알게 되었고. 내가 모시던 분들이 기업인이나 훌륭한 정치가도 계시고 해서 정말 많이 배웠어. 난 그분들의 좋은 점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을 많이 했어."


금희가 잠시 멈췄다가 계속한다.


"그리고 난 성장배경이 남들처럼 순탄하지 않아서 고난과 늘 함께 했으니 웬만한 일의 스트레스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거든. 온실 속의 화초처럼 지낸 너와는 스트레스 관리능력이나 위기대처능력이 좀 남다른 거뿐이지. 그리고 엄마가 어릴 때부터 나한테 욕심이 많고 남한테 지기 싫어하고 절대 손해 보는 일이 없다고 가끔 한 소리 하셨거든. 내 눈빛이 보통 눈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둘이서 서로를 바라보면서 빵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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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대조



"ㅎㅎ하~ 참 개인의 성향이 천차만별이고 개성이 다 다른 게 너무 당연하지만 정말 신기하지 않아? 난 좀 둔해서 지내고 보니 집안이 잠깐 힘들 때도 있었는데 그런 거 전혀 몰랐고 그냥 돈 같은 것도 캐비닛 같은 곳에서 필요할 때마다 무한정 꺼내 쓰면 되는 줄 알았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집과 사무실에 놀러 가면 캐비닛이 곳곳에 엄청 많았어."


지영의 말에 금희가 웃는다.


"그때가 그리워?


"글쎄...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도 나름의 아련한 추억인 것 같아.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늘 현실에서 붕 뜬 느낌 같거든. 어떤 방식이든 내 안의 세계에서 늘 자유를 만끽한 것은 확실해."


지영이 차분하게 홍삼을 꿀에 절여서 말린 것을 금희에게 조금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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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 대가



"금희야, 지난번에 봤을 때는 일만 하느라 그랬는지 건강이 많이 안 좋아 보이던데. 오늘 보니 생기가 넘치네. 혈색도 좋아 보이고. 산삼이라도 먹었어?"


금희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진다.


"에구....... 말도 마. 너도 잘 알다시피 우리 일이 늘 과로해야 되잖아. 나도 어느 날 보니 대상포진에 혓바늘은 다 돋고 당뇨까지 와서 고생 심하게 했어."


지영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당뇨까지? 언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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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철학, 법학을 전공| 화가 | 작가 | AI·반도체·기업분석, 사유의 결로 꿰어진 이야기들, 다양한 분야의 통찰을 삶의 층위를 담아 저만의 방식으로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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