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나의 모든 행동과 감정이 설명 불가능한 영역에 그대로 머물러 주기를 간절히 바랄 때가 있습니다. 왜 기분이 우울한지, 왜 갑자기 모든 관계를 끊고 싶은지, 왜 이유 없는 눈물이 흐르는지 묻지 않길 바랍니다. 세상은 모든 현상에 타당한 이유와 명확한 근거를 요구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결코 수학 공식처럼 깔끔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의 지도를 펼쳐 보이며 길을 안내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고된 육체노동보다 버겁게 느껴집니다. 언어라는 불완전한 도구로 번역되는 순간 소중한 감정의 원형이 훼손될까 두려워 입을 굳게 다물게 됩니다.
"무슨 일이야? 나한테는 다 말해도 돼. 내가 들어줄게."
상대의 선의가 담긴 그 따뜻한 말 한마디조차 때로는 나의 고립을 방해하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다가옵니다. 말을 하기 위해서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정제해야 하고 문법에 맞춰 논리적으로 나열하는 수고를 거쳐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본래의 진심은 일그러지고 타인의 이해를 돕기 위한 가공된 서사만이 덩그러니 남게 됩니다. 설명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언어라는 감옥에 나의 진실을 가두고 싶지 않은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평생을 타인에게 해명하며 살아가고 나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무수한 단어들을 소비하며 소진됩니다. 나의 침묵에 대해, 나의 사소한 선택에 대해 타인의 승인을 얻으려 애쓰는 삶은 얼마나 피곤한 일입니까. 하지만 가끔은 '그냥'이라는 마법 같은 단어 뒤로 숨어 나만의 비밀스러운 우울을 즐기고 싶어집니다. 이유를 묻지 않는 깊은 이해, 침묵의 무게만으로도 소통이 이루어지는 그런 관계가 간절해지는 밤입니다.
"그냥 좀 그래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요."
겨우 내뱉은 이 짧은 한마디에 상대의 시선이 서운함으로 물들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부해버립니다. 지금의 나를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오해를 기꺼이 감수하고 고독의 방을 지켜내야만 합니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드러내어 타인의 이해를 구하는 것만이 정직하고 건강한 삶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나만의 어둡고 축축한 고독을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간직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신성한 권리입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인간의 말은 그 힘을 잃고 침묵의 부피는 우주처럼 거대하게 팽창하여 우리를 덮어줍니다. 굳이 빛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별들이 아름답듯이 나의 마음도 설명 없이 그 자체로 빛나고 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모든 해명의 의무로부터 벗어나 완벽한 평화 속으로 유영하며 나를 찾습니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이 완벽한 정적 속에서 나는 비로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왕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