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도 하기 싫을 때

by 동이

머릿속이 과열된 엔진처럼 뜨거워져 더 이상 한 문장의 논리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아침부터 쏟아진 무수한 정보의 홍수와 선택의 기로들이 나의 뇌세포를 하얗게 불태워버린 기분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거대한 '무(無)'의 상태를 갈망하며 모든 사고의 회로를 차단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입니다. 어떠한 판단도 내리고 싶지 않고 어떠한 결론에도 도달하고 싶지 않은 완전한 인지적 휴식이 절실해집니다. 백지 위에 잉크 한 방울조차 허용하지 않는 결벽적인 고요함 속에 나를 방치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요즘 고민 있는 거 아니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지인의 다정한 물음조차 지금의 나에게는 대답해야 할 또 하나의 과업이 되어 어깨를 짓누릅니다. 사실 나의 대답은 '아무 생각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쉽게 믿어주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너무 깊게 분석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내일의 생존 전략과 어제의 실수를 복기하느라 정작 오늘의 평화는 단 한 번도 누리지 못한 채 살아온 셈입니다.

눈을 감으면 눈꺼풀 뒤로 일렁이는 붉은 잔상만이 남고 나는 그 단순한 색의 유희에 모든 감각을 집중해봅니다. 생각의 스위치를 내릴 수만 있다면 망설임 없이 암흑 속으로 걸어 들어가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싶습니다. 정리가 되지 않는 생각들은 정리하려 애쓸수록 오히려 실타래처럼 더 엉망으로 꼬여 우리를 괴롭힙니다. 이럴 때는 차라리 모든 실을 끊어버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먼 산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처일지도 모릅니다.

"그냥 멍하니 있을게요. 아무것도 묻지 말아 주세요."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구석 자리를 찾아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시간 낭비라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영혼을 환기하는 가장 고귀한 의식입니다. 낡고 퀘퀘한 생각들을 창밖으로 내던지고 비워진 마음의 공간에 신선한 공기를 채워 넣는 작업입니다. 비워져야만 다시 채울 수 있고 멈춰 서야만 비로소 가야 할 길이 보인다는 진리를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감각조차 무뎌질 때쯤 머릿속의 열기가 조금씩 식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존재의 본질은 더 선명해지고 나는 비로소 투명한 자아를 되찾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정의하려 애쓰지 않아도 숨 쉬는 매 순간이 나의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합니다. 침묵은 단절이 아니라 세상과의 가장 깊은 연결이며 나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는 바로 이 텅 빈 공간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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