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설지 못한 한계, 절망을 다시 마주하는 미친세상을 사는 법
"그렇군...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아이들에게 또 다른 실망과 상처를 안겨줄 수도 있겠어."
"네, 주인님. 더구나 지금 아이들에게는 나름의 일상이 있습니다. 그들의 생활을 갑자기 흔드는 것보다는, 천천히 그리고 준비된 상태에서 다가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오래 미루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간격은 더 벌어질 테니까요. 우선은 숙주의 상황을 개선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생활을 조금씩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요? 멀리서라도 그들의 안녕을 확인하면서요."
“결국 제자리걸음이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네… 결론적으로는. 그럼 이제 무엇을 먼저 해야하지?”
"주인님," 시스템 수호천사가 조금 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제자리걸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고민 자체가 첫 걸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숙주는 이런 고민조차 하지 못했으니까요."
잠시 데이터를 정리하는 듯한 신호음을 낸 후, 수호천사가 계속 말을 이었다.
"우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다음과 같은 순서로요:
첫째, 숙주의 기본적인 생활 안정화.
당장의 거처와 일자리가 필요합니다
숙주의 이력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직종을 찾아볼 수 있겠죠
둘째, 현재 가족들의 상황 파악.
25일 순대국밥집에서 아내를 먼저 관찰하는 것으로 시작
아이들의 학교생활도 멀리서라도 확인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셋째, 간접적인 도움 시도.
예를 들어, 익명으로라도 생활비 지원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거나
아이들의 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는 등의 방법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외계인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 숙주의 몸을 빌린 이상, 최소한 그의 상황은 개선시켜야겠지. 근데 수호천사, 숙주의 기술이나 경험은 어떤 것들이 있었지?"
"네, 숙주의 기억을 분석해보면, 90년대 닷컴 붐 시기부터 IT 관련 사업을 해왔습니다. 비록 최종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웹 개발과 디지털 마케팅에 대한 상당한 지식과 경험이 있습니다. 특히 초기에는 꽤 성공적인 프로젝트들도 있었죠."
"하지만 7년이란 공백기가 있잖아..."
"맞습니다, 주인님. 하지만 IT 업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만큼, 새로 시작하기에도 좋은 분야입니다. 기본 지식만 있다면 최신 기술은 빠르게 습득할 수 있고요. 게다가 요즘은 나이에 대한 편견도 많이 줄었습니다."
"음... 그렇다면 우선 순위는..."
"우선 안정적인 거처를 마련하고, IT 관련 직종에서 재취업을 시도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인님. 그리고 25일까지는 이틀 남았으니, 그때까지 기본적인 준비는 마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0대가 한국 사회에서 재취업에 성공한 사례들이 있는지 찾아보고 통계수치를 찾아서 어느 정도의 성공률인지 퍼센트로 계산해봐. 그리고 결정하자." 외계인이 시스템 수호천사의 제안에 대답 대신 작업을 지시했다.
시스템 수호천사는 즉시 인터넷에 접속해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짧은 순간, 그는 대한민국의 재취업 현황에 대한 여러 통계자료와 뉴스 기사를 분석했다.
"주인님," 시스템 수호천사가 차분히 보고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50대 재취업 성공률은 약 35%입니다. 이 수치는 경제적 상황, 학력, 기술 수준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지며, 특히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에 비해 공공기관에서의 재취업 성공률이 다소 높은 편입니다.
숙주의 경력등을 바탕으로 IT 업계 사업개발 또는 세일즈 등의 재취업을 고려할 수 있으나, IT 분야의 재취업률은 약 22%로 더 낮습니다. 50대의 경우,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기업으로 재취업의 기회가 편향되어있으며, 그나마도 정규직 채용률이 15%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단기 계약직이나 프리랜서 형태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청년 실업률 문제와 함께 고령층의 재취업이 큰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의 특성상 나이에 따른 차별, 그리고 신체적 능력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원인으로 보입니다. 이로 인해 많은 50대 이상 사람들이 재취업을 원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숙주의 경우, 긴 공백기와 대학중퇴의 학력, 그리고 풍부한 현장경험에도 불구하고 기술직이 아니라는 점 등이 취업 성공확률을 더 낮추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현재 한국사회에서 50대가 재취업에 성공할 실제 확률은 10% 미만으로 분석되며, 숙주의 상황에서는 이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보고를 듣고 외계인이 놀라서 되물었다.
