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질 때 : 늘어난 그림자의 시간

by 동이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이미 예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시계 바늘이 유독 점액질을 통과하듯 느릿하게 움직이는 그런 날 말이다. 창밖의 빛은 어제와 다를 바 없는데, 내가 머무는 공간의 공기만은 왠지 더 무겁고 끈적하게 느껴진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도 각성은 오지 않고 그저 속만 조금 쓰려올 뿐이다. 해야 할 일들은 책상 위에 쌓여 있는데 마음은 자꾸만 길 건너 낯선 골목으로 도망치려 한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웅웅거리는 수중의 소음처럼 들려온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오늘따라 시간이 참 안 가네요."

동료가 지나가며 던진 평범한 한마디에 가슴 한구석이 툭 떨어진다. 정말이지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누가 말했던가. 오늘 같은 날 시간은 우리를 앞질러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뒤에서 거대한 바위처럼 버티고 서서 등을 밀어내고 있다. 단 일 분을 버티는 것이 마치 거대한 파도를 맨몸으로 막아내는 일처럼 버겁다. 점심시간의 북적임도, 오후의 나른한 햇살도 나를 위로하기엔 너무나 건조하다.

문득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본다. 눈 밑의 피로함보다는 눈동자 속의 공허함이 더 짙게 배어 있다. 우리는 왜 매일 이토록 긴 하루를 견뎌내야 하는 것일까. 삶의 밀도가 너무 높아서일까, 아니면 반대로 너무 희박해서일까. 아마도 채워지지 않는 기대감이 시간을 고무줄처럼 늘려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할 정도로 하루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다.

"조금만 더 버티면 퇴근이에요."

스스로에게 속삭여보지만 목소리는 힘없이 흩어진다. 사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퇴근 그 자체가 아니라, 이 지루한 자의식으로부터의 해방일 것이다. 하루가 길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나 자신과 너무 오래 마주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외면하고 싶었던 사소한 슬픔들이 긴 시간의 틈새를 타고 하나둘씩 고개를 든다. 어쩌면 이 긴 하루는 나에게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를 돌보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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