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조직검사

by 동이

엄마가 담도암을 진단받았을 때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사회적 이슈가 있었다. 그것은 정부의 의대 정원 3000명 증원이었다. 전공의들은 이에 대해 반대를 표현했고 파업과 사표를 냈다. 그래서 의료공백이 생겼다. 의료공백으로 신규 환자를 안 받는 병원도 있었고 응급실조차 급한 경우가 아니면 2차 병원 응급실로 갈 것을 조언했다. 만약 건강검진 센터에서 암을 진단받으면 메이저 병원에서 초진-재검사-조직검사-항암 및 수술의 단계가 의료공백 이전보다 몇 배는 길어졌다. 그나마 엄마는 현재 추적검사 중이었기에 조금 더 빨리 할 수 있었는데 촌각을 다투는 담관암이기에 나는 그마저도 느리게 느껴졌다. 현재 ct로 담도암이 확실한데 조직검사 스케줄은 한참 뒤가 된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입장이 최우선이기에 난 당시 화가 좀 났다. 밀어내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소화기내과 교수가 입원을 시켜주었고 입원한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응급으로 조직검사를 받게 해 주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2번의 추적검사에서 이미 소화기 교수의 환자로 등록되어 있었고 그 2번의 검사에는 발견이 되지 못하다가 3번째에 시한부 환자가 돼버린 상황에 대한 교수의 미안함 때문이었던 것일까 아무튼 조직검사를 위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암환자는 산정특례 혜택을 받는다. 산정특례를 받으면 5년간 특별 보험적용을 받아 비보험을 제외한 보험개인부담금이 전체금액의 5퍼센트가 된다. 보통 조직검사 후 산정특례를 받게 되는데 교수의 재량으로 ct에서부터 산정특례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입원부터 산정특례 혜택을 받게 되었다.


의료 공백에서는 신규환자가 되면 진료과정이 계속 밀려날 수 있으니 조금이나마 건강할 때 여러 메이저 병원. 받고 싶은 교수(내과. 외과. 종양내과)의 진료를 본 후 다음진료 볼 때는 재진환자의 신분으로 응급실로 가야만 그나마 빠르게 진료가 될 것 같았다.


2인실에 배정된 엄마와 나는 옆에 췌장암 조직검사를 기다리는 환자와 같은 방을 썼다. 고관절 골절 수술 재활 기인 엄마는 걸어다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옆 배드의 환자분은 엄마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뛰어다닐 정도로 건강했다. 췌담도암이 무증상의 시한폭탄이라는 것을 또 한 번 느끼게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엄마는 현재 여기 왜 왔는지 알지 못했다. 단지 그냥 검사할 것이 조금 있다는 말만 엄마에게 했었다. 의사의 배려로 입원을 해서 조직검사를 대기 중이었는데 입원을 해도 3일이 지나야 검사를 할 수 있었다. 왜냐면 입원환자 응급으로 조직검사를 하는 것이기에 퇴원을 하면 안 되고 그냥 병동에 버티고 있어야 했다. 그냥 엄마 옆을 지킬 수밖에 없었는데, 그 사이 옆 환자는 조직검사 결과를 듣게 되었다.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췌장암이고 전이도 되어 있는 상태인 것 같았다. 환자의 보호자는 연신 울었다. 오히려 환자가 보호자를 위로해 주었다. 부모란 그 상황에서 모두 그랬으리라. 자신의 몸에 시한폭탄을 확인했어도 눈앞에서 울고 있는 자식걱정을 먼저 하게 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 같다. 의료진은 진정이 된 보호자와 환자에게 "췌장암이 전이가 되었으니 4기 이상이고 항암을 해도 낫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매뉴얼적인 말을 했다. 환자는 고통 없이 가는 것이 목표이고 어떤 것이 나은지 물어보았지만 의료진은 결정은 환자가 하는 것이라고 했다. 보호자는 그때부터 비상이었다. 다른 메이저 병원에 크로스 체크를 하기 위해 예약하기 바빴다. 자식이 여러 병원에 예약전화를 돌리고 있는 동안 환자는 본인이 맞이한 현실에 대해 생각하는 듯했다. 커튼 사이로 보이는 환자의 실루엣에서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느껴졌다. 의료공백으로 배드를 오래 차지하고 있을 수 없기에 결정을 빨리 해야 되는 분위기였다. 결국 항암을 한번 해보는 것이 어떠냐 해보다가 힘들면 그때 그만둘 수 도 있다는 간호사의 말을 듣기로 한 것 같았다. 환자는 연신 '어떻게 해야 안 아프게 갈 수 있냐'를 의료진에게 물었다. 일단 퇴원을 하고 다시 항암내과의 교수를 만나 항암스케줄을 잡는 것으로 일단락이 된 듯했다. 어쩌면 우리의 또 다른 미래를 보는 듯했다.


의료공백으로 남아있는 의료진은 힘들어 보였다. 메이저 병원인데도 의사가 부족하기에 병실도 비어있었다. 이 시기에 정부는 병원에 대한 대책은 없고 병원은 계속치료는 불가피하고, 신규치료는 최대한 덜 받아야 했다. 의사도 한계가 있기에 수술/항암에 있어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만 했다. 마치 장사 잘되는 음식점에 갑자기 주방장과 식탁수를 줄인 것 같았다. 결국 피해는 환자와 보호자의 몫이었다. 여기 병동에 있어보니 메이저병원이라는 것 하나 믿고 지방에서 올라오신 환자들이 많았다. 다들 자식 된 도리로 없는 시간 쪼개서 부모님이 상경하게 만들어 이 메이저 병원에 온 사람들.. 그 효도에 못 이겨서 오신 어르신들 부지기수이다. 그런데 그런 희망과 에너지를 의료공백으로 받아주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그냥 처음부터 안된다 투명하게 말하면 되는데 병원입장에서는 그게 어려우니 둘러 둘러 한계점을 말하게 되는데 이게 희망고문을 하는 식이 돼버린다. 병원은 병원대로 힘들고 그동안 환자와 보호자의 돈과 시간은 그냥 낭비되어 버리는데 가장 안타까운 것은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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