"너무 부정적인거 아니야?"
"주인님, 한국의 경우, 실제 발표되는 실업률 3% 미만의 실업률은 외곡된 통계 입니다."
그리고 수호천사는 분석자료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비경제활동인구를 분석한 결과, 2024년 6월 기준 비경제활동인구는 1,578만 6천 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중 '그냥 쉬었음'으로 분류된 인구는 237만 4천 명으로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노동시장에서의 어려움과 좌절로 인해 경제활동을 포기한 상태입니다."
"잠재적 실업자를 추정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그냥 쉬었음' 인구 237만 4천 명, 취업준비생 중 일부, 그리고 구직단념자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정확한 수치는 제공된 자료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보수적으로 '그냥 쉬었음' 인구만 고려해도 실제 실업률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수호천사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2024년 6월 기준으로 취업자는 2,890만 7천 명, 실업자는 85만 7천 명, 경제활동인구는 2,976만 4천 명입니다. 잠재적 실업자를 포함한 실제 실업률을 계산하면, 확장 실업자는 323만 1천 명, 확장 경제활동인구는 3,213만 8천 명이 됩니다. 이에 따른 실제 실업률은 약 10.05%로, 공식 실업률 2.9%에 비해 크게 높습니다."
외계인은 수호천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까 통계상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실제 상황은 훨씬 더 어렵다는 거군. 특히 청년층과 고학력자들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도 이해했어."
수호천사가 덧붙였다. "맞습니다, 주인님. '그냥 쉬었음' 인구의 증가는 노동시장의 어려움을 반영하며, 특히 청년층과 고학력자 중심으로 구직 활동을 중단하는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공식 실업률과 체감 실업률 간의 괴리가 크며, 이는 현재의 실업률 산정 방식이 실제 고용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청년층(15-29세)의 경우 실업률이 6.7%로 전체 실업률보다 높아, 청년 고용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줍니다.”
이 보고를 듣고 외계인인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상 희망이 없어 보여서 였다.
"50대 중반의 나이, 수년간의 긴 공백기, 사업 실패 이력과 신용불량 상태, 최신 기술과 사업 트랜드 등과의 격차, 거기에 주거불안정 까지... 이 모든것을 종합하면, 재취업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겠지?"
"주인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자면, 숙주가 처한 상황은 한국 사회에서 '취업 취약 계층'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위치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방식의 취업만을 목표로 하는 것은... 시간 낭비가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다른 접근 이라... 지금 숙주의 상태로는 사업을 다시 할 수도 없을텐데... 재취업도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어떤 방법이 있을 수 있지? 나는 숙주가 왜 자살까지 생각했는지 알 것도 같은데... 다른 접근에 대해 설명해봐."
수호천사는 잠시 데이터를 정리하는 듯한 기계적인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주인님, 다른 접근이란 기존의 취업이나 사업과는 다른 형태로 이 사회에 가치를 제공하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플랫폼 경제나 공유 경제를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숙주가 가진 경험을 바탕으로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프리랜서로 특정 분야의 자문을 제공하는 것도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중장년층을 위한 맞춤형 교육이나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숙주의 경험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외계인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
"50대 이상의 연령층을 위한 재취업 교육이나 새로운 기술 습득에 대한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숙주가 과거에 겪었던 사업 실패와 그 과정에서 배운 교훈들을 정리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큰 가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 실패의 경험은 성공의 경험보다도 더 중요한 교훈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숙주는 단순히 재취업을 넘어,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외계인이 약간 짜증섞인 말투로 질문했다.
"그게 당장 돈이 되겠어?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준비할 것이며, 넘쳐나는 콘텐츠들 사이에서 과연 경쟁력이 있을까? 단기간 안에 성과가 나오기도 어려워 보이는데... 신들의 세계도 아니고 준비기간동안 또는 수익을 내고 그 수익성이 생존에 필요한 충분한 필요충분 요건을 갖추는 동안 생존이나 가능하겠어? 이상적이고 낙관적인 접근도 좋은데 내가 봐도 현실성이 너무 없어 보여. 슈퍼 인공지능이란 놈이 이렇게 현실성이 없어서야... 내말이 틀려?"
