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백수다] 니체를 읽기로 했다

by 호재

십 년 전에 추천받았던 니체의 개론서를 편다.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엄두도 못냈지만, 그것은 별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삶이란 어쩌면 지리멸렬한 무엇이며, 우리는 그 놈의 멱살을 잡고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는 것. 이 여정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모종의 지침이 필요하다는 것. 니체가 그 해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2주에 불과했지만 인턴을 하면서 뚜렷하게 느꼈던 한 가지, ‘이러다 인생 X 되겠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주절거렸다. 인턴을 한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너도 느끼지 않았냐고. 이렇게 삼십이 되고 사십이 되고 오십이 되는 거냐고. 정말 산다는 게 이런 거냐고.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걸까. 모두 무덤덤했다. ‘현생’을 살아가다 보면,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해지지 않은 것일까.


현장에 갈 때마다 도파민은 치솟았고 기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직업을 갖는다면 이런 일상이 계속되는 걸까’라는 의문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비단 기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을 하며 살아간다면 누구나 느낄 기분일 것이다. 하루하루가 비슷한 모양새로 꾸준히 반복된다는 것, 그 굴레 속에서 사소한 흥분과 따분함을 감각하며 매일을 보낸다는 것. 이게 정녕 살아간다는 것일까.


니체, 인기가 많은 철학자다. 최근에 나온 지드래곤의 앨범 ‘위버맨쉬’는 니체의 사상에서 따왔을지도 모른다. 한때 ‘초인’이라 번역된 개념이다. 서점의 인문학 섹션에도 니체 관련 서적이 많다. “마흔 살에 읽는 니체”라는 책제목은 좀처럼 잊히지도 않는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나는 니체를 제대로 공부해 본 적 없다. 서양철학사나 형이상학 강의 때 잠깐 배운 정도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나는 ‘니체는 일찍 공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니체는 그 이전의 서구 철학을 모두 비판하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는 서구 철학이 ‘실체’ 개념을 전제한다고 꼬집었다. 절대적이고 영원한 존재는 없는데 그런 것을 상정한다는 것이다. 전통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니체는 분명 멋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니체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니체를 일찍 공부하면 안 되는 이유다.


다른 하나는 ‘오독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니체의 책은 일반적인 철학 텍스트와 달리 현학적이다. 절반 가량 읽어본 “우상의 황혼”은 정말 유려했다. 덕분에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이 맞는지 자문하게 됐다. (두어 페이지 읽어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일종의 우화에 가까웠다. 이야기를 통해 모종의 의미를 전달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섣불리 접근해서는 안 된다. 물론 모두 핑계일지도 모른다. 니체 공부를 시도해 볼 수 있었지만, 나태함 때문에 그리고 어려울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요즘 그런 니체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강의 시간에 배운 짤막한 내용들을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굴린다. 이십 대 초반이었나, 한 교수님께서 세상이 영원히 반복되더라도 그걸 이겨내는 존재가 위버멘쉬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러려니 했다. 나는 ‘영원회기’라는 말에 더 꽂혔던 것 같다. 말 그대로 무한하게 반복된다는 말인데, 세상에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은 오늘 끝나며, 삶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무언가 영원히 반복되는 일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것을 이겨낼 필요가 없다. 결국 위버멘쉬는 일종의 사고 실험에 불과하다, 라는 생각이었다. 별 감흥이 오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났을까. 구태여 영원회기를 상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삶이란 징그러울 만큼 유사한 모습으로 반복되고 우리는 그저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계획하고 이에 따른다. 그렇지만 이전의 몇 페이지를 넘겨보면 오늘과 다르지 않다. 앞으로 할 계획도 지금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삼십이 되고 사십이 되고 오십이 될 것 같다. 여기에 어떤 의미가 존재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니체는 어린아이처럼 살라고 했다. 삶을 짊어지지 말고 그렇다고 호령하려 들지도 말고, 어린아이가 살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이해가 될 것 같지만 역시나 모르겠다. 관습과 도덕과 전통을 젖혀두고 자유를 만끽하자는 자세로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이게 니체가 말한 어린아이의 심급인지 아리송하다. 백수의 자기 합리화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매 순간을 긍정하라는 그의 언술은 도대체 무엇일까. 아니, 우리에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지기나 했을까.


이러한 의문 모두, 니체에 대한 나의 몰이해에서 왔다고 생각하고 싶다. 니체를 읽어야겠다고 다짐한 이유다. 나는 나의 삶과 미래를 잘 꾸려갈 수 있을까. 그러길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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