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백수다] 새로운 거처, 광진구①

by 호재

지난 15일, 광진구 군자동에 이사를 왔다. 군자동, 하찮은 추억들이 많은 동네다.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겠는데 하나는 ‘메가박스’다. 학부 시절, 회기 근처에서 살았다. 인근에 있는 영화관이라고는 청량리역에 있는 ‘롯데시네마’가 전부였다. 롯데시네마에서 심야 영화를 즐겨 보곤 했다. 몇 층 아래에 있는 ‘롯데마트’에서 맥주 두어 캔을 구매한 뒤 상영관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영화를 보면 한 주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어느 순간에 취기가 돌면 영화는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진다. 그 가벼움이 눈앞에서 나풀나풀 떠다니고 나는 아무런 무게 없이 영화를 본다. 맞다, 돈 낭비다. 그래서 통신사 혜택을 통해 ‘상업 영화’만 봤다. 영화가 끝나도 후회가 없도록.


하지만 나는 한껏 무거운 영화도 좋아한다. 무거운 영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대충 ‘글을 써보고 싶은 영화’ 정도로 축약될 것 같다. 영화에 너무나 많은 관점이 녹아 있어서 섣불리 접근하기 어려운 영화 말이다. 글 한 편을 써내려면 ‘짱구’를 굴려 어느 정도의 도식화 작업을 해야 하는 영화. 더 속물적으로 말하면, 돈이 안 아까운 영화.


아쉽게도 롯데시네마에는 이런 영화가 많지 않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들 나름의 사업 방법일까. 메가박스를 가야 하는 이유다. 마찬가지로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메가박스는 재개봉하는 명작 영화나 예술 영화를 자주 상영한다.


회기에서 가장 가까운 메가박스가 어디인지 실험을 거듭한 결과, 군자역에 있는 메가박스라는 사실을 알았다. 성수에도 있지만 버스로 가든 지하철로 가든 오래 걸린다. 특히나 퇴근 시간 무렵이면 도로가 막혀 가는데 한 시간 반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사실 대중교통을 탈 경우에도 회기에서 군자까지 왜 오래 걸리긴 한다. 하지만 서울에는 ‘따릉이’가 있다. 이 자전거를 타면 ‘심리적’으로 영화관까지 금세 도착한다. 사십 분 정도. 중랑천 자전거도로를 타면 된다. 그렇게 대학에 다니는 동안 군자역에 있는 메가박스는 나의 단골 영화관이 됐다.


언젠가 이 영화관에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우연과 상상’을 펑펑 울면서 본 뒤, 장미꽃이 양 옆으로 즐비한 자전거도로에서 좀처럼 멈추지 않는 눈물을 틀어막으며 페달을 밟았던 기억이 있다. 초여름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그 포근한 바람이 잊히지 않는다. 나는 무슨 생각을 했고 왜 울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다른 하나는 친척 집에 가기 위해 들렀던 역이 군자역이라는 사실이다. 대학원이 있었던 제천에서 서울에 일을 보러 올 때마다 하남에 있는 묵었다. 청량리역에서 상일동역까지 가는 꼴이었는데, ‘경의중앙선’을 타고 왕십리까지 간 다음 5호선으로 갈아타야만 했다. 하지만 경의중앙선 전철은 습관처럼 더럽게 오지 않는 속성이 있다. 그럴 때면 괜한 추억에 학부 때 다니던 학교를 가로질러 회기역 인근까지 걸어갔다. 영화관에 가던 그 코스를 따라 따릉이를 타고 군자역까지 갔다. 거기서 5호선을 탔다.


군자역에는 분식을 파는 포장마차가 출입구마다 있는데, 뭘 파는지 항상 궁금했다. 하지만 10시 즈음이면 닫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항상 10시가 넘어 군자역에 도착했다. 청량리역에 도착해도 끝나지 않는 할 일을 처리하느라 인근 카페에서 죽치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 뒤늦게 군자역을 향해 나섰다.


이제 메가박스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분식 포장마차는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나의 새로운 거처인 군자동. 소중함과 새로움이 점차 희석될 이곳에서 어떤 삶을 살아 나갈지, 익숙함 반 두려움 반인 상태다. 모든 게 잘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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