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16
요즘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면서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가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일본 경제는 1990년을 정점으로 부동산과 주식이 지속 하락하면서 잃어버린 20년 또는 잃어버린 30년으로 설명되고 있다.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에 교훈이 있는 이유는 붕괴과정에서 새삼 노동의 가치를 일깨워줬기 때문이다. 놀면서 돈 벌고 싶은 인간의 탐욕이 부질없음을 보여주었다.
1980년대 일본 제품은 전 세계 시장을 누비며 엄청나게 잘 팔렸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 값도 싸고 품질도 좋은 일본 제품이 선호되면서 미국 제품이 팔리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일본, 프랑스, 서독, 영국을 플라자호텔로 불러들여 미국 제품이 싸지도록 환율 조정에 합의하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1985년 플라자 합의이다. 일본은 여러 가지 이유로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기업들은 내수시장을 공략하였다. 그러나 여의찮아 파산하는 기업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1986년부터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했다. 시장에 풀린 유동성이 연구나 설비투자로 흘러가길 바랐다. 그러나 시장에 흘러들어온 돈은 주식과 부동산으로 흘러갔다. 1987년 도쿄의 상업지와 주거지가 60% 이상 급등하면서 일본 정부는 금리 인상을 고려하였다. 그 당시 미국은 인플레이션이 심했고 국채금리가 높았으며 주식의 거품 논란도 있었다. 급기야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다우 존스 지수는 22.6% 하락하였다. 일본 정부는 미국의 블랙먼데이(Black Monday)로 경기가 위축될 것을 우려하여 끝내 금리를 올리지 못했다.
일본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이 오르자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 은행에서 대출만 받으면 부동산으로 돈 복사가 가능하니 굳이 땀 흘릴 필요가 없었다. 회사가 높은 연봉을 제시해도 신입사원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면서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은 심해졌고, 서민들의 분노는 날로 거세졌다. 그때 당시 은행에는 100년과 3세대 상환 대출이 있었고,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을 예상하여 담보의 120%를 대출해 줬다고 하니 한마디로 광란의 시기였다.
1989년 5월 부랴부랴 일본 정부는 부동산 거품이 우려되어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1989년 12월 29일 닛케이225 지수는 38,915.87로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1990년 8월까지 일본 정부는 2.5%였던 금리를 6%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너무 짧은 기간에 올린 금리는 거품 붕괴의 단초(端初)가 되었다. 무리하게 대출을 받은 직장인들은 높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부동산을 팔기 시작했고 이러한 현상은 기업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대출로 다져진 닛케이 주식시장도 무려 40% 가까이 하락하였다. 도쿄의 아파트값이 3분의 1토막이 났다고 하니 영끌족은 아무리 노력해도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게 된 것이다.
한국도 금리를 올리면서 무리하게 대출받은 사람들이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한국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따라가는 것 아닌지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인구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부동산 거품으로 주거비용이 높아지면서 출산율이 떨어졌고 고령화 속도가 빨라졌다. 어렸을 때 일본의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고 들었는데 이제 남의 나라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2021년 기준으로 일본의 출산율은 1.33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0.84이다. 출산율이 1보다 작다는 것은 여성이 평생 아이 한 명도 낳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의 시선을 잡는 또 다른 변화는 노동의 가치이다. 요즘 닛케이지수가 반등하고 있지만, 일본의 젊은이들은 선 듯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 사실 일본 젊은이들은 잃어버린 30년으로 꿈과 희망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들은 그저 하루하루의 노동을 통해 입에 풀칠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돈과 출세에 관심이 없는 깨달음(사토리, Satori)의 세대로 불린다.
돈과 출세에 미친 광기 어린 사람들이 더 나은지 아니면 하루하루 노동에 만족하며 돈과 출세를 포기한 사람들이 나은지 생각해 본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절충점에 있는 사람들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그 절충점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범죄 사건들을 보면서 광란의 시기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을 보며 좌절과 상실감을 느끼고 그것이 분노로 이어져 세상 모두를 부정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열심히 노력하고 아껴 한 푼 두 푼 저축하는 사람은 이 시대에 뒤처진 사람으로 비친다. 잔머리로 버는 한탕이 땀 흘린 노동의 대가보다 더 설득력을 얻는 시대이다.
유튜브에 여전히 많은 사람이 부동산 전망을 두고 옥신각신하며, 어떤 사람은 굉장한 비법인 양 소개하며 주식을 사라고 꼬신다. 소 가격만 오르길 바라면 소는 누가 키우나!
오히려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이 노동의 가치를 깨닫고 다시 성장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일본 사람들은 투자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미련을 버렸다. 노동으로만 돈을 벌 수 있고, 저축으로만 재산 증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니 우리보다 상대적 박탈감도 적을 것이다.
부(富)의 추월차선이 없고 땀으로만 부를 이룰 수 있다면 오히려 나만 뒤처진다는 조바심은 없을 것이다. 일본이나 한국 경제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이 일본보다 출산율은 떨어지고 고령화 속도는 더 빠르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젊은이들은 열심히 땀 흘려 일해도 집 한 채 사기가 쉽지 않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누구를 위한 상승인지 궁금하다. 모든 일이 노력으로 가능한 세상이 되어야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고 좌절과 상실감은 줄어들 것이다. 노력이 의미 없어져 버리면 희망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