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어차피 국내에서는 출판이 불가능한 5권 분량의 이야기지만, 그래도 미련이 때문에 프롤로그만 공개를 해봅니다. 첫 작품의 외전에서 시작되는 5권 분량의 소설의 프롤로그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한국 저작권 위원회에 C-2023-006021으로 등록되어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공식적인 권리 증명과 보호를 위한 중요한 증거를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13년이나 지나 버렸다. 그들과 이 곳에서 처음 만난 날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13년 전 이곳에서 처음 그들을 만났던 그 날을 떠올렸다.
그날도 오늘처럼 나는 고민을 짊어지고 있었다. 마치 3류 판타지소설의 비운의 주인공처럼.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찾을 수 없었고 나의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갈대처럼 흔들리는 나의 마음을 위로하듯 선선하게 바람이 불어와 어루만진다.
나는 바람을 맞으며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멀리 낙동강은 여전히 쉼 없이 흐르고, 도로 위의 차들은 서로 앞서겠다고 달려간다. 13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게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르지만, 어떻게 보면 본성에 억압된 채 쉽게 변화하지 못하는 것처럼 안타깝고 불행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천천히 두 눈을 감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떨쳐 낼 수 없는 고민에 저항하며 따스한 햇볕과 선선한 바람을 느껴본다.
포근하고 고요하며 그리고 평온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풀 잎새 따다가~ 엮었어요~예쁜 꽃송이도 넣었고요~]
영원히 붙잡아 두고 싶은 감정들에 잠시 빠져 있던 순간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평온함을 깨며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걸려온 번호를 확인하는 순간, 내 몸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출판사인데요]
전화기 너머로 상냥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짧은 한마디에 나의 두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한다. 마침내, 오랜 시간 잃어가며 완성한 글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네. 안녕하세요.”
[격랑의 원고 마무리는 다 되었습니다.]
“아하! 네! 정말 감사합니다!”
[발행일은 9월 9일로 잡혔는데 생각해두신 발행일이 따로 있으신가요?]
전화기 너머로 아가씨가 나에게 물었고 나는 어느새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내버려 둔 채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따로 생각해둔 발행일은 없습니다. 준비되는 대로 바로 발행해주세요. 그동안 원고 마무리해주신다고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하 네. 그럼 발행일에 맞추어서 바로 발행을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전화를 끊은 뒤 두 눈을 감았다. 두 눈에 맺히시 시작했던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한 손으로 눈물들을 닦아내었다.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1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내 마음으로 품었던 아이가 드디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제 곧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이 아이는,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이가 상처받지 않아도 되는 ‘무기가 없는 세상’이라는 내 이상 하나만을 붙잡고 쓴 글이다.
그 이상 하나에 기대어, 나는 많은 것을 잃어 가며 이 글을 완성했다. 그동안 계란으로 바위 치기 하듯 기약도 미래도 확신할 수 없는 변변찮은 글 따위에 인생을 걸고 많은 것을 잃어가는 아픔과 상처를 견디면서도 글을 완성한 나 자신을 칭찬했다.
이제는 마음으로 낳은 이 아이가 더는 이 세상에 우리 같은 대운을 짊어진 자들이 나타나지 않아도 되는 그런 평화로운 세상으로 변화하게 되기를 간절하게 희망할뿐이다.
부디 이 세상이 더는 무기가 필요 없는 세상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피조물로서, 그리고 대운을 짊어진 자로서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이제는 그 선택과 결정을 후회하지 않기만을 바라며, 남은 일은 모두 하늘에 맡긴다.
13년 전, 이곳에서 처음 그들을 만난 뒤 내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한 명의 대운을 짊어진 자로서 글을 쓰게 되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나는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리고 조심스레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언제나 내 곁에서 응원하며 한 단어 한 문장씩 다듬어 준 고마운 사람이 있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 원고는 결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전화를 걸고, 통화 연결음 사이로 그녀의 목소리만 기다렸다.
[여보세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여보세요? 전화해놓고 왜 말을 안 해? 댁님아?]
그녀의 장난 섞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달려가 꼭 안아버리고 싶었지만… 그건 그저 마음속 바람일 뿐이었다.
“안 돼! 끊지 마! 끊으면 나 접시물에 코 박고 임종할 거야!”
[얼씨구, 죽을 용기는 있으시고요? 대액~님?]
“죽을 용기야 없지요. 있었으면 진작 죽었겠지요.”
평소처럼 우린 장난을 주고받았다.
[진짜... 댁님 바다에 던져 보고 싶어.]
“갑자기 왜 바다에 던져?”
[입이랑 손만 둥둥 떠 있을 거 같아서.]
“그런 상상하지 마! 우리 자기는 착한 사람이잖아!”
[됐고. 근데 왜 전화했어? 책 읽는데 방해됐다고.]
나는 큰 심호흡을 하고, 터질 듯한 기쁨을 장난으로 감췄다.
“헤이~ 이쯔 마이 쏘 핫 쎅시 베이베~!”
[...아, 씨발.]
욕설이 들려왔고, 나는 더는 장난칠 여유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오빠, 작가 됐다.”
[정말!? 축하해!!]
“방금 출판사에서 연락 왔어. 원고 수정 끝났고, 내일부터 출판 들어간대.”
그녀의 진심 어린 축하를 들으며 낙동강을 바라봤다. 마음 깊은 곳에서 미소가 흘렀다.
“고마워. 정말, 네 덕분이야.”
[‘자기’라는 말 좀 하지 마. 오글거려 죽겠어.]
“그럼 ‘달링’은 어때?”
[아... 씨발...]
늘 그랬다. 나는 그녀를 놀리고, 그녀는 투덜대면서도 다 받아줬다.
“지금까지 도와줘서 고마워. 진심으로. 이 책이 잘 되면 오빠가 뭐든 다 해줄게. 원하면 나라 하나쯤은 바쳐줄게.”
[그딴 거 필요 없어. 앞으로 좋은 글이나 써.]
“그래도 명색이 ‘격랑’을 세상에 나오게 한 제일 큰 공신인데, 그 정도는 받아야지 않겠어?”
[...헛소리. 나 끊는다. 나 책 읽을 거야.]
그녀의 냉정한 말에 나도 웃으며 맞받았다.
“책이야 나야? 나보다 책이 더 중요해?”
[하아아...]
짜증 섞인 한숨이 들려왔고, 나는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현명하단 걸 알았다.
“미안. 방해해서. 책 읽어.”
[출판 축하해. 다음에도 글 쓰면 도와줄게.]
“응. 고마워.”
전화를 끊자, 다시 낙동강이 눈에 들어왔다. 기쁜 소식을 부모님께 전해야 하나 망설였지만, 순간 그럴 필요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이제 진짜로, 하나의 긴 겨울이 끝났다는 걸 느꼈다. 이제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올 것이다. 그렇게 계절이 반복되다 보면, 언젠가는 이 세상도 무기도 없는 평화로운 곳이 되겠지.
그런 희망을 품고 나는 정상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또 한 번, 13년 전 그날을 향해. 간절히 바랐다. 이번 책이 나를 그들 곁으로 다시 데려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