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이든 허용이 되면 아이들은 말문을 엽니다.
누군가는 오버라고 하겠지만, 우리 집에는 TV가 없습니다. 사실 저는 쉴 때면 패드로 드라마를 끼고 사는 '드라마 마니아'입니다. 그런 제가 기필코 TV를 치운 데에는 아픈 이유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퇴근 후 늘 TV만 보셨고 어머니는 가사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육아로 늘 바쁘셨습니다. 'K-장녀'였던 저는 알아서 공부 잘하는 멀쩡한 학생이었지만, 우리 집에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대화'가 없었다는 것. 나는 내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고, 그 부작용을 20대와 30대에 고스란히 겪어냈습니다. 내 아이만큼은 자기감정을 돌볼 줄 아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간절함, 그것이 거실에서 TV를 치운 이유입니다.
요새 글을 쓰다 보니 제가 자애로운 신사임당처럼 비칠까 봐 양심에 고백합니다. 저는 참을성 없고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ESTP 엄마입니다. 타고나길 우아하지 못해서 욱할 때도 있고, 사납게 굴 때도 있습니다. 자식이 무섭긴 한지 스스로를 꼬집으며 참아보지만 실패할 때도 많죠.
하지만 제가 반드시 지키는 원칙 하나는 '사과'입니다. "엄마가 방금 잘못 표현했어, 미안해." 못난 어미의 실수를 인정할 때, 아이는 금방 용서해 줍니다. 완벽한 엄마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감정을 솔직하게 소통하는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주려 애썼습니다.
그렇게 '표현의 자유'를 먹고 자란 아들의 반격은 10살 이후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기분 나쁘게 말하면 아들은 바로 받아칩니다. "그 말은 좀 기분 나쁜데? 그렇게 말하면 누구든 기분 나쁠 거야." 한술 더 떠서, 제가 가르치려 들면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건 '튜토리얼'이 아니라 '위로'야. 설명서처럼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고 그냥 위로를 해달라고!"
솔직히 처음엔 열이 좀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내 희열이 느껴졌습니다. '아, 내 아들은 나처럼 억울함을 참지 않는구나. 자기 기분을 정확히 방어하고 방법까지 알려주는구나!' 내가 어렸을 때 하고 싶었던 그 말대꾸를 당당히 해내는 아들이 대견했습니다. (물론 타인과 어른을 대할때의 예의는 엄하게 가르칩니다.)
누군가는 '싹수없다'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 '말대꾸'의 힘은 국제학교 입학 때 가장 빛을 발했습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하던 1학년 아들을 학교에 집어넣고 속으로 은근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답변은 놀라웠습니다.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어요. 유창하진 않아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어떻게든 다 전달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말대꾸'를 장려하며 키운 결실이었습니다. 영어를 잘해서가 아닙니다.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기세'가 있었기에 언어의 장벽을 뚫고 살아남은 것입니다. 한국말로도 자기표현을 못 하는 아이가 어떻게 영어로 자기 생각을 뿜어내겠습니까? 저는 내 감정을 깨뜨리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지만, 내 아들은 적어도 그 시간을 벌었습니다. 영어도 결국 '기세'입니다. 그리고 그 기세는 엄마와 마주 앉아 '위로'를 요구하고 '사과'를 주고받는 위화감 없는 대화에서 시작됩니다. 내 아이가 영어를 잘했으면 좋겠다 싶으면 오늘 앉아서 아이가 어떤 표정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한번 들어보시는 것 어떠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