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17
여름에 친구와 등산하였다. 하산할 때 아내로부터 걸려 온 전화에 친구는 내가 너무 부럽다고 했다. 친구는 결혼은 했지만, 혼인신고 전에 헤어져 서류상 총각이다. 친구는 아직도 우리 집에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딸들이 살고 있다고 믿는다. 친구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이 있다. 결혼하지 않으면 외로움과 동시에 자유를 얻지만, 결혼하면 안정감과 함께 책임이 따른다. 어느 것이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결혼하면 확실히 이전에는 없던 일들이 생겨난다. 그중 하나가 부모 재산 앞에 자식들의 갈등이다. 왜 부모 재산 앞에 자식들이 싸우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도 재산 앞에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 가정이 편해지려면 구성원이 서로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 어렸을 때는 가족 간에 생각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흐르니 부모는 늙고 형제자매는 각자 성년이 되어 흘러간 세월의 틈새만큼 생각의 차이도 벌어진다. 이러한 생각의 차이는 재산 앞에서 극명해진다.
법원행정처 통계에 따르면 상속재산분할 청구 건수가 2008년에 79건이던 것이 2017년에는 1,403건 그리고 2021년에는 2,380건으로 증가추세에 있다. 물질만능주의가 되면서 돈은 피보다 진해지고 있다.
재산 앞에 가족이 평온해질 방법은 없을까? 부모가 살아계시고 자식이 둘만 있다고 가정하자. 자식의 조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자식이 아들만 둘인 경우, 아들과 딸 그리고 딸만 둘인 경우이다. 먼저 자식이 아들만 둘일 때 재산싸움이 일어날 수 있다. 첫째아들은 장남이라서 부모로부터 더 많은 재산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아들은 요즘 세상에 장남의 역할이 뭐가 있냐며 반박할 것이다. 이러한 논쟁은 두 아들이 모두 결혼하였다면 더 악화할 수 있다. 물질 만능시대에 며느리가 시댁 재산에 관심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일 것이다. 두 아들은 자녀를 위해서라도 재산싸움을 포기할 수 없다. 부모의 재산 앞에 두 아들이 싸우지 않는 방법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뿐이다. 두 번째로 자식이 아들과 딸일 때도 재산싸움이 일어날 수 있다. 아들은 부모를 모셔야 하고 제사도 지내야 하므로 더 많은 재산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딸은 부모는 내가 모셔도 되고 제사도 내가 지내면 된다고 반박한다. 이러한 논쟁은 두 자녀가 모두 결혼하였다면 더 악화할 수 있다. 며느리는 시누이가 시댁 재산을 가져가는 것이 밉고, 시누이는 부모 재산으로 호강할 새언니가 싫을 것이다. 아들은 부모 재산이 매부(또는 매제)에게 가는 것이 싫고, 사위는 처가 재산이 형님에게만 가는 것이 싫을 것이다. 아들과 딸이 싸우지 않는 방법은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것뿐이다. 마지막으로 자식이 딸만 둘인 경우에도 재산싸움은 일어날 수 있다. 첫째 딸은 살림 밑천인 장녀라서 부모로부터 더 많은 재산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딸은 장녀라고 하는 일이 뭐 있냐며 반박한다. 이러한 논쟁은 두 딸이 모두 결혼하였다면 더 악화할 수 있다. 첫째 사위는 동서가 처가 재산을 더 가져가는 것이 싫고, 둘째 사위는 형님이 처가 재산을 더 가져가는 것이 싫다. 결국, 두 딸도 서로를 배려할 때 재산 앞에서 싸우지 않을 것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자식의 구성이 있겠지만 부모 재산 앞에 싸우지 않으려면 배려와 이해밖에 없다.
재산 앞에 자식들이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려면 형제자매의 우애(友愛)가 재산을 앞서야 한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의 정(情)이라는 말로 돈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자본주의에서 돈은 목숨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돈도 잃지 않으면서 사람도 잃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 본다.
부모의 재산 앞에 자식들이 평등해질 수 있다면 자식 간에 재산싸움은 없을 것이다. 또한,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공평하게 나눠준다면 자식 간에 재산싸움은 없을 것이다. 재산싸움은 자식 간에 싸움으로만 비치지만 사실 재산을 나눠주는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기도 하다.
이러한 갈등은 유교 문화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모든 자식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유독 재산 분배에서 차등을 두는 일부 부모 덕분에 자식들은 서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유교 문화는 윗사람에 대한 공경을 강조하면서도 아랫사람에 대한 배려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유교 문화는 장자(長子)가 제사 지내기를 권유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재산 상속에서도 형제자매 간에 차등이 발생한다. 이러한 차등을 짐작할 수 있는 말들로 여자는 결혼한 후 시집 사람이 된다는 출가외인(出嫁外人), 여자는 부모, 남편 그리고 아들을 따라야 한다는 삼종지도(三從之道) 그리고 제사의 장자(長子) 승계 등이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출생아 수는 2017년 40만 명대 아래로 내려간 이후 급기야 2022년에는 25만 명대를 기록하였다. 결혼 건수는 2017년 26만 건에서 2022년에는 19만 건대로 떨어졌다. 주목할 점은 출생아 수의 감소율이 결혼 건수의 감소율보다 가파르다는 점이다. 즉 결혼하여도 점점 아이를 낳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구가 줄어드는데 누가 장남이고 누가 장녀이며 누가 제사를 지내야 하는지가 뭐가 중요한지 모르겠다.
인간은 돈 욕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유교 문화를 강조하는 부모와 그것을 서운해한 자식들 사이에 재산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차라리 부모가 재산이 없다면 유교 문화와 상관없이 자식 간에 싸울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부모가 재산을 갖고 있다면 그 재산에 유교 문화가 더해져 자식 간에 갈등은 깊어진다. 재산도 형제자매도 잃지 않는 방법은 모든 것을 초월한 배려밖에 없는 것 같다.
결혼하면 가족에게 시아버지, 시어머니, 장인, 장모, 장남, 장녀, 며느리 그리고 사위 등의 새로운 호칭이 부여된다. 각자가 호칭에 맞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하면 갈등을 겪게 된다. 인구는 점점 줄어들어 사람의 온기가 더 그리운 시대가 되었다. 누군가는 몇백 년이 지나면 대한민국은 사라질 거라는 주장도 한다.
여러 가지 이해(利害)로 유교 문화를 고수(固守)하려는 사람과 유교 문화를 부정하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절충점이 없이 세월이 흐른다면 가족 간에 갈등은 심화할 것이다. 나는 친구에게 결혼해도 좋고 혼자 살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친구가 겪어보지 못한 많은 일을 굳이 미리 말해 주고 싶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은 깊어지지만 거추장스러운 가식은 벗어던지고 싶다. 누군가의 희생이 따라야 유지되는 문화라면 인구감소 시대에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조상 없다면 후손이 없고 후손이 없다면 조상을 기릴 존재가 없다. 형식보다 본질에 집중해야 하는 시대이다. 재산 앞에 가족이 평화로워지려면 부모와 자식이 모두 현명한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