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프로세스를 따라가는 여정
디자인은 단순히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아이디어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물로 구현해 내기까지, 수많은 고민과 선택의 순간들이 이어지죠. 이 과정을 보다 체계적으로, 그리고 시행착오를 줄이며 진행하기 위한 하나의 길잡이가 있습니다. 바로 디자인 프로세스입니다.
디자인 프로세스란, 디자인을 착수부터 완성까지 단계별로 정의해 놓은 일련의 절차를 말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무형의 정보를 유형의 가치로 전환하는 여정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은 순서로 진행됩니다.
1. 주제 설정
무엇을 디자인할 것인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디자인의 대상과 목적을 분명히 설정하는 것입니다. 이 작업은 나침반과도 같아, 이후 전개될 모든 과정의 방향을 잡아줍니다.
2. 리서치 (Background Research)
“지피지기면 백전불패”
디자인 대상과 관련된 정보들을 폭넓게 수집하고 분석합니다. 사용자, 환경, 시장, 트렌드 등 다양한 관점에서 정보를 모으는 이 단계는 디자인의 본질적인 목적과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됩니다.
3. 컨셉 수립 및 발전 (Concept Development)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형태와 기능에 대한 초기 구상을 시작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논리적인 사고가 함께 어우러져야 합니다.
4. 디자인 정교화 (Design Refinement)
선정된 컨셉을 보다 구체화합니다. 기술적 구현 가능성, 구조적 안정성, 생산성 등을 고려해 디자인을 다듬고,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말하자면 디자인의 ‘뼈대’가 이 단계에서 탄탄히 세워지는 셈이죠.
5. 프로토타입 제작 및 평가 (Prototyping & Evaluation)
2D 또는 3D 형태의 디자인을 실제로 만들어 보고, 이를 통해 실제 사용 환경에서의 문제점이나 개선점을 점검합니다. 이 단계는 ‘상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6. 최종 디자인 확정 (Finalization)
모든 과정을 거쳐 완성된 디자인을 최종 확정합니다. 이때 CMF(Color, Material, Finish)와 같은 마감 요소들도 결정되어, 제품은 비로소 사용자와 만날 준비를 마치게 됩니다.
디자인 프로세스는 1919년 바우하우스의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술의 발전과 사회 변화에 발맞춰 진화해 왔습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디지털 디자인, 디지털 프로토타이핑, 애자일(Agile) 접근법, 그리고 UX 중심의 사고방식이 디자인의 핵심 프로세스로 자리 잡으며 더욱 유연하고 사용자 중심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비록 취미의 수준이긴 하지만 시간을 보다 의미 있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이 디자인 프로세스를 따라가 보고자 합니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죠.
먼저 제가 만들고자 하는 퍼터 디자인의 방향을 구체화하기 위해 시장에 출시된 다양한 제품들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다른 제품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포인트는 무엇인지, 어떤 기술적 요소들을 중심으로 설계할 것인지에 대해 정리해 보는 중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퍼터의 모습이 상상으로나마 정리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디자인을 시작하기에 앞서, 저는 먼저 현재 시장에서 어떤 퍼터들이 사랑받고 있는지, 그리고 각각의 제품들이 어떤 디자인 언어와 기술력을 담고 있는지를 조사해 봅니다. 이 과정은 단지 참고의 의미를 넘어서, 제가 어떤 디자인을 추구하고 싶은지를 되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주요 브랜드들을 살펴본 결과입니다.
*스카티 카메론 (Scotty Cameron)
실용적인 퍼터에서 이제는 가치 투자 대상으로까지, 고급 골프용품의 아이콘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T.P. MILLS
공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잘 굴러간다’는 평을 받는 놀라운 기술력. 정밀 밀링 가공에서 느껴지는 장인정신이 인상적입니다.
*베티나르디 (BETTINARDI)
언제 어디서든 빠지지 않는 존재감. 위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술력과 정밀한 디자인 품질을 자랑합니다.
*PXG (Parsons Xtreme Golf)
밀리터리 감성을 디자인으로 승화시킨 독특한 접근이 돋보이는 브랜드입니다. 강인함과 고급스러움의 묘한 조화를 보여주죠.
*오디세이 (ODYSSEY)
‘가난한 자를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곤 하지만, 실은 근본 있는 퍼터. 고급형 보급기로서 튼튼한 입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핑 (PING)
카스텐 솔하임의 손에서 탄생한 ‘혼이 담긴 퍼터’. 퍼터의 근대화를 이끈 전설이자 여전히 시장의 중심에 있는 브랜드입니다.
*기타 브랜드들
메이저급이 아니더라도, 틈새 취향을 겨냥해 매력적인 제품들을 내놓는 브랜드들도 여럿 있습니다.
퍼터 디자인, 제가 추구하는 방향은?
이미 출시된 제품들은 골프의 역사만큼이나 훌륭한 제품들이 많습니다. 디자인, 소재, 정밀 가공기술, 마감, 기술력까지 말 그대로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이런 제품들은 수천 번, 수만 번에 달하는 테스트와 프로 골퍼들의 섬세한 피드백을 반영해 탄생합니다. 말 그대로 극한의 퍼포먼스를 추구하는 결과물인 셈이죠. 물론, 가격 또한 그만큼 ‘극한’ 일 때가 많습니다. (수긍이 되기도, 안 되기도 하죠...)
저는 조금 다른 지점을 지향합니다. 취미로서의 골프, 그리고 디자인을 즐기는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중심으로 퍼터를 디자인해보려 합니다.
> 말렛타입 퍼터 (Mallet Putter)
초보자에게 적합하면서도 디자인 요소가 풍부해, 창의적인 시도를 하기 좋습니다.
> 기존 틀을 벗어난 조형미
기본적인 형태는 유지하되, 일반적인 제품들과는 다른 시각적 매력을 추구합니다.
> 규정을 유연하게 해석
골프 규정을 엄격히 따르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틀 안에서는 벗어나지 않습니다.
> 기술력의 한계를 고려한 현실적인 대안 제시
사용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가능한 수준 내에서의 대안을 고민합니다.
> 차별화된 조형 요소
기존 퍼터들이 채택하지 않은 디자인적 포인트를 통해, 독보적인 개성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왜 말렛 퍼터인가?
퍼터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뉩니다: 블레이드 퍼터와 말렛 퍼터.
블레이드 타입은 1960년대 ‘PING ANSWER’ 퍼터의 등장 이후 업계의 정석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말렛 퍼터는 그보다 더 높은 디자인 자유도와 기능 확장의 가능성을 가집니다.
개인적으로도, 직선적이고 각진 디자인이 지배적인 시장 흐름 속에서 유선형을 가진 퍼터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 늘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멋들어진 유선형을 가진 퍼터가 하나쯤 있으면 어떨까?”
디자인에서 곡선과 볼륨이 어우러진 조형은 본능적인 흥미를 유발합니다.
예를 들면, 비행기 날개 끝의 윙렛(Winglet)처럼 말이죠. 공기역학적인 아름다움과 기능성의 상징.
이런 형태적 영감을 바탕으로, 퍼터의 기본적인 틀은 유지하되 기존 제품과는 전혀 다른 감각의 조형을 시각화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컨셉스케치를 시작해봅니다.
아이디어는 머릿속에만 담아두기보다는, 간단한 스케치로 외부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이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시작이고, 흐름이고, 감각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 스케치를 바탕으로 어떻게 컨셉을 발전시켜 나가는지, 그리고 구체적인 형태로 어떤 방향성을 잡아가는지 공유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