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영혼이 스스로 책상에 앉는 이유

내 인생은 소중하니까

by 힐링영어

개성이 강한 아들을 지켜보고 있자면 수시로 '욱'하고 뜨거운 것이 올라오지만, 결국 나를 할 말 없게 만드는 팩트는 하나다. 아이는 어떻게든 자기 할 일을 스스로 완수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를 옮긴 후, 아이는 전보다 열 배는 어려워진 커리큘럼과 매일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숙제에 "죽겠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미리 계획을 세워 움직이는 '파워 J' 스타일은 결코 아니기에, 매번 마감 직전에 벼락치기로 몰아치며 에너지를 쥐어짜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어떠하든 결과적으로 제 몫을 다해내는 아이의 자율성 앞에서 나의 잔소리는 90% 정도 무력화된다. 남은 10%의 잔소리는 대개 우선순위에 관한 것이다. 학교에 다녀오자마자 게임을 하거나 친구들과의 친목에 에너지를 다 쏟고, 잠들기 직전에야 숙제를 마무리하는 그 위태로운 루틴을 볼 때 내 인내심은 가끔 바닥을 드러낸다.

사실 나의 아들 같은 캐릭터는 '꼬박꼬박 할 일을 해내는 인간 유형'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나는 객관적으로 자문해 보았다. "도대체 무엇이 이 자유로운 영혼을 스스로 움직이게 만들었을까?" 안 하겠다고 드러누워도 어쩔 수 없는 일일 텐데, 시간 관리를 못해서 쩔쩔매는 와중에도 스스로를 점검하고 배움의 성취도에 예민하게 날을 세우는 아이를 보면 기특함을 넘어 신기하단 생각까지 든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답은 아이의 말속에 있었다.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소중히 여기고 있으며, 부모가 자신을 위해 쏟는 노력을 기본적으로 신뢰하고 고마워한다. 만약 아이가 부모에게 깊은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면, 아마 우리를 골탕 먹이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싫어할 만한 일(학업 포기 같은)만 골라하지 않았을까? 천만 다행으로 우리 부부와 아들의 관계는 원만 하다고 보여진다. 자식과의 관계도 결국 본질은 인간관계이므로 감정선이 무너진 상태에서는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들리지 않으며, 상대가 기뻐할 일을 해주고 싶은 마음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아이는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 때문에 공부를 하는 것 같진 않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일찍부터 '성적의 주인'이 누구인지 명확히 인지시켰다. 성적이나 점수는 부모에게 확인받을 일이 아니라 너 자신에게 확인할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국제학교 시절, 성적표가 나오면 나는 늘 이렇게 물었다. "자, 네 점수가 여기 있어. 네가 과목별로 노력한 만큼 선생님이 올바르게 점수를 주신 것 같아?"

이 질문은 점수의 책임자가 '나'임을 아이의 무의식에 새겨주었다. 설령 C나 D, 혹은 F나 G가 찍힌 과목이 있어도 나는 감정을 싣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F나 G는 아예 아무것도 안 했다는 뜻이니까 이건 안 돼. 다음 학기에는 목표를 조금 높여서 C나 D라도 받아보자." 그럼 다음 학기에는 그렇게 받아오곤 했다. 돌이켜 보면 결과가 그랬으니 나름 자기도 노력했던 것 같다.

사실 A만 보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하지만 이미 나온 결과지를 두고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는 저학년인 아이에게 공부와 그 결과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초등 시절 최상위권이었던 나 자신이 과도한 부담감 때문에 배움의 빛을 잃어버렸던 그 안타까운 경험이, 나로 하여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훌륭한 교사가 되어주었다.


덕분에 나의 아들은 때로 망나니 같아 보일지언정, 적어도 자신의 과업을 스스로 챙기는 독립적인 주체가 되었다. 엄마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위해 배움의 상태를 스스로 체크하고 관리한다. 이 자체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사하다.

물론 엄마의 욕심으로는 성과가 쭉쭉 치고 올라가 IGCSE에서 화려한 성적을 거두길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사춘기 무렵에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관리할 줄 아는 인간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난 양육이 크게 잘못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물론 아직 갈길은 멀지만 하루하루가 쌓여 큰 산을 이루어 내리라는 마음으로 반성과 발전을 거듭하며 교육기 육아를 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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