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백수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 이 밤에

그날에 프랑스 파리에서

by 호재

침대에 눕기 직전에 휴대폰으로 '스포티파이'를 실행한다. 스텔라장의 앨범 'Stairs'를 검색한다. 앨범의 전곡을 재생한다. 첫 곡인 'Stairs'부터 흘러나온다. 노래를 들으며 잠들고 싶어 타이머를 설정한다. 30분. 앨범에 담긴 노래를 전부 들어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잠들어 있는 사이 스포티파이의 추천 기능에 의해 처음 들어본 노래가 나오는 상상을 한다. 어쩌나. 잠이 쉽게 들지 않는다. 스텔라장이 프랑스에서 유학을 했다는 사실을 안 탓일까. 지난 여름, 프랑스 파리에서 보고 들었던 것들이 떠오른다.


9일간의 여정을 마친 후, 귀국 날에 파리를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주어진 시간은 대략 8시간. 오후 세 시에는 드골 공항으로 향해야 했다. 시간이 없었다. 동료들에게 혼자 다니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처음 방문한 파리를 겁도 없이 쏘아 다니기 시작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세 개 정도다. 첫째, 프랑스의 유명 인사들이 안장된 공동묘지에 갔을 때였다. 몽파르나스 공동묘지. 사르트르의 묘지를 보고 싶었다. 대학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공부한 철학자가 사르트르였기 때문이다. 호기로운 시절이었다. 미래가 두려웠지만 무기력하지는 않았다. 삶이란 것은 내가 선택한 방향대로 흘러가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20대 초반의 나는 참 낙관적인 친구였다. 사르트르를 좋아했던 나. 우리의 운명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그의 말이 달콤했다. 물론 몇 년 지나지 않아 살아간다는 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한 때 흠뻑 빠져 있었던 사르트르의 묘지를 보고 싶었다.


잊을 수 없다. 그의 묘지와 그 옆에 나란히 있던 보부아르의 묘지, 묘지 위로 흩뿌려져 있던 셀 수 없이 많은 지하철 티켓과 곳곳에 새겨진 키스 자국을. 공동묘지를 둘러보고 나서 출구로 나오던 길. 갑자기 비가 왔다. 우산이 없었다. 비를 피할 만한 곳도 없었다. 출구로 재빨리 뛰어갔다. 출구는 쇠로 만들어진 대문이었는데, 문틀이 제법 두꺼웠다. 문틀 아래에 서서 비를 피했다. 바로 근처의 경비실에서는 형광등 불빛이 새어 나왔다. 먹구름으로 사방이 어두워서 제법 빛나 보였다. 텔레비전과 두어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도 들렸다. 갑자기 공동묘지 출구 밖에서 누군가 뛰어와 내 옆에 섰다. 정확하게는 나보다 반 발자국 앞에 있었다. 중년 남성이었다. 인상착의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회색 자켓을 입었던 것 같기도. 그렇게 빗소리와 경비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어우러지고 사방은 제법 쓸쓸하지만 그럼에도 따스하다고 느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사방이 어둑했는데도 말이다.


둘째, 어디인지 모르겠다. 무작정 걸었다. 어떤 거리였다. 거리의 끄트머리에 대사관들이 많았던 건 분명하다. 한국 대사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으니. 거리의 말미에 도달하기 이전에 줄지어 있는 건물을 볼 수 있었다. 고층 건물이 아니라 3층 정도 돼 보이는 높이였다. 건물들의 용도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간판이 있는 음식점 정도만 알아볼 수 있었다. 거리를 거닐며 막 결혼식을 올린 몇몇 커플을 볼 수 있었다. 교회인가, 하지만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로 알고 있는데, 따위의 생각을 했다. 그 커플 가운데 한 쌍이 기억에 남는다. 정확히 말해서 분위기다. 그들의 외향이나 모습은 모두 잊어버렸다. 여유라고 해야 할까. 그날 해가 제법 쨍쨍했다. 거리에는 그늘 한 점 없었다. 그럼에도 꽤 여유로웠다. 결혼이 한없이 가벼워 보였달까. 무슨 일이든 가능할 것 같은 결혼. 가능의 출발로서 결혼. 자격, 의무, 축복, 계약 따위의 말을 거절하고 약속이라는 말만 남긴 결혼.


셋째, 심란했다. 에펠탑에 도착할 무렵부터 휴대폰 배터리가 갑자기 줄어들기 시작했다. 전날 보조 배터리 충전도 못했던 상황. 지도 앱을 아껴봐야 했다. 지형 지물과 대강의 코스만 파악했다. 에펠탑에 간 다음 개선문으로 향한다, 정도.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멀리 보이는 에펠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막긴 골목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 다른 길로 갔다. 다만 에펠탑에 가까워지도록. 에펠탑 근처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사람이 많구나, 라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인파를 빠져나와 어떤 다리를 건넜다. 나이 든 노인 분들이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고 있었다. 아래의 강에는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다. 다리 건너편에 도착해 둘러보니 올림픽 경기장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강변을 따라 걷다가 길을 건너 어느 골목으로 들어갔다. 시장이 열리고 있었는데 그때 봤던 과일들이 정말 예뻤다. 쌓아두고 판매하는 과일이 아니라 조금씩 나눠서 담긴 과일들. 프랑스에서 산딸기 비슷한 과일을 흔하게 볼 수 있었는데 이때 봤던 산딸기가 가장 아름다웠다. 시장에서도 아름다운 과일이 팔릴 수 있다는 소중함, 그것 때문에 이 장면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 것일까.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몇몇 도시에서 봤던 광경과 들었던 소리가 가끔씩 떠오른다. 해외에 다녀온 경험이 일상을 버티게 해준다는 말이 어느 정도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에 다시 가보고 싶다는 소망과 가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래에 방문한 프랑스에서 2023년 여름에 방문했던 프랑스의 모습과 질감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몽파스나르와 파리의 어느 골목과 시장에서 보고 들었던 그 장면들을. 어떤 메커니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그 감상들을. 슬프게도 삶과 시간은 불가역적인 것 같다. 우리의 마음도.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이 운명을 씹어내면서 버티는 것이 살아간다는 것일까.


우린 매 순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경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종종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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