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소망이 생겼다.
가능하다면 악마한테 영혼을 팔아서라도 오래 살고 싶다.
왜냐하면, 딸보다 오래 살아야 내가 딸의 죽음을 지켜볼 수 있으니까. 딸이 나의 죽음을 지켜보게 하고 싶지 않다. 내가 딸의 차가운 시신을 책임 지고 싶어도 딸이 나의 차가운 시신을 책임지게 하고 싶지 않다. 수도 없이 상상을 해보지만, 나의 차가운 시신을 책임질 딸의 모습은 너무 가엾기만 하다.
그래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딸의 죽음을 지켜보고 싶다. 그리고 거래에 대한 대가를 받아들이고 싶다.
아직 어린 딸을 볼 때면 항상 가진다.
과연 내 딸이 우리 부부의 죽음을 순서대로 겪게 되었을 때 얼마만큼 감당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우리 딸이 순서대로 우리 부부의 죽음을 마주 하게 될 때 과연 얼마만큼 감당을 할 수 있을지 많은 걱정이 된다. 첫째로 와이프가 이제 50을 맞이했다. 오는데 순서 있다지만, 가는데 순서 없다고. 나도 와이프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정상 적인 정신으로 마주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건 딸에게는 더 큰 충격으로 다가갈 것이다.
와이프가 죽었을 때를 상상해 보았다. 물론 내가 먼저 죽었을 때도 상상을 해보았다. 차가운 냉기로 가득한 와이프의 시신을 마주 한다면, 나와 우리 딸의 모습을 그리고 차가운 냉기로 가득한 나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을 와이프와 우리 딸의 모습을.
만약 나보다 와이프가 먼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차가운 냉기로 가득한 와이프의 시신을 마주 했을 때 나는 정말 눈물은 흐르지 않을 것 같다, 보는 것조차도 눈물을 흘리는 법을 잊을 테니까.
오래 살고 싶다.
오래 살아서 내 손으로 나의 와이프의 우리 딸의 차가운 냉기로 가득한 시신을 책임지고 떠나고 싶다.
요즘은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한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내가 우리 딸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면, 얼마만큼 오래 살아야 할지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 딸은 앞으로 얼마큼 오래 살게 될까? 우리 딸보다 오래 살아야 할 텐데.
우리 딸이 성인이 되고 사회로 나가게 된다면 겪게 될 그 힘들고 어렵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고난과 역경들조차도 내가 대신 짊어지고 싶다.
이게 부모로서의 감정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부부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우리 딸이 정말 잘 살다 가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보고 내 마음으로 느끼며 그렇게 살다가 죽게 되었을 때 내 손으로 우리 딸의 시신을 책임지고 그렇게 떠나고 싶다.
그래서 오래 살고 싶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수만 있다면, 그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 딸의 시신을 책임지고 갈 수만 있다면, 이 따위 21그램짜리 영혼 따위가 무슨 가치가 있을까?
이제 50을 맞이한 와이프를 보면 마음이 조금씩 무너진다. 와이프가 그래도 조금 더 건강하고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 딸이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와이프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웃으면서 미소를 지으면서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나의 소망이다.
가능하다면 악마에게 지금이라고 당장 영혼이라도 팔고 싶다..
그것 조차도 나의 소망이다.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준비도 중요한 것 같다. 단지 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걸 준비하는 게 아니라. 자식이 나의 죽음을 감당할 준비를 시키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정말 걱정이 된다. 만약 나보다 와이프가 먼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딸이 어떻게 감당을 할 수 있을지 와이프의 차가운 시신을 마주 했을 때 내 모습과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의 차가운 시신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의 딸의 모습.
아무리 상상을 하고 또 하고 계속해보아도. 그 무게는 견딜 수 조차 어렵다.
그래서 더욱더 딸보다 오래 살고 싶다.
악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영혼을 살 수 있는 그런 악마가.
조건은 간단하다 우리 딸의 시신을 책임지고 갈 수 있을 때까지만 오래 사는 조건이면 충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