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셋 아빠로 산다는 것
월말이면 나는 조금 조용해진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그걸 아는 눈치다.
식탁에서 이야기가 오가다가도
내가 한번 고개를 숙이면
집안 공기가 잠깐 멈춘다.
나는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다.
대신 머릿속에서 숫자를 옮긴다.
이번 달 들어올 돈,
그리고 빠져나갈 돈.
아이들은 모른다.
돈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나간다는 걸.
큰딸은 새로 나온 아이패드 13인치를 이야기한다.
둘째는 새로 산 옷을 보여준다.
막내는 친구 들과 놀이동산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보자"
그 말에는 늘 두 가지 뜻이 있다.
정말로 보겠다는 뜻과,
조금 더 생각해 보겠다는 뜻.
월말이면 나는
말이 줄어든다.
불안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저 어깨를 조금 눌러앉을 뿐이다.
아이들은 눈치를 본다.
아빠가 기분이 나쁜지,
아니면 그냥 피곤한지,
나는 그 경계를 잘 지키지 못한다.
가끔은 생각한다.
조금 더 솔직해도 되지 않을까.
"이번 달은 조금 어렵다."
그 말을 꺼내는 데 왜 이렇게 시가니 걸리는지.
아빠의 사정은
언제나 마지막에 말해진다.
나는 괜히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린다.
소리는 켜지지 않는다.
집은 조용해지고,
아이들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문이 하나씩 닫히는 소리를 들으면
비로소 숨이 길어진다.
월말이면 집안이 조용해진다.
아마도
내가 먼저 조용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딸들은 아직
아빠를 부른다.
나는 그 소리에
다시 고개를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