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둘째는 방으로 간다.

딸 셋 아빠로 산다는 것

by HIPE

둘째에게 처음으로

혼자 쓸 방을 만들어 준 날이었다.


방 안에는 아직

침대도, 책상도 제대로 놓이지 않았다.

주인을 잃은 책들이 방안 가득 놓여 있었고,

편히 앉아 쉴만한 공간 하나 없었다.


그런데도 둘째는

그 방이 너무 좋다고 했다.

그리고 이내 문을 열고 들어가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누웠다.

이불도 제대로 펴지 않은 채

차가운 방바닥에 옆으로 누워

금세 잠이 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문 밖에서 한참 바라봤다.


이제 자기 방이 생겼다는 기쁨이

아이 얼굴에 그대로 있었다.


그때 나는

조금 뿌듯했고,

조금 안심했다.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작은 공간 하나를

건네준 기분이었다.

그 작은 공간이

시간이 지나며 아이의 큰 세계가 되었다.


요즘 둘째는

집에 오자마자 방으로 간다.

현관문이 열리면

"다녀왔습니다"는 들리는데,

발걸음은 곧장 그쪽으로 향한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예전보다 단단하다.


방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른다.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는지,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지,

아무 말없이 누워 천장을 보는지.


나는 가끔

그 방 안의 시간을

상상으로 만진다.


둘째는 예전처럼

말이 많은 아이는 아니다.

말은 줄었고

표정은 단단해졌다.

하지만 웃을 때는 여전히

어릴 때 얼굴이 잠깐 나온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려 하지 않는다.


밤이 조금 늦었을 때

둘째가 물을 마시러 나왔다.

냉장고 불빛이

아이 얼굴을 잠깐 밝혔다.

"오늘 어땠어?"

"그냥."

짧은 대답 뒤에

둘째가 말을 덧붙인다.

"근데 오늘 진짜 웃긴 일이 있었다..."

그 한 문장이

나에게는 생각보다 크다.


문이 닫혀있는 시간이 길어져도,

아이 안의 문까지 닫힌 것은 아니라는 뜻 같아서.


둘째는 방으로 간다.

나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나는 그 자리를 존중하는 법을

아직 배우고 있다.


아빠는

아이들보다 늦게 배운다.

물러나는 법을,

그리고 기다리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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