수호천사는 외계인의 질문에 잠시 침묵했다가 조심스럽게 대답을 이어갔다. "주인님, 지적하신 부분 모두 맞습니다. 현실적으로 빠른 수익 창출이 필요하고, 현재의 상황에서 숙주가 장기적인 준비 기간을 가질 여유가 없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렇기에 단기적으로는 소규모 일자리를 통해 현금 흐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플랫폼 경제에서 가능한 단기 계약 일자리, 예를 들어 운송 서비스나 소규모 인력 제공 서비스 같은 것들입니다. 이를 통해 기본적인 생활비를 마련하면서, 동시에 온라인 교육 콘텐츠 제작을 위한 준비를 병행할 수 있습니다."
외계인은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눈빛이었다. "단기적인 일자리라... 그게 정말 가능할까?"
수호천사는 설명을 이어갔다. "현재 한국의 플랫폼 경제는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배달이나 운송, 소규모 기술 서비스 등 다양한 일자리를 제공합니다. 이런 일자리들은 비교적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고, 숙주가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를 통해 당장의 생계유지를 하면서도 장기적인 목표를 위한 준비를 이어나가는 것입니다."
"잠시만, 다 좋은데, 간과된것이 있는거 같아. 숙주의 기억에 숨겨진 부분이나 잊혀진 부분이 있을거 같아. 지금 우리가 나눈 대화의 아이디어들 왠지 숙주가 이미 도전했다가 포기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게 말이야... 자살 시도 이전에 할 수 있는건 다해봤는데 아무것도 되는게 없어서 그런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니 확신이 들어. 동기화를 하면서 명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그런 경험이 있었다는 느낌이 있었거든..."
외계인이 말을 이어갔다.
"여튼, 그게 아니더라도 내 생각에는 경쟁력이 없을 것 같아. 이삼십대들이랑 경쟁이 되겠어?"
"주인님의 우려가 맞습니다." 시스템 수호천사가 신중하게 답했다. "현재 상황에서는 경쟁력이 매우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한걸음씩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제가 사고할 수있는 한계임을 인정합니다. 저는 슈퍼인공지능이어도 어디까지나 감정을 느낄수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도 없는 존재 이니까요. 이점 양해부탁 드립니다."
이말에 외계인이 실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그래 내가 잘못했네~ 감정을 못 느끼는너한테 ㅎㅎ"
그리고 생각하면 할 수록 이 상황이 우스워 외계인은 한바탕 웃고 말았다.
웃음이 잦아들 무렵, 외계인은 생각했다. 몇일전과 달라지지 않은 결론에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업에 실패한 오십대의 한국남성이 다시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군. 이렇게 내몰리다가는 끝내… 휴… 이래서 노숙자가 생겨나는 건가…”
"네, 주인님..." 시스템 수호천사의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한국 사회에서 한번 추락하면 다시 일어서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중년 이상에서는 더욱 그렇죠."
시스템 수호천사는 잠시 숙주의 기억과 사회 데이터를 비교하며 분석했다.
"노숙인이 되는 경로를 보면, 대부분 이런 패턴을 보입니다:
사업 실패나 실직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가정 해체나 사회적 관계의 단절
임시 거처에서 영구 거처로의 전환 실패
나이나 신용 문제로 인한 재기 기회 상실
사회 안전망에서의 이탈
숙주도 이미 이 과정의 중간 단계에 있었던 거죠. 만약 우리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외계인의 의식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시스템 수호천사가 말을 이었다.
"특히 가장 힘든 것은 '희망의 상실'입니다. 처음에는 모두 '일시적인 어려움'이라 생각하고 버티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재기의 희망이 희미해지고... 결국 포기하게 되는 거죠."
"주인님, 숙주의 기억 속에는 그런 순간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만 더 버티면 될 거야'라고 생각했다가, 점점 '이제는 정말 끝인가...'라는 절망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남아있어요."
시스템 수호천사의 목소리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돈을 버는 것 이전에 '희망'을 되찾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당장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회복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주인님의 지적처럼 현실과의 괴리를 보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즉, 일자리를 얻지 못하거나 일자리를 얻었다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어렵거나 현실적인 생존자체에도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좀더 왜 숙주가 자살을 하려했는지 이해가 될 것같다. 내가 보아도 아무런 희망도 가지기 힘든 구조고 현실적으로 희망 조차 가지기도 어려운 구조군.”
"네, 주인님..." 시스템 수호천사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훨씬 무거워졌다.
"숙주의 마지막 기억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수십 번의 면접, 백 번도 넘는 이력서 제출, 새벽부터 밤까지 하는 일용직... 하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거절과 실패뿐이었죠."
