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암 발병

담도암과 항암포기

by 동이

어느덧 엄마의 나이가 80을 넘기게 되었고 한쪽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끝내고 다른 한쪽 무릎 인공관절 수술의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사실 90살이 넘는 사람도 하는 수술이라기에 수술을 적극 주장해서 하게 되었다. 첫 번째 수술 후 간병 방법에 대해서도 숙지가 되었고 무엇보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좋은 무릎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무릎 인공관절수술을 받고 재활 중에 엄마는 방에서 넘어지게 되었고 그때 수술한 쪽 고관절이 골절이 되었다. 그 길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게 되었고 급하게 고관절 인공관절 치환술을 받았다. 전신마취를 한지 몇 달이 안 돼서 다시 전신마취를 해서일까? 아니면 무릎이 아니라 좀 더 몸의 중심과 가까운 부위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수혈을 해서일까? 엄마는 회복 중에 처음으로 섬망을 겪었다.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알지 못했고 말도 어눌해졌다. 수술 후 섬망은 일시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섬망을 겪는 부모에게서 느끼는 걱정은 두려움을 동반했다. 왜냐면 내가 그동안 보아오던 엄마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일시적'이라는 말은 이미 의료진에게 들었지만 그 순간에 몰입을 하다 보면 '혹시나' 영원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친척들과 가족들과 계속 통화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간병을 하면서 계속 이야기를 걸었다. 그런데 의료진으로부터 수술하는 동안 받은 피검사에서 종양표지자 수치가 높다는 것을 알게 되다. 특히 ca19-9 수치가 높았는데 이것은 췌장암, 담관암, 간암, 췌장염 등의 질환일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소화기 내과 협진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난 시절 엄마는 여러 가지 건강검진을 받았다. 5대 암뿐만 아니라 갑상샘, 유방, 자궁까지 이상이 없었고 가족력도 없었기에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현재 인공고관절 치환술 재활에도 신경을 써야 했기에 병원을 그냥 믿기로 했다. Pet ct를 받고 복부 ct를 찍었지만 암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6개월 간격으로 복부 ct를 다시 찍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번의 복부 ct를 찍었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러다 3번째 복부 ct를 찍었을 때 담도암을 진단받게 되었다. 의사는 수술은 고령으로 어렵고 항암도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항암을 하지 말지는 가족이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왜냐면 추적조사 중에 수술불가인 병이 걸린다는 것이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당시 현대의학을 어느 정도 맹신하고 있었고 여기는 한국에서 빅 3에 들어가는 큰 대학병원이었다.


엄마한테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엄마는 평소 작은 걱정으로도 잠을 못 주무시기 때문에 아직 결정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어떤 검사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였고 그냥 그렇게 집으로 돌아갔다.


담도암.. 처음 들어보는 암이다. 담도라는 신체기관 자체도 처음 들었다. 이것이 무엇인지도 몰라 암 관련 카페. 담도췌장암 관련 카페에 가입하고 유튜브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검색을 했다. 그러나 그냥 영화에서만 보던 췌장암처럼 생존율이 매우 낮고 전이와 재발이 쉬운 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췌담도는 위의 안쪽에 가려져 있어 영상자료에서도 잘 보이지 않고 이미 증상(대부분 황달)이 생기면 손 쓰기가 힘든 상태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기관보다 전이속도가 매우 빠르다고 한다. 카페에 들어가서 보니 대부분 황달이나 소화기 문제를 겪은 후에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엄마는 이미 간과 임파선에 전이가 되어있었다. 6개월 전에는 깨끗했던 몸이 6개월 만에 커지고 전이까지 된 것이다. 담도암은 다른 장기에 전이가 되지 않았으면 1~2기인데 워낙 속도가 빨라 외과 수술이 잡혀서 열어 보는 순간까지의 시간 동안 전이가 될 수도 있고 영상에서 전이된 것까지가 안 보일 수도 있다. 대부분은 항암을 먼저 한다. 그러나 항암제가 다른 암보다 효과가 적다. 그리고 다른 암도 여러 가지가 불편하겠지만 췌담도 암은 결국 암세포에 의해 담도가 막히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간에서 생성된 담즙이 십이지장으로 넘어가지 못해 담도에서 정체가 되고 황달이 생기게 된다. 정체가 계속되면 간내 염증이 증가해 간성혼수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에 담도가 막히지 않게끔 시술을 해야 한다. 시술은 담도에 관을 넣은 방식, 몸 밖으로 관을 빼는 방식이 있다.


