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였나, 페이스북을 처음 시작했다. 또래 애들이 하길래 나도 했다. 하지만 그 나이 때 애답지 않은 구석도 있었다. 프로필 사진이 톰 요크였던 것이다. 영국의 락밴드 ‘라디오헤드’의 보컬인 톰 요크. 그렇다. 내 페이스북 첫 프로필 사진은 톰 요크가 여느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푸른 조명 아래 도취된 모습으로 가사를 읊는 톰 요크.
중학교 1학년 무렵이었나. ‘나는 가수다’가 한창 유행이었다. 씨스타, 하이라이트(구 비스트), f(x) 같은 아이돌 노래가 유행이었지만 나는 8090년대 노래를 더 좋아했다. 이소라와 임재범을 더 좋아했다. 자기 앞가림도 못할 때였는데 마음은 애늙은이였다. 윤도현밴드와 자우림도 들었다. 어쩌다가 영국과 미국의 ‘락음악’을 듣기 시작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분명한 건 지금도 집 한 구석에 처박혀있는 ‘Paint it rock’이란 책을 그 당시에 처음 읽었다는 것이다. 또 분명한 건 나는 그 책을 왜 샀는지 지금도 여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Paint it rock’을 넘기며 음악을 하나하나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땐 지금처럼 유튜브 앱이 없었다. 네이버로 검색하면 유튜브로 들어가 영상을 보는 식이었다. 그렇게 비틀즈 음악을 들었다. 비틀즈의 대항마로 꼽혔던 롤링스톤즈의 음악도 들었다. 들었던 밴드 가운데 더 후와 주다스 프리스트가 있었던 것 같고, 27세 클럽이라 불리는 가수 재니스 조플린도 있었던 것 같다. 재니스 조플린의 ‘Cry baby’를 들으며 ‘이 사람이 왜 유명하지’라는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그렇다. 중학교 2학년, 16세였다.
가사를 해석해 주는 콘텐츠도 많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영어 가사를 들으며 ‘흑백논리’에 따라 음악을 판단했다. ‘듣기 좋다’와 ‘듣기 안 좋다’, 단 두 개의 기준만 있었다. 듣지 좋지 않으면 과감히 영상을 닫았다. 다음 노래로 넘어갔다. 남들과 다르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었을까. 여전히 그 노래들을 왜 들었는지 모르겠다.
두 기억이 남아 있다. 핑크 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을 꾸역꾸역 들었던 기억. 전설적인 앨범이라고 해서 전부 들었다. 뭐가 전설적인지 알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Money’란 음악에서는 금고가 열리는 소리만 들렸다. 나의 유년 시절, 아버지는 자영업을 하셨다. 돈을 보관하는 금고가 있었는데, 다이얼을 돌려 비밀번호를 맞추면 열리는 식이었다. 이 금고를 열 때 나는 소리가 Money에서 나왔다. 그게 왜 대단한 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
다음은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을 들었던 기억이다. 꾸역꾸역 듣진 않았다. 좋았기 때문이다. 뭐가 좋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멜론에서 처음으로 앨범의 전곡을 구매한 음반이었다. 물론 라디오헤드의 매우 유명한 곡인 ‘Creep’으로 그 밴드를 접하긴 했다. 하지만 OK Computer의 ‘적당히 괴상한’ 사운드가 내 귀를 사로잡았다. 이 음반의 ‘Let down’은 지금도 종종 듣는다.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들으며 꿈을 길렀던가. 톰 요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에겐 세계가 있었다. ‘Karma police’를 부르며 고개를 까딱거리는 그의 정신 속에는 무언가 있었다. 해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고독, 우울, 불안, 희망 따위의 언어와 비견될 수 없는 것. 좀처럼 해체할 수 없는 그것을 심지 있는 목소리로, 하지만 힘 없이 읊는 그. 그의 하염없는 자유가 부러웠다.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문득 했다.
단 한순간조차 꿈을 길러내지 못했다. 통기타를 두 달간 배우긴 했으나 이내 포기했다. F코드를 잡다가 그만뒀다. 일렉 기타나 베이스, 드럼은 잡아보지도 못했다. 관망했다. ‘MNET’에서 방영한 ‘밴드의 시대’를 보며, 그곳에서 ‘3호선 버터플라이’가 편곡한 ‘산울림’의 ‘내가 고백을 하면 깜짝 놀랄 거야’를 들으며, 뛰는 심장을 잠재웠다. 라디오헤드와 3호선 버터플라이, 대중음악의 문법과는 전혀 다르지만, 한편으로는 꽤나 유사한, 그런 음악을 갈망했다. ‘사이키델릭’이라 불리는 음악 장르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만’ 품었다.
미련이 남는 것이 아니다만, 가끔 상상한다. 내가 락밴드를 했다면 어떤 사람이 됐을까. 잔나비도, 데이식스도, 루시도 아닌 그 무언가가 됐을 것인데, 그건 도대체 무엇일까. 나는 어떤 음악을 했을까. 행복을 노래했을까 우울을 노래했을까. 그곳엔 내 세계가 존재했을까. 나는 굶주리고 있었을까, 아니면 잔나비, 데이식스, 루시처럼 꽤 유명한 사람이 됐을까. 실리카겔 같은 음악을 했을까. 하지만 지금 나는 실리카켈의 음악은 좀처럼 듣지 않는다. 혁오의 음악 정도가 최선이다.
데이식스의 ‘플리’를 반복 재생하는 지금, 나의 음악 감상 실험은 언제부터 멈췄을까. 아주 희미하게 꿈꿨던 ‘락스타’의 꿈. 괴상하디 괴상한 음악에 전율을 느꼈던 그 시절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어디서 무엇이 돼버렸길래 현실에 천착하며, 감상이 인도하는 대로 이 삶을 살아가는가. 언젠가 꿈을 향해 도전할 나날이 다가올까, 되뇌어 본다. 일을 끝내고 어느 학원에 찾아가 악기를 배우고 노래를 부르는 나. 주말이 되면 합주하는 나. 노래하고픈 무언가를 찾아내 노래하는 나. 그런 내가 있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