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백수다] 엔비디아와 테슬라

by 호재

백수의 의문.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은 왜 중요할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도 할 일을 다 하면, 그만 아닐까. 하지만 다들 일찍 일어나서 출근한다. 회사에 대한 욕은 한가득 하면서 ‘성실하게’ 회사에 다닌다. 퇴근한 후에는 푸짐한 음식과 함께 술잔을 기울인다. 비록 백수지만 이들처럼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왠지 모를 죄책감 때문이다. 30살을 목전에 두고 있는 만큼, ‘자유롭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강박.


물론 반항적인 생각도 종종 한다. 시간은 문명사회가 인간에게 부과하는 일종의 억압이라고. 우리는 이 압력에 대항해 자유로이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금세 그만둔다. 뜬구름 잡는 소리다. 다른 사람들처럼 사는 게 역시 맞는 것 같다. 부자 백수가 아닌 가난한 백수라서 더욱 그렇다. 일단 남들과 견줄 만한 위치에 서기나 하자며 체념한다.


늦어도 8시 반에는 일어나자고 스스로 다짐한다. 다행히도 잘 지키는 편이다. 일어나자마자 침대 밖으로 나오지는 못하지만, 늦어도 9시에는 책상 앞에 앉는다. 신문과 노트를 편다. 신문을 훌훌 넘긴다. 엊그제와는 미묘하게 다른 어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루가 지나며 아주 조금씩 진전된 내용들. 세상은 그렇게 개미 걸음만큼 나아가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신문을 본다. 한숨이 나온다. 한숨이 나올 만한 신문사의 신문을 읽어서 그런 걸까. 이 신문을 보며 통쾌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나와 그들의 간극은 무어라 지칭할 수 있을까? 정치적 신념일까? 따위의 의문을 품으며 기사를 읽어 나간다.


하지만 종종 8시 반에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9시 반. 혹은 좀 더 늦게. 전날 밤 미국 주식시장(이하 ‘미장’)에 들어갔을 때다. 밤 11시 반에 본장이 시작된다. 본장이 시작되기 전에 워밍업 격으로 프리장이 열린다. 저녁 6시 반부터 밤 11시 반까지. 앱을 이용해 상장된 기업들의 차트를 본다. 대부분 엔비디아와 테슬라, 애플 등 미국의 대장주들이다.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 같은 기업들. 프리장이 열렸을 땐 주식 거래량이 많지 않다. 하지만 가끔 주가가 오를 것 같은 기미가 보일 때가 있다. 출동을 해야 할 때다. 앱과 책을 번갈아 보며 준비한다. 다가오는 11시 반에 대비해.


그렇다. 단기투자(이하 ‘단타’)다. 하루 이틀 바싹 투자해 이익을 남기는 방법이다. 생활비를 쪼개서 하는 투자이기 때문에 장기투자(이하 ‘장투’)를 할 여력이 안 된다. 종잣돈이 많지 않기 때문에 얼마 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잃어도 얼마 잃지 않는다.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 전략이다. ‘치킨값 벌기’ 전략이라 할까.


단타를 하는 이유는 장투에 대한 환멸도 한몫한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이었을 때, 주식을 처음 시작했다. ‘네이버는 묵혀 놔도 된다’라는 통설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거짓이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주가가 반토막 났다. 물론, 당시 풀린 막대한 유동성 탓도 있다. 하지만 경제에 관한 기본 개념도 없었기 때문에 ‘돈이 풀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래도 너무하다. 네이버는 여전히 반등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장투를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유다.


주가가 떨어지면 심장이 조인다. 잠자리에 들겠다고 다짐한 시간이 와도 여전히 앱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이 올리는 게시물을 본다. 별의별 이야기가 있다. ‘테슬라는 나스닥 인버스다’ 따위의 블랙 유머를 힐끔거리며 실실 웃는다. 영양가 있는 게시물도 있다. 주가가 오르내리는 이유를 즉각적으로 알려준다. 상호관세를 미루겠다는 트럼프의 발표 등 다음날이 돼서야 뉴스로 보도되는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달받을 수 있다. 언론사보다 개인의 정보 수집 속도가 더 빠른 시대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렇게 주식 커뮤니티와 종목 차트를 보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엔비디아와 테슬라를 비롯해 몇 개의 기업에 투자를 한 상태다. 수익은 나쁘지 않다. 팔아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손실이 나지 않는 이상 가지고 있기로 한다. 욕심을 부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주식을 매도하자마자 주가가 폭등한다면? 주식을 팔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주가가 떨어지는 상황도 떠올린다. 하지만 다시 오를 것이라는 환상에 젖는다. 미장이니까, 폭락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한 확신. 물론, ‘딥시크 사태’가 벌어져 엔비디아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졌을 때 미장에 대한 의심이 커지긴 했다. 반등해서 다행일 따름이다.


커뮤니티에 자신의 수익률을 공개하는 사람들이 있다. 몇 천만 원에서 몇 억 원씩 번 이들이 적지 않다. 노동이란 무엇인가. 아니, ‘노동’이란 거창한 단어는 쓰지 않겠다. ‘돈을 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새벽에 배달 알바를 하는 사람과 주식을 사고팔며 간단하게 수익을 내는 사람 사이의 차이. 누군가는 한 시간 동안 일하고 최저 시급 1만 30원을 받는 반면, 주식을 통해 2~3분 만에 1만 원을 버는 나. 물론 운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지만. 이 괴이한 차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금융 투자는 ‘적폐’일까, 라는 질문부터 자본주의에 관한 풀리지 않는 의문까지, 돈을 둘러싼 고민이 이어진다.


해가 뜨면 금세 흩어지는 새벽녘의 안개처럼, 돈에 대한 사유는 오르내리는 주가 앞에서 멈춘다. ‘몇 푼 더 모으면 치킨 한 마리다’라는 명제 앞에서 사고는 무력해진다. 백수니까 괜찮다고 합리화한다. 다들 나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정당화하며 살겠지. 옳든 그르든, 아무렴 뭐 어때. 돈은 많을수록 좋더라, 라는 속물주의에서 생각이 끝난다. 천박한 걸까. 그 천박함도 상승장에서는 어림없다. 오르는 엔비디아와 테슬라 주가 앞에서는. 이것은 나의 한계인가. 어쩌면 우리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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