카페에서 치료후기들을 계속 읽어보았다. 충격적인 암진단->항암->괜찮아지다가 나빠짐->항암제 바뀜->괜찮아지다가 나빠짐->항암제 쓸 것이 없어짐->항암제 부작용 혹은 간의 문제로 사망의 시나리오가 대부분이었다. 중간에 한 달 혹은 몇 주에 한 번씩 시술은 계속한다. 내가 너무 부정적인 내용만 보는 것인가. 아니면 회복된 사람은 대부분 카페 활동을 안 하니까 대부분 안 좋아지는 사람만 글을 남기는 것인가. 물론 수술이 잘되어 회복된 사람도 있고 항암제가 맞아서 암세포가 더 커지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너무 소수였다.


엄마의 삶은 당연히 본인이 정하는 것이지만 지금껏 엄마를 부양하면서 항상 자식의 결정을 먼저 물어보았기에 이번에도 무언가 가이드라인을 드려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어렵다. 왜냐면 이것은 생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항암치료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담도암은 예후가 좋지 않다. 아직 황달이나 소화기 계통의 증상이 없는 무통증이다. 선항암 후 좋아진 다음 외과 수술로 인해 완치할 수 있고. 항암으로 생명을 연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보다 수술부작용, 항암부작용으로 현재 무통증을 통증으로 바꾸고 정상세포 파괴로 몸을 허약하게 만들고 병원에서 길게 살다가 수많은 희망과 좌절, 가족들의 지침을 엄마가 목격하시다 고통. 미안함. 후회로 인생을 마감할 가능성이 높다고 확률적으로 판단이 되었다. 이것은 몇 년 사이 인공관절. 고관절 골절 수술로 수술이란 것이 얼마나 노인을 쇠약하게 만드는지 간병하는 자식으로서 본 결과이다. 따라서 암이라는 건 그냥 친구로 생각하고 그게 퍼지는 속도에 따라 자연스레 통증관리를 하며 여생을 마감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 판단이 되었다. 이런 결정을 하는 건 너무나도 잔인하고 폐륜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카페에 있는 여러 글에서 항암을 시작하면서 몸이 급속도로 쇠약해지고 좋은 구경, 좋은 음식도 못 보여드리고 보낸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암이 아닌 췌담도암이다 보니 나의 결정을 카페 회원들 중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현재 황달이 오기 전에 발견하여 무통증에 인지기능도 괜찮으므로 한 달여 동안 신변정리를 위해 내가 동행하고 버켓리스트를 정해 한 개씩 해보면 어떨까 한다. 친지방문. 지인방문. 제주도여행. 가족해외여행등의 신변정리를 하고 통증이 생기면 진통제. 마약성진통제. 암성통증이 생기면 뒤늦은 항암(통증과 부작용사이 조율 암은 무시). 호스피스 연계등을 생각한다. 아마 암성통증이 생기고 뒤늦은 항암을 했을 때 드라마틱하게 좋아진다면 그때 엄청난 후회가 되겠지만 그건 자식의 몫이고 그때도 왜 진작 안 했을까의 후회보다는 지금 통증이 줄어들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려 한다. 희망과 좌절보다는 즐겁고 행복하게 통증관리만 하면 환자본인이든 가족이든 멘털적으로도 좋을 것 같다.


완치나 생명연장을 위한 현재 가능한 수술병원. 항암병원을 찾기보다는 통증완화를 위해 저의 에너지를 다음에 집중하려 합니다. 추후에 암성 통증 대처를 위해 산특신청. 장기요 양보혐 알아보기. 통증완화를 위한 집 근처 2차 병원. 응급실 알아보기. 중간단계 통증관리를 위해 요양병원 알아보기. 마지막 단계 통증관리를 위해 호스피스 알아보기. 10명 중에 8명은 아마 항암을 할 것이다. 그분들의 선택에 존중을 표하면서도 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자식들이 부모에 대해 후회할 때 자신이 못해준 것에 대한 후회일 텐데 지금이라도 다 해드리고 울다-웃다-울다-웃다-지침-받아들임의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웃다-웃다-슬프다-울다의 능동적인 과정으로 마무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여느 때와 같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엄마에게 다가가 검사 결과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몸 안에 암이 있는데 수술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항암을 할 수 있는데 이것도 나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했다. 짧게 살면 6개월이고 길게살면 1년 정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항암을 하면 계속 아플 수 있다고 했다. 엄마 본인은 안 아프기만 하면 내일 죽어도 괜찮다고 했다. 다만 내가 맘이. 아플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짧게 살 더하도 내가 안 아프게 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 눈 감을 때 항상 옆에 있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세상 모든 것을 다 겪았고 혼자서 지금까지 잘 살았듯이 엄마가 없어도 잘 살 테니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짧게 항암 안 하는 것으로 정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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