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만 늘어날 때

by 동이

어느덧 방 안의 공기가 서늘해지고, 시계 초침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시간이 오면 나도 모르게 입술을 떼어 봅니다. 처음에는 그저 "아, 춥다" 같은 단순한 감탄사였을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말들은 가지를 치고 잎을 틔우며 나만의 비밀스러운 정원을 만들어갑니다. 누구에게도 닿지 않을 말들이 허공에 흩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비로소 내가 나를 가장 필요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혼잣말은 외로움의 증거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진심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 같은 것입니다. 타인에게는 차마 내뱉지 못한 구차한 변명들, 혹은 너무 소중해서 아껴두었던 찬사들이 입 밖으로 나와 방 안을 유영합니다. 그 소리들은 벽에 부딪혀 다시 내 귀로 돌아오고, 나는 그제야 나의 목소리가 이토록 떨리고 있었는지 알게 됩니다.

"오늘 참 고생 많았어."

내가 나에게 건네는 이 한마디는 세상 그 어떤 위로보다 강력한 치유의 힘을 발휘하며 텅 빈 방을 온기로 채웁니다. 사람들은 말하곤 합니다. 혼잣말이 늘어나는 것은 마음이 아프거나 고립되어 있다는 징조라고 말이죠.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오히려 마음이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 내미는 가장 간절하고도 다정한 손길입니다. 텅 빈 거실에서 혼자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면, 그것은 내 영혼이 나에게 보내는 구조 신호이자 사랑의 고백입니다. 나를 좀 더 들여다봐 달라고, 나를 좀 더 따뜻하게 안아달라고 말하는 아주 사적인 목소리들입니다. 거울 속의 나와 눈을 맞추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하루 종일 꼬여 있던 생각의 타래가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 듭니다. 아무도 듣지 않는 무대 위에서 독백을 이어가는 노련한 배우처럼, 나는 내 인생이라는 연극의 가장 충실한 관객이 됩니다. 그렇게 한참을 중얼거리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의 소란스러운 소음이 잦아들고 고요한 평화가 찾아옵니다.

사실 우리는 하루 종일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혹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수많은 말을 쏟아내며 살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정작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들은 목구멍 아래로 꾹꾹 눌러 담아야만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 숨겼던 말들, 너무나 솔직해서 오히려 부끄러웠던 욕망들이 혼자 있는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해방을 맞이합니다. 책상 위에 놓인 화분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벽에 걸린 액자 속 풍경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하는 그 순간들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아의 파편들을 하나둘씩 모아 다시 온전한 나로 복원하는 신성한 의식과도 같습니다.

"내일은 조금 더 일찍 일어나 볼까?"

대답 없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 짧은 찰나에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집니다. 누군가는 청승맞다고 비웃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이 대화가 세상에서 가장 고결한 철학적 담론보다 중요합니다. 말이라는 에너지를 밖으로만 쏟아붓다 보면 안쪽은 금세 텅 비어버려 가뭄 든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지기 마련입니다. 혼잣말은 그 메마른 마음의 틈새로 흘려보내는 한 줄기 시원한 냇물이며, 잊고 지냈던 내면의 아이를 달래주는 자장가입니다.

창밖의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도시가 침묵에 잠길 때, 나의 방 안은 오히려 풍성한 대화로 가득 차오릅니다. 과거의 나를 불러내 사과를 건네기도 하고, 미래의 나를 초대해 함께 희망을 설계해보기도 합니다. 잊고 싶었던 기억의 조각들을 입 밖으로 꺼내어 먼지를 털어내면, 그토록 무거웠던 슬픔도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라는 긍정의 마법을 부리며 스스로를 용서하는 밤은 참으로 아늑합니다. 혼잣말은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가장 낮은 목소리의 노래이며, 세상의 풍파 속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마지막 보루입니다.

오늘도 나는 누구의 귀에도 닿지 않을 소중한 문장들을 허공에 정성껏 써 내려갑니다. 말은 내뱉는 순간 사라지는 것 같지만, 공기 중에 머물며 내 마음의 온도를 미세하게 높여줍니다. 내가 나의 목소리를 듣고, 내가 나의 이야기에 공감해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으로 성숙한 존재가 됩니다. 침묵보다 깊고 외침보다 강한 이 혼자만의 속삭임이 나를 내일로 이끄는 동력이 됩니다. 이 고요한 저녁, 나는 다시 한번 나에게 말을 걸며 무너진 마음의 담벼락을 꼼꼼히 보수하고 깊은 잠을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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