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 싼 상품을 좋아한다. 상품의 질이 유사하다면 값싼 것을 고른다. 이런 상품에는 독특한 수식어까지 붙인다. 바로 ‘가성비’다. 상품을 만드는 기업은 가격을 낮추려고 애쓴다. 인건비 등 상품 생산에 들이는 비용을 낮춘다.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목적이다.
우리는 고품질 상품도 좋아한다. 가격이 유사하다면 품질이 높은 것을 고른다. 기업은 소비자에게 선택 받기 위해 상품의 성능을 개선하려 한다. 기술력을 높인다. 새로운 서비스가 장착된 상품을 제공한다. 이러한 상품의 시장 점유율은 ‘운이 좋다면’ 점점 커진다.
시장 경제 시스템에서 벌어지는 경쟁은 가격을 낮추고 품질을 높이는 식으로 이뤄진다. 가격과 품질 가운데 어느 것의 경쟁력을 높일지 판단하는 것은 기업의 몫이다. 어떤 기업은 ‘단가 후려치기’로 승부를 보는 반면, 어떤 기업은 ‘프리미엄 서비스’로 승부를 본다.
핵심은 품질에 초점을 두는 기업조차도 가격의 차원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지간한 기업이 아니고서야 가격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소비자가 지불할 만한 가격을 책정하고 많이 파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기업은 부를 축적하고 덩치를 키워갈 수 있다.
이 경우에 기업이 상품 가격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은 물가가 싼 곳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이다. 인건비(혹은 전기료 등)가 저렴한 국가에 공장을 세우면 된다. 그러면 상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줄어든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애플과 삼성, 나이키는 이렇게 성장했다. 하지만 이 기업이 물가가 비싼 국가에 있었다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했어야 한다. 무언가 이상하다. 분명 동일한 업무인데 주는 임금이 다르다.
기업이 어디에 위치해 있든 동일한 임금을 지급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를테면, 베트남 공장에 있는 근로자에게 한국 공장에 있는 근로자만큼 임금을 주는 것이다. 이런 가정 아래서 기업을 이전해 비용을 줄이는 일은 불가능하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공정을 효율화 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아니면 상품 품질을 개선해 다른 기업과 차별성을 확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두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이른바 ‘산업 혁명’이라고 불리는 사태는 상품 생산의 방식을 전적으로 바꿨다. 그리고 이 혁명은 손에 꼽는다. 결코 쉽게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품질 개선도 마찬가지이다. 웬만큼 새롭지 않고서야 소비자는 지갑을 열지 않는다. 더불어 새로운 서비스가 탑재된 상품은 비싸다. 양산이 된 이후에야 가격이 떨어진다. 물론 그 수요가 많아야 한다는 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정 효율화와 품질 개선만으로 기업 규모가 확대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성장은 더디게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세계는 어느 정도 평등해질 수 있다. 같은 일을 한다면 대체로 같은 임금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원리의 두 축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성장이냐 분배냐.
베트남 공장에서 옷을 만지는 사람의 임금이 올라가고, 브라질에서 커피콩을 수확하는 사람의 임금이 올라간다. 그들의 생활 여건은 나아질 것이다. 임금이 늘어나니까 생활 형편이 나아진다. 세금이 늘어나 국부가 커진다. 성장률도 상승한다. 국가가 발전할 여지가 늘어난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입는 옷 가격은 몇 배로 뛸 것이다. 저가 커피는 구경할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스타벅스 커피 가격도 올라갈 것이다. ‘브랜드’ 혹은 프랜차이즈 기업의 경우에는 대량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그나마 상황이 낫다. 개인 사업자들은 큰 타격을 볼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가 지갑을 닫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견딜 수 있을까.
우리는 쉽게 ‘경제적 평등’을 거론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는 은연 중에 ‘불평등’이 내재해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윤택한 삶은 이 불평등 위에 서 있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 마시는 ‘메가커피’의 아메리카노 속에, 심지어 지금 쓰고 있는 당신의 ‘갤럭시’와 ‘아이폰’ 속에도 불평등이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나는 이러한 세상의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고 보는 사람이다. 다른 국가의 근로자에게 빚지지 않고서야 나의 주변과 나의 일상은 온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은 당신의 온전함을 포기할 수 있는가. 긍정의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두 부류로 갈린다고 생각한다. 철저한 진보주의자이거나 기만자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