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집에 가고 싶은 오후

by 동이

오후 세 시의 햇살은 가장 잔인한 각도로 사무실 구석구석을 비추며 우리의 피로를 낱낱이 폭로합니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자파는 눈을 침침하게 만들고 사람들의 활기찬 대화는 오히려 소음이 되어 고막을 피곤하게 두드립니다. 문득, 정말 아무런 전조도 없이 그냥 집에 가고 싶다는 강렬한 갈망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그것은 단순히 일을 하기 싫다는 게으름의 발로가 아니라 사회적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지불한 에너지가 바닥났음을 알리는 경고입니다. 나를 수식하는 수많은 직함과 역할들을 던져버리고 오직 나의 이름 석 자조차 필요 없는 그 공간으로 숨어들고 싶어집니다.

"어디 몸이라도 안 좋은 거야?"

걱정스레 묻는 상사의 말에 나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채 그저 고개를 젓고 맙니다. 몸은 멀쩡히 이곳에 머물고 있지만 나의 영혼은 이미 현관문을 열고 익숙한 집 안의 냄새 속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 집이라는 장소는 나에게 단순한 물리적 거처를 넘어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성소와도 같습니다. 그곳에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허리를 곧게 펴지 않아도 되고 매끄러운 문장으로 나의 정당성을 입증할 필요도 없습니다. 낡은 소파에 몸을 파묻고 천장의 무늬를 세는 행위가 이 거대한 세상의 논리보다 더 가치 있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오후의 빛이 책상 모서리에 부딪혀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우리 집 거실의 평화를 상상합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낡은 슬리퍼와 읽다 만 책들이 놓인 테이블, 그리고 온기가 남아 있는 침대 시트가 나를 간절히 부르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 무대 위에서 서툰 대사를 읊조리는 단역 배우처럼 느껴져 서글퍼집니다.

"가끔은 아무 흔적 없이 증발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친구에게 보내려던 메시지를 차마 전송하지 못하고 지우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비슷한 갈망을 숨긴 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은 채 성실한 시민의 가면을 쓰고 횡단보도를 건너갑니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이 삭막한 세상에서 버틸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됩니다.

창문을 열어 잠시 바깥바람을 쐬면 빌딩 숲 사이로 부는 찬 공기가 오히려 정신을 맑게 깨워줍니다. 이제 몇 시간만 더 견디면 나는 다시 그 안전한 궤도로 돌아가 완벽한 고립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집에 도착해 도어락 소리를 들으며 현관문을 닫는 순간 찾아올 그 정적을 상상하며 남은 오후를 견뎌냅니다.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갈 그 시간을 기다리는 오후는 그래서 조금은 아프고도 지독히 아름다운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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