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건강으로 배팅한 자식

by 동이

어머니의 사랑은 바다와 같다는 말처럼 부모는 자식에게 무한정의 사랑을 준다. 하지만 자식이 부모에게 주는 사랑은 그 양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항상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남은 것을 부모에게 주려고 한다. 그것도 본인이 기분이 좋을 때 말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오늘만 사는 것처럼 사랑을 주지만 자식은 부모가 영원히 살 것처럼 사랑을 준다. 그래서 자식은 오늘 주지 못한 사랑을 매일 다음날로 미룬다. 그런데 엄마가 시한부 암환자가 되었다.


암표지자 수치가 높아서 시작된 추적조사 중 갑자기 발견된 담도암 ct소견. 당일 바로 입원하도록 교수가 배려해 주어 조직검사를 앞당길 수 있었고 항응고제 때문에 조직검사가 미루어졌고 조직검사 후 퇴원한다. 검사결과는 다음 주 외래로 듣고 종양내과도 다음 주로 잡았다. 고령의 나이와 이미 간. 임파선으로 전이로 인해 수술은 불가. 항암도 안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지만 다른 형제자매의 의견과 무엇보다 환자 본인의 의사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관련 카페 회원님의 여러 조언으로 도움을 받은 후 본병원 항암진료 잡고 다른 메이저 병원의 외래를 잡고 집 근처 2차 병원에 항암예약을 또 잡았다.


동네에 피검사 당일로 나오는 내과 2군데 알아놓았다. 이제 집에 돌아가면 형제자매와 조율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말을 해야 한다. 엄마 만약 선항암 후수술로 희망을 잡는다 하시면 수술가능한 병원을 찾을 예정이고 그게 아니면 2달 정도 동안 삶의 정리를 위한 버켓리스트를 같이 작성하여 계획을 잡으려 한다. 일주일 중 화요일 오후와 금요일오후에 피검사를 하여 글루 불린 수치 관리를 하며 수치 나빠지면 바로 응급실 방문하여 처치 혹은 스텐트 시술하려 한다. 현재는 스텐트로 제일 유명한 메이저 병원을 생각하고 있으나 본원에서도 할 계획이 있다.


어머니의 본인의 삶을 결정하는 것에 나 자신의 의사가 많이 반영되는 것을 제삼자가 보면 의아하고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엄마와 형제자매는 늘 나의 결정을 제일 존중해 주었다. 집에서 무언가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지는 것은 대부분 나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의 결정이 제일 중요할 것이며 그 책임 또한 내가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엄마의 인생의 마무리이기에 최종 결정은 엄마가 할 것이며 내가 생각한 결정을 모두 거절할 때를 대비하여 나는 모든 대안도 생각해 놓아야 할 것이다.


회사에 사정을 말하고 일찍 퇴근을 하기로 한다. 그리고 아침식사를 차려드리고 회사를 간 후 점심시간에 맞추어 퇴근을 한다. 나는 요리를 잘 못하기에 반찬 배달 서비스를 이용한다. 하루에 한 번 반찬을 배달을 해주는데 그것을 담아서 엄마에게 차려주었다. 고관절 골절 재활기에 암발병을 알았기에 재활을 신경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휠체어를 타고 식사 후에 아파트 주변을 돌았다. 그런데 식사 후에 휠체어를 타니 오히려 소화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 식사 전에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처음에는 병원처럼 옆에서 계속 자려했으나 엄마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하시어 내 방에서 편하게 잘 수 있었다. 대신 무선 알림 벼르오 엄마방에서 누르면 내가 가기로 했다.


평온한 주말 오후 나는 결심을 하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몸에 암이 있다는 것과 수술이 어렵고 항암을 안 하면 아프게 2.3년 하면 안 아프지만 1년 정도 살 수 있다고 말을 했다. 엄마는 담담하게 내일 죽어도 상관없고 그냥 안 아프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항암을 안 하는 것이 엄마를 간병하기 싫어서 혹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모든 엄마의 수술에 내가 동행했고 간병했듯이 계속 간병할 수 있고 돈은 국가에서 지원해 주어서 하나도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가 항암과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면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엄마는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엄마에게 하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엄마는 비행기를 한 번도 타지 못했으니 비행기를 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주변사람에게 알리고 싶냐고 물으니 그러고는 싶지 않다고 했다. 친척들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형제자매는 어째서 항암을 하지 않느냐라고 이해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지금껏 어머니를 모신 것은 이해하지만 항암을 안 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느냐라고 했다. 담도암이 항암의 효과가 적고 대부분 암 때문이 아니고 항암부작용으로 돌아가시며 전이가 너무 빠른 암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아직 엄마가 언제든지 결정을 바꿀 수 있도록 항암내과 예약을 다 해놓았다고 했다. 그러니 조금 알아볼 수 있는 만큼 알아보라고 덧붙였다.


퇴근하는 길에 눈물이 났다. 지난 시절 내 삶의 큰 슬픔이 있을 때처럼 내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항암/수술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암환자들은 아는 말이 있다. 나는 안 하는 것을 선택했고 그 여파로 결국 엄마와 형제자매도 선택을 한 것이다. 어찌 보면 나는 엄마의 건강으로 도박을 한 것이다. 만약 엄마가 항암으로 담도암이 낫는 1프로의 사람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에 배팅을 한 것이다. 자식이 부모의 건강으로 배팅을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왜냐면 암진료-항암이라는 일반적인 순서를 하다가 '더 이상 듣는 항암제가 없습니다' 혹은 '지금은 항암을 할 수 있는 건강상태가 아닙니다'라는 결정은 의료진이 하기 때문이다. 자식과 보호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 흐름에 말이다. 그러나 난 엄마의 그나마 건강한 이 시절에 내 에너지와 경제력을 쓰려고 배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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