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도광양회 3화 : 아버지의 유산

"가장 조용한 혁명이 가장 큰 변화를 만든다

by 크리슈나


---


1994년 12월, 경기도 기흥


7살 데이비드 김이 아버지 손을 잡고

거대한 공장 앞에 서 있었다.

"아빠, 여기가 뭐 하는 곳이야?"

"반도체를 만드는 곳이란다." 김철수 과장이 아들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서 가장 작고

가장 중요한 걸 만드는 곳이지."

삼성전자 기흥공장.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를

향해 달려가던 그 시절이었다.

"반도체가 뭐야?"

"음... 전자제품의 두뇌 같은 거야. 컴퓨터도, TV도,

모든 게 이 작은 칩 하나 없으면 작동 안 해."

아버지가 주머니에서 손톱만 한 검은 칩을 꺼내 보였다.

"이게 반도체야. 아빠가 밤낮으로 연구해서 만든 거지.

이 작은 게 나중에 세상을 바꿀 거야."

데이비드는 신기한 듯 칩을 바라봤다.

"나도 아빠처럼 이런 거 만들 수 있을까?"

"물론이지. 데이비드는 똑똑하니까 아빠보다 훨씬 멋진

걸 만들 수 있을 거야."


---


1998년 2월, 같은 집 거실


IMF 외환위기가 한국을 강타한 겨울이었다.

"여보, 어떡하지?" 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는 해고 통지서를 손에 들고 소파에 주저앉아

있었다. 삼성전자에서 17년간 일했지만, 구조조정으로

하루아침에 짐을 싸게 되었다.

"반도체 개발팀 전체가 해체됐어. 이제 뭘 해야 할지..." 11살 데이비드는 방문 틈으로 부모님의 대화를 엿들었다.

"미국으로 이민 가자. 거기서 새로 시작하자."

"하지만 내 영어는..."

"걱정 마. 데이비드 교육을 위해서라도 가야 해. 한국은...

한국은 이제 끝난 것 같아."

아버지의 목소리에 절망이 배어 있었다.


---


1999년 3월, 버지니아주 맥클린


미국으로 이민 온 지 1년이 지났다. 아버지는 한국계

전자부품 회사에서 일했지만, 예전의 자신감은 찾을 수

없었다.

"아빠는 왜 한국에서 만들던 반도체 안 만들어?"

데이비드가 물었다.

"미국에는... 미국에는 더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 아빠는

이제 늙었고."

"그럼 내가 커서 만들면 돼."

아버지가 쓴웃음을 지었다."데이비드야, 반도체는 미국이 발명한 거야. 한국은 그냥

따라 만들기만 했어. 진짜 혁신은 여기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나지."

하지만 데이비드는 다른 생각이었다. 언젠가 한국도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


2008년 5월, MIT 졸업식


캠퍼스는 푸른 잔디와 화사한 꽃들 사이로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고, 바람에 실려 오는 신선한 봄바람 속에 졸업생들의

설렘과 기대가 가득하다.


"데이비드 김, 전자공학과 수석 졸업!"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랑스럽게 박수를 쳤지만, 아버지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졸업 파티가 열리는 조용한 홀 구석에서 데이비드가

샤오메이를 찾았다.


"샤오, 여기 있었구나."


샤오메이가 미소 지으며 그를 맞았다.


"네가 잘 해냈어. 지난해 우리가 함께 밤새워

연구했던 거 기억나?"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고리즘, 100배 빠른 신경망 최적화… 하지만 그 뒷면의 데이터 부족 문제."


샤오메이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지금도 그 데이터가 필요해. 중국에 돌아가면 가능할 거야."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크리슈나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예술, 철학, 법학을 전공| 화가 | 작가 | AI·반도체·기업분석, 사유의 결로 꿰어진 이야기들, 다양한 분야의 통찰을 삶의 층위를 담아 저만의 방식으로 풀어갑니다.

8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9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2화소설 도광양회 2화 : 14억의 역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