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표현이 귀찮아질 때

by 동이

사람들과 섞여 대화를 나누는 일이 어느덧 고역이 되어버린 오후, 나는 내 감정의 언어들을 서랍 속에 처박아 두기로 했습니다. '기쁘다', '서운하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내뱉기 위해 필요한 근육의 움직임과 심장의 동요가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설명하고 이해받으려 애쓰는 과정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느껴질 때, 인간은 표현의 의지 자체를 거두어들입니다.

"무슨 생각 해? 기분 안 좋아?"

누군가 다정하게 물어오지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내 마음을 스캔하고 적절한 단어를 고르는 과정 자체가 너무나 소모적입니다.

"그냥, 아무 일도 아니야."

이 한마디로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생존 방식처럼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감정의 에너지를 아껴서 어디에 쓰려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자꾸만 내 마음을 무채색의 공간으로 몰아넣습니다. 기쁨을 표현하면 그에 상응하는 활기를 유지해야 하고, 슬픔을 표현하면 위로라는 번거로운 절차를 감당해야 하니까요.

"감정도 비용이야, 나에겐 지출할 여력이 없어."

이런 냉소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칠 때면, 내가 정말로 기계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문득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마저도 표현하기 귀찮아서 나는 다시 무표정한 얼굴 뒤로 숨어버립니다. 침묵은 안전하지만 고독하고, 고독은 평온하지만 서늘해서 나는 자꾸만 내 몸을 웅크리게 됩니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귀찮아진 나에게 그런 기적은 사치일 뿐입니다. 표현하지 않는 감정은 속에서 곪거나 말라 비틀어질 텐데, 나는 그저 이 고요한 권태가 영원히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마음의 문에 '공사 중'이라는 팻말을 걸어두고 아무도 초대하지 않는 삶은 얼마나 홀가분하면서도 비참한지 말입니다.

"언젠가는 다시 말하고 싶어질까, 나의 사소한 떨림들을."

그날이 오면 나는 아주 긴 문장을 만들어 세상에 내던질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이 귀찮음이라는 이름의 휴식 속에서, 먼지처럼 쌓여가는 나의 감정들을 가만히 지켜보며 숨을 고르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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