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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나요 Sep 06. 2022

엄친아 모범생이 사십춘기를 겪으면서

나는 소위 말하는 엄친아 모범생이었다. 외고를 졸업하고 명문 대학교에 입학해서, 장학금 받고 대학 다니면서 최우등 졸업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학점 잘 받아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전략 컨설팅에서 일하다가 좋은 미국 학교로 MBA 유학도 다녀왔다. 유학 후 해외에서 일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외국계 기업에서 10년을 넘게 일하면서 직장에서도 인정받았다. 


그렇게 사십이 되었다. 그런데 왜 더 이상 내가 꿈꿔왔던 외국계 회사 대표 자리가 멋있어 보이지 않는 거지? 그렇게 대표가 되어도 결국 50대 초반이면 회사에서 나와야 하는 앞날이 뻔히 보였다. 또 지난 4년간 둘째 아이가 아프면서 병원생활을 셀 수도 없이 했다. 아이를 몇 번이나 잃을 뻔한 상황을 겪으면서, 그리고 우리 아이와 같이 치료받던 아이들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여럿 지켜보면서,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항상 커다랗게 보이던 부모님은 점점 노쇠해지고, 나는 나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 지조차 알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십이 되어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지, 아니면 오래된 직장생활로 인한 번아웃인지, 아니면 가족의 소중함을 더더욱 깨달아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에는 여러 길이 있고, 어떤 길이 더 좋고 어떤 길이 더 나쁜 길은 아니란 사실을 이제는 가슴으로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솔직히 그런 말을 들어도 와닿지가 않았다. 소위 말하는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삶만이 최고이고, 인생에는 정답이 없이 여러 길이 있다는 말은 그런 '성공'을 하지 못한 이들의 나약한 위안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도 여러 일들을 겪고 나이가 들다 보니 이제야 깨닫는다. 


열두 살인 첫째 아이가 얼마 전 나에게 물었다. 대학은 꼭 가야 하냐고.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아니, 꼭 가야 하는 건 아니야.' 그리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지 고민하는 일이라고 얘기해줬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고,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고민하고, 나를 더 잘 알아가는 길. 그래서 내가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가는 일. 엄마는 사십이 되어서야 시작하는 고민을 너는 좀 더 일찍 시작할 수 있어서 좋겠구나. 


지금까지 15년을 일했는데, 앞으로 70살까지 일한다고 생각하면 30년은 더 일할 수 있는 거다. 하물며 요즘 70은 사실 일 안 하고 놀기엔 아직 젊은 나이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몇 년을 내가 좌충우돌 이것저것 해보면서 실패한다고 해도, 30년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Image by a9ent007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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