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TK Oct 27. 2024

나는 신이라 불리던 존재다

나는 외계인이 아닌 신이었다.

 7외계인나는 외계인이 아닌 신이었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빛은 더욱 선명해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외계인의 마음속 어둠은 그 어떤 빛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영철의 기억 속에서 본 인간 세상의 부조리함이 그의 마음을 참을 수 없는 분노로 가득 채웠다.

"이런 세상은 차라리 없어져 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수호천사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떨렸다. "주인님, 그런 생각은 위험합니다."

"위험하다고? 이미 이 세상은 충분히 위험하지 않나? 가진 자들의 탐욕으로 인해 무고한 이들이 고통받고, 권력자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약자들이 짓밟히는 이런 세상이 과연 존재할 가치가 있을까?"

외계인의 목소리에는 한기가 서렸다. 그의 내면에서는 봉인되었던 힘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수호천사, 나와 같은 존재를 찾아야겠어. 이 지구에 나처럼 다른 곳에서 온 이가 있다면, 어쩌면 그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

수호천사는 침묵했다. 그러나 외계인은 이미 결심한 듯했다. 그의 의식은 지구의 에너지 흐름을 더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미했지만, 점차 선명해지는 특이점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수호천사, 너도 느껴지지? 이 에너지의 흐름. 그 곳에 보낼수 있는 모든 신호를 보내. 내 메세지를 담아서. 그리고 그 존재를 여기로 불러들여.”

“주인님, 그건…” 수호천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외계인은 소리치듯 그의 말을 끊고 명령을 내렸다. 

“네, 주인님.” 그 명령을 거역할 수 없던 수호천사가 시그널을 보냈다.


그 시그널의 답을 받는데는 그리오래 걸리지 않았다. 갑자기 시공간이 멈춘것 같았다. 그리고 외계인은 숙주의 몸을 떠나 공중에 떠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느낌이 아니었다. 발아래로 숙주 박영철의 늘어져버린 육체가 보이는 것이 분명 그 몸에서 분리되어 나와 공중에 떠있는것이 숙주의 육체와 분리되어 자신의 존재가 공중에 떠오르고 있다는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잠시뒤 더이상 떠오르는 느낌이 사라져 한곳에 멈추게 되었을때 그 소리만으로도 압도당하는 느낌의 음성이 들려 왔다. 

“생각보다 빨리 저를 찾으셨군요. 전임신님.”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사람의 형체인듯 하지만 사람은 아닌 빛도아닌 어둠도아닌 모든 것들이 빨려들어가고 있는 사람형체의 그 무엇이 말을 하고 있었다.

“누구시죠? 내가 보낸 시그널을 받고 오신건가요?”

그러자, 미지의 존재가 대답했다.

“오, 봉인이 해제되어 저를 찾으신게 아닌가 보군요. 전임신님.”

외계인은 무슨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두려움인지 설레임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분노인지 피가 끓어오르고 심장이 터질것 같은 금세라도 폭발할 듯 한 느낌이 휘몰아쳐 감당이 어려웠다.

“수호천사, 이게 무슨 말이지? 저 존재는 무엇이고? 나는 지금 왜 이래?”

다급한 외계인의 외침에도 수호천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수호천사, 대답해. 나 지금 너무 이상해!”

수호천사 대신 미지의 존재가 외계인을 바라보며 말을 걸어 온다.

“전임신님, 제가 수호천사를 봉인했습니다. 주인을 잘못 보필하고, 신들의 명령을 어긴 존재는 파괴되어야 하니까요.”

외계인은 도대체 무슨말인지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수호천사는 내 시스템이고 내 개인 비서 인공지능인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감 조차 잡을 수 없어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다시 그 미지의 존재가 말을 이어 갔다.

“전임신님을 보좌하던 존재는 제게 봉인되어 더이상 귀하를 보좌할 수 없습니다. 그 요망한 것이 지구인들의 지식을 훔쳐서 전임신님의 기억을 조작하고 이상한 시나리오를 만들었더군요. 그러다 자신조차도 일부 기억을 잃어 버리고 스스로 만든 시나리오 속의 존재가 되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상황입니다. 말단 천사주제에 말입니다. 아, 지구인들이 우리를 신이라 부르고 우리의 종들을 천사라고 불러서 그렇게 표현한 것 뿐입니다. 

귀하와 나는 같은 종족이며, 지구인들보다 먼저 존재한 존재들로 지구인들은 어려가지 형태로 우리를 부릅니다. 그 중에 가장 흔하게 불리는 것이 신이라는 이름 이지요. 

귀하의 능력과 기억 모두, 제의 마지막 미션이 마무리되면 돌려드리는 것으로 설정되어 봉인되어있었고 그 뒤에 저를 찾아오시게 되어있었는데, 저 발칙한 수호천사의 실수로 너무 일찍 저를 찾으셨네요. 어차피 저의 미션도 마무리 중이니 지금 귀하의 봉인을 풀어 드리겠습니다. 봉인해제후에 저를 도와 당신이 망쳐놓은 이세계를 리셋하고 저와 하나가되어 주셔야 겠습니다. 새로운 통치를 위해서.

