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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범진 작가 Apr 28. 2024

죽음 그리고 끝이 있어 다행인 이유

인생 7

어느새 또 한 해의 끝이 다가온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고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는 것 같은데 한 해는 정말 아무런 말도 없이 지나간다. 세월이 지나면서 언제부턴가 작년의 일들이 재작년의 일들처럼 느껴지고, 재작년의 일들이 작년의 일들처럼 느껴진다. 어떤 기억은 아주 오래전의 일처럼 느껴지고, 어떤 기억은 어제의 일처럼 느껴진다. 뇌는 시간의 순서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2020년 코로나19의 절망은 인위적으로 뿌려진 돈에 의해 희망으로 포장되었다. 그러나 몇 해도 지나지 않아 그 허접한 포장지는 벗겨지고 다시 절망의 늪으로 빠져든다. 코로나의 위기는 진정한 위기가 아니었나 보다. 지금은 누구도 절망의 늪으로 빠져드는 우리를 구제할 생각이 없다.

어쩌면 우리는 바보처럼 돈에 희망을 걸고 다시 돈에 절망하는지도 모른다. 현금만 들고 있으면 벼락 거지가 된다며 안타깝게 조언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현금만 들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을 조롱하던 사람들을 비웃기 시작한다.

죽음 그리고 끝이 있어서 다행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그렇게 잘난 사람도 그리고 세상에 그렇게 못난 사람도 모두 죽음 앞에 평등하다. 미칠 것 같은 고통도 죽음으로 끝날 수 있고 영원할 것 같은 행복도 죽음으로 끝나게 된다. 죽음이 온 후에는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죽음을 잠시 망각한 우리는 돈 앞에 서로를 헐뜯고 돈을 위해 시간을 소비한다. 돈을 벌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돈이 바닥날까 봐 걱정한다. 인생은 그렇게 언제나 후회와 걱정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우리는 후회스러운 과거와 걱정스러운 미래를 보고 현재를 망가뜨리는 바보 같은 짓만 계속한다.

잘난 사람들의 무시와 괄시에 고통스러웠고 못난 사람들에 대한 무시와 괄시에 행복했는가? 이 모든 고통과 행복은 죽음을 뛰어넘지 못한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도 모른 채 시간만 흘려보내는 사람들을 보며 죽음과 끝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멍청한 사람들도 언젠가 세월 따라 사라질 테니 말이다. 올 한 해 사람에게서 상처받았고 돈 때문에 고통스러웠다면 죽음을 한 번 떠올려 보기 바란다. 죽음의 무게가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와 잃어버린 돈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지 말이다.

죽음은 모든 인생을 다시 초기화해버리고 만다. 물론 죽은 후의 세상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인간의 유한함을 극복하기 위해 종교를 만들었고 천국과 지옥이라는 사후 세계를 만들었다. 이것이라도 있어야 유한한 인생에서 작은 희망이라도 품고 살 테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도 가본 적 없는 사후 세계에 너무 큰 희망을 걸고 싶지 않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천국일 수 있다. 그 여름 뜨거운 햇살 아래 가족과 함께했던 그 푸른 바닷가! 노을 지는 저녁 하늘을 보면서 가족과 산책했던 그 오솔길! 좋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던 그 저녁 어느 날! 나는 이 기억들이 과거에 있지만 나를 미래로 살게 하는 희망이라 생각한다.

사후 세계에 대한 희망보다 즐거웠던 기억을 다시 누릴 기회가 있다는 사실에 더 행복하다. 한 해 두 해 갈수록 시간은 더욱더 짧게 느껴진다. 돈과 명예에 목말라 괴로워하고 자책했던 그 많은 시간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

요즘 내가 부러운 것은 S대 간 자식도 아니고 돈 많이 번 사람도 아니다. 그것은 세상 만물을 생경하게 받아들일 젊음이다. 젊은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을 가졌는지 알 수 있을까! 나 역시 그 시간을 보냈지만, 행복했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인간은 바보 같아서 항상 세월이 흐른 후에야 행복을 깨닫는다. 그래서 지금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없는지 항상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렇게 해도 어차피 세월은 지나가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후회할 것 같다.

가족과 여행을 간다.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간이 많아서도 아니다. 지금 가지 않으면 나중을 기약할 수 없는 두려움 때문이다. 몇 해 전 찍은 사진 속에 아이들은 어느새 자라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나는 소중한 지금을 놓치고 싶지 않다. 내가 지금을 잡는 방법은 지금을 추억으로 만드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사라질 운명이니 행복을 위해 현재라는 선물을 잘 활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