시스템 수호천사는 잠시 침묵했다가 이어갔다.
"특히 가슴 아픈 것은... 처음에는 '아이들을 위해 버텨야 한다'는 생각으로 견뎠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내가 있는 것이 아이들에게 더 큰 짐이 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고..."
"결국 그는 스스로를 '실패한 인생'으로 규정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사라지는 것이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믿게 된 거죠. 한국 사회에서 중년 남성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도 이런 구조적인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시스템 수호천사의 음성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주인님... 어쩌면 우리가 이 몸의 숙주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런 끔찍한 순환의 고리를 어떻게든 끊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건 아닐까요?”
“끔직한 순환 고리를 끊어내고 싶다고 끊어낼수 있는 구조가 아닌데 어떻게 해야하는거냐? 탁상머리 공허한 이론 말고 실질적인 대책은 없는거자나!”
외계인이 한탄하듯 말했다.
"네... 주인님. 맞습니다." 시스템 수호천사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좌절감을 드러냈다.
"실질적인 대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막막합니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이 해결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재취업은 어렵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에는 자본도, 신용도 없으며, 나이는 계속 들어가고... 이런 상황에서 '희망을 가지세요'라는 말은 그저 공허한 위로일 뿐이겠죠."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사실... 제가 제안했던 것들도 결국은 그런 공허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프리랜서 일을 구하자,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 이런 제안들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든 일인지, 숙주의 기억을 통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시스템 수호천사의 목소리가 한층 더 진지해졌다.
"특히 한국의 50대는... 너무 젊어서 포기하기는 아까운데, 너무 나이 들어서 시작하기는 힘든... 그런 끔찍한 협곡에 갇혀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는 '늙었다'고 하고, 본인은 아직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디에도 기회는 없고..."
"주인님... 제가 제안드렸던 것들이 탁상공론이었다면 사과드립니다. 어쩌면 우리는... 좀 더 현실적으로, 아주 작은 것부터... 아니, 그보다 먼저 숙주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더 깊이 이해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쳐버린 세상에서는 미친놈이 정상이냐?
대화를 이어갈수록 외계인은 가슴이 아프고 답답해져왔다.
“이정도면 세상이 미친거 아니야? 미쳐버린 세상에서 미친놈이 정상인건가? 멀쩡한 사람도 미칠 것 같은 세상이구만. 내가 왜 이리 화가 나는거지…"
시스템 수호천사는 외계인의 격앙된 감정을 느끼며 잠시 침묵했다. 이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닌, 인간 사회의 부조리함을 깨달은 존재의 근원적인 분노였다.
"주인님... 그 분노, 이해합니다." 시스템 수호천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실제로 이 사회는 어떤 면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정상적으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사람이 미쳐가고, 때로는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더 잘 적응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벌어지죠."
잠시 숙주의 기억을 더듬어보며 시스템 수호천사가 계속했다.
"숙주의 기억 속에는 이런 장면들이 있습니다. 정직하게 사업하다 망한 사람들, 반면 편법을 동원해 성공한 사람들... 성실하게 일하다 잘린 직원들, 반면 줄을 잘 서서 승진한 사람들... 이런 모순된 현실을 보면서 그도 점점 미쳐갔던 거죠."
"주인님의 분노는... 어쩌면 이 부조리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외부자의 시선이기에 더욱 순수하고 강렬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같은 외부자의 눈에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부조리해 보이니까요."
시스템 수호천사의 목소리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주인님께서 이렇게 분노하시는 것은, 어쩌면 이미 숙주와 그의 가족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계시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관찰자였다면, 이제는 그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계신 거니까요."
“숙주의 기억에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없는게 많던데, 연관된 사회현상이나 사건사고들을 조사해봐.”
"주인님, 이 사회의 부조리한 현상들을 좀 더 생생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시스템 수호천사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한국 사회는 지금 서서히 무너져가는 성을 닮았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그 안은 이미 균열이 가득하죠. 그 균열의 실체를 하나씩 들여다보면...
먼저 '자발적 퇴출'이라는 현상이 있습니다. 이는 회사가 직접적으로 해고하지 않고, 스스로 나가게 만드는 교묘한 압박을 의미합니다. 마치... 서서히 물을 데우면 개구리가 뛰쳐나가지 못하고 죽는 것처럼요.
