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친구들
크게 두 종류의 순수한 사람이 있다고 믿는다. 하나는 유해하게 순수한 사람이다. 얼핏 보면 유해함과 순수함은 서로 모순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모순을 비집고 나오는 유해함이 있다. 지나치게 순수해서 스스로 유해하다고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 ‘순수하다’ 대신 ‘순진하다’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의 유형이다.
차라리 그 순진함 속에 고도의 전략이 숨어 있길 기도한다.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 마법의 가면을 쓰고 나를 기만해 줬으면, 그래서 나의 불쾌한 기분이 정당화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저 인간이 사악하니까 마음 상하는 건 당연하다는 식으로. 하지만 이 바람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분노와 체념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맴돈다. 두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면 나아질까, 얼굴을 연신 닦는다. 한숨을 쉰다. 저 순전무구함이 잘못인지, 순전무구함을 참지 못하는 내가 잘못인지 곰곰이 생각한다. 답은 없다. 그렇게 정체 상태가 지속된다.
다른 하나는 ‘그냥’ 순수한 사람이다. 무해하게 순수한 것은 아니다. 세상에 무해한 존재는 없다고 믿거니와 인간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가 유해하게 순수한 사람과 다른 점은 순진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 차이를 어떻게 아냐, 고 묻는다면 감각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싶다. 유해함과 무해함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도덕과 윤리와 법을 넘어선 어떤 것,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어떤 직감이 둘을 구분시켜 준다. 그리고 우리는 대충 안다.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순수한 사람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의 유형이 있다. 온갖 상처를 견뎌낸 것처럼 보이는 사람. 그래도 삶을 살아가는 사람. 삶이라는 말도 거창하다. ‘하루’라는 말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주어진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이 때 견딘다는 말은 인내한다는 것과 다르다. 화 따위를 내면에 쌓아두지 않고 대부분은 그냥 흘려 보낸다. 그 시간은 곧 과거에 귀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미래를 기약한다. 그 미래는 ‘무지개’와 같은 압도적인 희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소박한 여유를 먼저 떠올린다. 퇴근하고 뭐할까? 어제 사둔 티라미수를 먹을까? 유튜브는 뭘 볼까?
내가 본 그녀가 바로 이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굉장한 오판일지도 모른다. 그녀에 관해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없다. 한 테이블에서 밥을 먹은 횟수가 손에 꼽힌다. 대화 또한 많이 안 해봤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녀가 내가 좋아하는 순수함을 간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단 한 순간 때문이다. 대학원 생활을 했던 두 해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자 아름다웠던 순간.
나는 하찮은 재능이 있다. 술자리를 잘 만든다는 것이다. 웬만한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편이라서 그런가, 기약한 술자리는 곧바로 성사되는 편이다. 자주 써먹지는 않는다. 어설픈 술자리를 되려 피로만 누적시킨다. 신중한 건 아니다. 정체 모를 분위기에 휩쓸려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은 깨지 않는다. 꽤 ‘그럴듯한’ 사람들이 모여야만 한다는 것. 신뢰나 믿음이라는 말은 거창하다. ‘괜찮다’는 말은 평가적이다. ‘그럴듯하다’라는 말이 적합하다. 그게 정확하게 어떤 뜻인지는 나조차도 잘 모르겠지만.
그날, 하찮은 재능을 발휘했다. 갑자기 술을 마시자고 했다. 어떤 바람 때문이었을까. ‘조건’이 충족됐을까. 그녀를 포함한 동료들과 밥을 먹은 직후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녀와 처음 식사한 자리였다는 것이다. 우연이 작동했다. 다른 동료들과 외식을 하러 나가던 도중 차를 타고 학교를 빠져 나가는 그녀를 발견했다. 택시 대신 저 차를 타자 그리고 밥을 같이 먹으러 가자, 라는 꼼수가 발동했다. 그녀를 불러 세웠다. 그녀는 흔쾌히 응했다. 그렇게 그녀의 차를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를 마친 뒤 술집에 갔다. 소음으로 가득한 술집 안에서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없었다. 어쩌면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어색했다. 그녀가 어색했던 건지 그런 분위기가 어색했던 건지 모르겠다. 그녀와 친한 동료가 있었지만 그는 대체로 과묵한 사람이다. 나는 저절로 사회를 봤다. 꿈이 뭐니, 목표가 뭐니, 취업하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니, 무엇을 사고 싶니 따위의 질문을 했다. 가볍지만 참을만 하달까.
술자리는 노래방으로 이어졌다. 이 역시 어떤 바람 때문에 일어난 일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밤이 늦은 데다 통금 시간이 가까워 왔다. 주어진 시간은 40분 정도. 한 사람당 한 곡씩 부르자며 비좁은 방 한 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노래를 강습받아 본 적이 있다고 넌지시 말했던 그녀는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때가 됐다며 선곡을 했다. 두 번째인가 세 번째 순서에 노래를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녀는 곽진언의 ‘응원’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 노래를 처음 듣던 순간이 나의 마음 속에서 좀처럼 흩어지지 않는 바로 그 순간이다. 한 글자씩 삼켜지고 내뱉어진 가사와 노래방을 울리는 자정되기 직전의 밤. 그녀는 흠집은 났을지언정 빛은 바래지 않은 투명한 유리구슬 같은 사람 아닐까, 라는 생각.
성인이 된 이후로 결혼식을 간 횟수는 손에 꼽는다. 하지만 결혼식은 한결같이 ‘미션’ 같았다. 이 고난과 시련의 프로젝트를 완수하면 진정한 부부가 될 거라는 느낌. 그렇다. 그녀는 올해 가을 즈음에 결혼을 한다. 내가 졸업함과 동시에 그녀도 학교에서 떠나는 이유다. 그녀의 결혼식은 어떠할까. 그녀도 ‘결혼식 미션’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까. 내가 오해하고 착각하는 그녀의 순수함 이면에 또 다른 면모가 있을까. ‘결혼 정신’ 혹은 ‘부부 정신’ 같은 것이.
그녀가 잘 살길 바란다. 무릇 세상은 상처로 가득한지라. 그 칼날을 교묘히 감추고 있는 세상에 적당히 속아주길, 그러면서도 그 투명함과 진실함이 계속되길. 순수함이 깃든 ‘응원’ 덕분에 나는 지난 몇 개월을 버틴 것일지도 모른다. 어두운 과거를 가감 없이 거슬러 올라가며 그 순간을 떠올릴 수 있는 것도. 그 순수함에 용기를 얻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