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책①] 여전히 알 수 없는 C

나의 친애해는 친구들

by 호재

세상에서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은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비유컨대, 과학에서는 변이가 새로운 이론의 지평을 열어주는 것 같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연한 순간들이 그 사람을 새롭게 바라보는 프리즘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이 프리즘이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재구성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기존에 그 사람을 바라보던 시각과 일부 중첩되는 영역이 존재한다. 어느 부분은 달라진 것이 없지만 어느 부분은 새로운 느낌. 그리고 이 둘은 무를 자르듯 반듯하게 나뉘지 않는다. 혼란스럽다.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C는 가끔씩 ‘그 인간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내뱉었다. 순화하자면 ‘그 사람이 문제예요.’ 그녀는 세상에도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현실을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연약한 것들에 대해서 연민을 품는 사람. 귀여운 것을 보면 ‘어머, 이것 좀 보세요. 귀엽지 않아요?’라는 식의 말을 내뱉는 사람.


내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그녀의 좌절이었다. ‘뭐 어떡하겠어요’ 식의 발언들. '그냥 살아야죠.' 그런 순간마다 그녀를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C는 짜증 나는 세상에 엿을 먹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열심이었다. 시키는 일을 ‘그냥 해야지’라는 심정으로 하는 것 같았다. 바꿀 수 없으니,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는 결심.


결심이 아닐지도 모른다. 포기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녀는 자주 헤픈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나는 어차피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 거냐고 되물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죠’라고 말했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그런 대화가 관성이 됐다.


관성이 되면 그녀의 성향에 적응할 법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 그녀는 말하지 못하는 존재들을 사랑했다. 그녀는 가로수와 쏘가리를 따라 헤엄치는 사람이었다. 왜 그들을 좇냐고 물으면 ‘재밌잖아요’라고 답한다. 그녀가 말한 ‘재미’란 무엇일까. 내 식대로 해석하자면, 존재하지만 침묵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대신 말하는 일. 그녀는 그 작업에 대해 흥미와 관심을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화내는 그녀가, 그러면서도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는 그녀가 여전히 쏘가리와 가로수 사이를 거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그녀가 이 세계에 대항하는 방식일까. 그녀는 내게 말했다. 연약한 존재들을 외면하는 이들이 싫다고. 그건 잘못이라고. 가끔은 되묻고 싶다. 우리는 존재의 슬픔을 얼마나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하냐고. 가끔씩 방문하는 커다란 슬픔의 순간을 막기 위해 오히려 외면하고 살면 안 되느냐고. 슬픔을 블랙 코미디로 거창하게 포장하면서.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할지 모른다. ‘연약한 건 쓸쓸하고 슬픈 게 아니에요.’ 어쩌면 연약하다는 것조차 너무나 부정적인 말이라고 대꾸할 것이다. 그렇다. 나와 그녀의 시각 사이에는 건너지 못하는 구덩이가 있다. 치명적일 정도로 깊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구덩이라 불림 직할 규모의. 이 구덩이 탓에 나는 그녀를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듯싶다. 그래서 친밀함을 유지하고 있었을지도.


그녀가 취직을 했다. 그 세계가 귀여운 이들로 충만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녀가 더욱 잘 알고 있으리라. 괴물과도 같은 세계가 그녀를 집어삼키고 그녀의 화가 분노로 바뀌어 그녀가 투사가 되는 이야기를 꿈꾸기도 하지만 그녀가 바라는 세상이 실현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귀엽지만 연약한 존재가 꿋꿋이 서서 목청을 가다듬는 세계. 마치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처럼.


매콤하고 잔인한 일이 가득할 그 세계에서 그녀 특유의 체념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사금 조각 같은 빛나는 마음씨 또한 잃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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