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파악 19

얼굴

by 가비

주말이 와 있었다.


내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시간은 어차피 흘러갔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시간이라는 존재는 날 버리고 떠난 친어머니만큼이나 냉정하고 냉혹한 존재다. 물론 시간이 냉정하고 냉혹하다는 사실과 진실에 대해서 그건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무너뜨릴 수도 깨뜨릴 수도 없는 진리와 마찬가지니까


시간이 냉정하고 냉혹한 존재라서 그런 걸까?


그냥 피곤해서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어느새 주말이 와 있었다.


나는 친어머니의 얼굴을 모른다. 단지 이름만 알고 있다. 그것은 시간이라는 존재도 마찬가지다.

나는 시간의 얼굴을 모른다.


본 적이 없으니까.


얼굴도 모르고 이름만 아는 시간은 내가 자고 있는 사이, 냉정하고 냉혹한 성질을 숨기지 못한 채

자고 일어난 나에게 [주말]이라는 두 글자를 툭, 던져 놓고 갔다.


그래도 이번 주말은 알차게도 보낸 것 같다.


와이프는 신앙심이 있어서 싸돌아 다니기 바쁘고 딸은 금세 용돈을 받아서 놀러 다니기 바쁘다.

딸이 참 얄밉다.

그렇게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해도 좀처럼 받아 주질 않는다. 뭐 저런 애가 다 있나 싶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하면 좋다고 쫄래쫄래 따라오더니, 언제부터인지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느라 늘 바쁘다.


이러다가

[아빠 족보에서 내 이름 빼줘]라는 말까지 하는 건 아닐까, 괜히 겁이 난다. 딸에게 많이 서운하지만, 그런 서운한 딸이 있기에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나는 다시 힘을 낸다.


정말,

저런 딸을 낳아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물론 고마운 마음과는 별개로 와이프와는 칼로 물 베기는 항상 하고 있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가장으로서, 사나이로서 자존심이 걸린 일 앞에서는 칼로 물 베기는 얼마든지 환영하고 있다.


그동안 허리에 문제가 있어도 출근을 하고, 일을 해 왔다. 관리를 해온 덕에 뛰는 건 아직 불가능하지만, 걷는 건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그래서 음악을 들으며 잠깐 마실을 다녀왔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땅을 박차고 걷던 왼쪽 다리였는데, 신경이 눌리니 조금만 걸어도 힘이 빠져 발목이 흔들린다.


조금 걷다가 쉬고, 조금 걷다가 쉬고. 그렇게 쉬면서 그렇게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본다.


이것이 앞으로 내가 안고 살아가야 할 현실이라고 생각하면 잔인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잔인한 현실을 안고 미래를 끌어안고 살아가야 한다.


이 지구라는 동그란 원 안에 살아가는 수십억의 인간들 중에 사연이 없는 인간이라는 피조물은 있을 수 없고, 상처 없는 인간이라는 피조물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수십억 인간이라는 피조물 중 나 역시 사연과 상처를 가진 인간이라는 피조물일 뿐이다. 물론 그 사연과 상처에 대한 것은 친 어머니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이 괴로운 마음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지처있다. 이건 나와는 다른 종류의 사연과 상처를 떠안으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라는 피조물들도 마찬 가지 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무겁고 지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해 딸에게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다.

딸이 사랑스럽다.

그래서 사랑스러운 딸을 위해 나는 나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간다. 적어도 내가 떠안고 있는 괴로움을 딸이 떠안고 가게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버림받은 채 살아왔고, 그 아픔을 안고 죽을 때까지 살아가야 하겠지만, 내 딸에게만큼은

그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그것이 부모의 모습이 아닐까. 그런 책임감을 안고 앞으로도 버텨 나가야 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랑하고 사랑스러운 딸을 위해서다.


이번 주말은 다행히도 비교적 수월하게 보낸 것 같아 다행이다. 이제 내일은 월요일이다. 월요일이니, 당연히 출근을 해야 하고 다시 5일을 일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주말이 오게 된다.

정말 싫다. 주말이라는 이 녀석을 손절하는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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