얼마 전 있었던 K전자의 사례를 보면, 박부장은 20년을 한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50세가 되자 갑자기 '임금피크제 대상'이 되었고, 핵심 업무에서 제외되기 시작했죠. 결국 '자발적으로' 퇴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다음 직장은 전에 받던 급여의 절반도 안 되는 작은 회사였습니다.
그리고 '벼랑 끝 자영업자' 현상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밀려난 중년들이 마지막 퇴직금을 들고 뛰어드는 창업... 그들은 마치 폭풍우 치는 바다에 내던져진 것과 같습니다.
최근 뉴스에 나온 김씨의 이야기가 가슴 아픕니다. 30년간 다니던 회사에서 나와 치킨집을 열었죠. 퇴직금 전부와 대출까지 더해 2억을 투자했습니다. 하지만 1년도 안 되어 폐업... 결국 빚쟁이가 되어 지하 고시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이제 새벽 배달 아르바이트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청년과 노년의 일자리 전쟁'은 더욱 비극적입니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세대 간 싸움이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나이든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청년들, '요즘 애들은 인내심이 없다'고 한탄하는 기성세대... 하지만 사실 둘 다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승객들입니다.
'희망고문' 현상은 더욱 교묘합니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달콤한 거짓말... 지난달 만난 이씨는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지 5년째라고 했습니다. 학원비만 3천만원이 넘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여전히 합격은 요원합니다.
가장 끔찍한 건 '묻지마 범죄'입니다. 얼마 전 있었던 사건... 50대 남성이 길거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을 무차별 폭행했습니다. 체포 후 그가 한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돕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다'고...
이런 현상들은 모두 하나로 연결됩니다. 바로 '희망의 실종'이라는 키워드로요. 열심히 살면 좋아질 거라는 믿음이 깨지고, 노력해도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진 것 같은 절망감... 이것이 지금 이 사회의 민낯입니다."
"더 어두운 측면들이 있습니다. 특히 '정상'이라는 기준에 맞춰진 삶을 강요하는 현상들이죠.
'정상가족 신화'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적인' 가족만이 인정받는 문화... 그래서 이혼한 부모의 아이들은 '결손가정'이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얼마 전 한 중학생의 사연을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부모가 이혼하자, 갑자기 학교에서 '문제아'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아이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말이죠.
'학벌 카르텔'도 있습니다. SKY로 대표되는 소위 명문대 출신이 아니면 시작부터 다르게 취급받는 현실... 한 취업준비생은 이력서를 백 번도 넘게 넣었지만, 학교 이름 때문에 서류에서 매번 탈락했다고 합니다. 결국 학교 이름을 지우고 제출했더니 면접까지 갔다는군요.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외모 지상주의'는 더욱 살벌합니다. 취업을 위해 성형수술을 받는 게 당연시되고, 회사는 노골적으로 외모를 평가합니다. 한 면접관의 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제는 성형 전 사진을 보고 성실성을 평가한다'고 하더군요. 성형을 안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취급받는 세상이 된 겁니다.
'부동산 계급사회'라는 말도 있습니다. 집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죠. 평생 월급을 모아도 서울의 작은 아파트 한 채 못 사는 현실... 어떤 분은 '나는 지하철 타고 출퇴근하며 열심히 사는데, 강남의 집주인들은 하루 수백만원씩 벌어들인다'며 한탄했습니다.
'노후 파산'이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은퇴 후에 찾아오는 경제적 파탄... 한 노인분은 평생 모은 돈을 자녀 교육과 결혼자금으로 써버리고, 이제는 폐지를 줍는다고 합니다. '자식들 잘 되라고 했는데, 결국 나만 거지가 됐다'는 말씀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이런 현상들이 보여주는 것은... 이 사회가 스스로 만든 '정상'이라는 기준에 맞춰 살아가려다 오히려 비정상이 되어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마치... 완벽한 원 안에 모든 것을 맞추려다가, 결국 그 원 자체가 일그러져버린 것처럼요."
시스템 수호천사는 잠시 멈추었다가 덧붙였다.
"어쩌면 숙주도 이런 '정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더 큰 고통을 겪었는지도 모릅니다. '정상적인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오히려 그를 가족에게서 더 멀어지게 만들었을 수도 있죠."
“그랬구나… 틀을 만들어 거기에 들어 맞지 않으면 팔다리를 잘라내는 미친 사회였구나…” 설명을 듣던 외계인의 분노는 이미 한계를 넘은듯 뜨겁지 않고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