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셋 아빠로 산다는 것
둘째에게 처음으로
혼자 쓸 방을 만들어 준 날이었다.
방 안에는 아직
침대도, 책상도 제대로 놓이지 않았다.
주인을 잃은 책들이 방안 가득 놓여 있었고,
편히 앉아 쉴만한 공간 하나 없었다.
그런데도 둘째는
그 방이 너무 좋다고 했다.
그리고 이내 문을 열고 들어가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누웠다.
이불도 제대로 펴지 않은 채
차가운 방바닥에 옆으로 누워
금세 잠이 들었다.
나는 그 모습을
문 밖에서 한참 바라봤다.
이제 자기 방이 생겼다는 기쁨이
아이 얼굴에 그대로 있었다.
그때 나는
조금 뿌듯했고,
조금 안심했다.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작은 공간 하나를
건네준 기분이었다.
그 작은 공간이
시간이 지나며 아이의 큰 세계가 되었다.
요즘 둘째는
집에 오자마자 방으로 간다.
현관문이 열리면
"다녀왔습니다"는 들리는데,
발걸음은 곧장 그쪽으로 향한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예전보다 단단하다.
방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른다.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는지,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지,
아무 말없이 누워 천장을 보는지.
나는 가끔
그 방 안의 시간을
상상으로 만진다.
둘째는 예전처럼
말이 많은 아이는 아니다.
말은 줄었고
표정은 단단해졌다.
하지만 웃을 때는 여전히
어릴 때 얼굴이 잠깐 나온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려 하지 않는다.
밤이 조금 늦었을 때
둘째가 물을 마시러 나왔다.
냉장고 불빛이
아이 얼굴을 잠깐 밝혔다.
"오늘 어땠어?"
"그냥."
짧은 대답 뒤에
둘째가 말을 덧붙인다.
"근데 오늘 진짜 웃긴 일이 있었다..."
그 한 문장이
나에게는 생각보다 크다.
문이 닫혀있는 시간이 길어져도,
아이 안의 문까지 닫힌 것은 아니라는 뜻 같아서.
둘째는 방으로 간다.
나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나는 그 자리를 존중하는 법을
아직 배우고 있다.
아빠는
아이들보다 늦게 배운다.
물러나는 법을,
그리고 기다리는 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