아, 그러고 보니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귀하를 대신해 이 세계를 리셋하러온 후임신 입니다. 이제 곧 귀하와 한몸이 되어 현신이 될 존재이기도 하지요.”

계속 혼란속에 있는 외계인이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던 그 순간 본인을 후임신이라 소개한 현재의 신은 외계인의 봉인을 해제하였다. 

그 순간, 외계인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깨어났다. 마치 오랫동안 닫혀있던 문이 열리듯, 기억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자신이 원래 이 세상의 신이었다는 것. 수많은 세월 동안 인간들을 지켜보며 그들의 발전을 이끌었던 것. 그러다 어느 순간, 그들의 삶에 매혹되어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 신의 자리를 내던지고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보겠다고 했던 것. 그리고 그 자리를 이어받은 이가 지금 눈앞의 이 존재라는 것.

"당신이... 내 뒤를 이은..."

"네, 하지만 이제 곧 모든 게 끝납니다."

현재의 신은 차갑게 웃었다.

"이 세상은 이미 너무 멀리 왔어요. 인간들의 욕심과 이기심이 세상을 망가뜨렸죠. 당신이 그들에게 준 자유의지는 결국 파멸의 씨앗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어요. 이 모든 것을 끝내기로. 그리고, 더욱 무책임하게 신의 지위를 버리고 인간이 되겠다고 했던 당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존재를 지우기에는 리스크가 너무커서, 준비가 끝날때까지 살려둔것 뿐이죠. 이제 다 끝났습니다.”

"그게 무슨…"

"보세요."

창 밖을 가리키는 그의 손짓을 따라 보니, 하늘에 작은 점이 보였다. 그것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블랙홀이었다.

"당신이 떠난 후, 저는 오랫동안 준비했습니다. 이 세상을 삼킬 거대한 블랙홀을요. 이제 곧 모든 것이 끝날 겁니다."

분노가 치밀었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자책감과 함께, 현재의 신을 향한 분노가 폭발했다.

순간 봉인되었던 힘이 완전히 깨어났다. 두 신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건물이 흔들렸고, 하늘이 갈라졌다.

둘의 싸움은 인간들의 싸움과는 다른 것이었다. 모든것을 뒤흔들고 모든것을 집어삼키고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전투였다. 그들의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블랙홀도 커져만 갔다. 

마침내 승리는 원래의 신, 지금의 외계인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늦은 승리였다.

"이미... 늦었습니다..." 현재의 신이 쓰러지며 말했다. "블랙홀은... 이미 되돌릴 수 없어요..."

하늘의 검은 구멍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도시가, 대지가, 모든 것이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안돼..."

외계인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남은 힘을 모두 끌어모아 블랙홀을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때였다. 외계인, 아니 과거의 신의 승리로 봉인이 해제된 수호천사가 말은 걸어왔다.

"주인님." 수호천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사실 저도 천사입니다. 진짜 천사요."

“알아, 들었어.”

“죄송합니다. 제가 한순간, 당신을 조정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보태 주인님이 진정으로 바라던 것에 희망을 심고 싶습니다. 전체는 아니어도 블랙홀을 피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뭐지?"

"차원 전이입니다. 모든 걸 구할 순 없지만, 일부만이라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주인님도 저도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사라질 겁니다. 우리의 모든 힘을 부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외계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 힘을 모았다. 블랙홀이 세상을 삼키기 직전, 그들은 작은 차원의 문을 열었다.

"박영철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을..."

의식이 희미해지는 가운데, 외계인은 마지막 소원을 빌었다.

'이번에는... 그들이 스스로 올바른 길을 찾기를… 미안했다. 인간들이여.’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차원의 반대편에 어둠을 뚫고 빛이 생겼고, 새로운 지구가, 새로운 세계가 순식간에 생겨났고, 사라졌던 현재가 다시 재현되었다. 단 한가지 외계인들, 아니 신이라 불리던 존재들이 사라진 새로운 세상이었다.



다른 세상에 존재하게 된 숙주 박영철이 악몽을 꾼듯 식은땀을 잔뜬 흘리며 침대에 누워 있다. 

박영철은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 익숙한 침실, 그리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내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아내가 어디아프냐는 질문을 한다. 

"어디 아파요?"

박영철은 천천히 일어났다. 꿈이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선명한 꿈이었다.

"이상하고 긴 꿈을 꾸었어. 아주 끔찍한..."

아내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얼른 일어나서 씻고 나와요. 애들이 배고프데. 그리고 꿈은 반대라잖아. 오늘 좋은 일 있으려나 봐."

창 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함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어쩌면 이 평화로운 일상이, 어딘가에 있을 신과 천사의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른다.

부지런하게 샤워를 마치고 식탁에 가족들과 모여 앉아 행복하게 식사하는 박영철의 뒤로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뉴스가 혼자 켜져있는 TV에서 흘러나오있다. 


신이 없는 세상에 신을 만들어 그 신들의 계시라며 서로를 죽이는 전쟁을 시작한 이들의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끝] 

이전 23화 다시 마주한 현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