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공기는 여전히 차갑고 눈을 뜨자마자 머릿속은 이미 복잡하다.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 마음은 일어나기 싫다는 신호를 보낸다. 침대 위의 공기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지고 몸은 아직 누워 있는데 마음은 이미 회사의 문 앞에 서 있다. 출근길의 지하철, 반복되는 얼굴들, 같은 표정 속에 자신도 묻혀버린다. 익숙한 풍경인데 이상하게 오늘은 모든 것이 낯설다. 창밖으로 스치는 바람조차 마음을 건드린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이렇게 지쳤을까. 왜 매일이 이렇게 버겁게 느껴질까.
회의실의 형광등 불빛은 유난히 차갑고 누군가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웃어야 할 타이밍에 억지로 입꼬리를 올린다.
“괜찮아요.”
입은 그렇게 말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보고서의 숫자보다 더 복잡한 것은 내 마음의 무게다. 일이 아니라, 사람도 아니라, 그냥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피곤한 날이 있다.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모든 게 싫어진다. 단 한 걸음만이라도 벗어나고 싶어진다.
점심시간, 따뜻한 국물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내려가도 마음은 여전히 차갑다. 휴대폰 화면 속 웃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만 이렇게 힘든가 싶다.
“다들 잘 버티고 있는데, 나는 왜 이럴까.”
그 생각이 스스로를 더 작게 만든다. 불안은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이 어깨를 짓누른다. 숨을 고르고 싶지만 주변의 속도는 너무 빠르다. 잠시 멈추면 뒤처질 것 같아 발걸음을 멈추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도 어쩔 수 없이 걷는다. 힘이 들어도, 그저 버티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퇴근길의 하늘은 어쩐지 너무 맑다. 그 하늘을 보며 문득 눈물이 차오른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오늘 하루를 견뎌낸 나 자신이 갑자기 불쌍해진다.
“수고했어.”
누군가 그 한마디만 해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괜찮아, 오늘도 잘했어.”
그 말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시리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것 같고, 여전히 뒤처지는 것 같다. 하지만 어쩌면 이 불완전함이 인간다움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불안은 늘 옆에 있다. 내가 나아가려 하면 더 세게 붙잡는다.
“이 일 못하면 어쩌지?”
“사람들이 실망하면 어떡하지?”
그 목소리가 너무 익숙해서 이제는 내 생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진짜 내가 아니다. 진짜 나는 그 불안 속에서도 계속 걸어가는 사람이다. 넘어져도 일어나고, 울어도 다시 눈을 뜨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건 결코 아무것도 아니다. 오늘 하루를 버텼다는 건 이미 충분히 대단한 일이다.
때로는 쉬어도 괜찮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모두가 달리고 있다고 해서 나도 달려야 하는 건 아니다. 길 위에는 멈춰 서서 숨을 고를 자리가 있다. 그 자리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봐도 괜찮다. 바람을 느끼며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도 괜찮다. 삶은 그렇게 천천히 흘러도 괜찮은 것이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잠시 멈춘다고 해서 길을 잃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멈춤 속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일 때가 있다.
저녁의 불빛 아래에서 문득 느낀다. 오늘 하루도 결국은 흘러갔구나. 버겁고 힘들었던 일들도 이렇게 지나간다. 내일도 또 비슷하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내가 오늘보다 조금 더 단단해졌으니까. 불안은 여전히 나를 따라오겠지만 이제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안다. 불안은 나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나를 일깨운다.
“조금 쉬어가도 괜찮아.”
그 말이 마음속 어딘가에서 잔잔히 울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조금은 다르게 보인다. 지쳐 있지만 그래도 살아 있다. 무너질 듯하지만 여전히 버티고 있다. 그게 바로 용기다. 세상은 그걸 ‘평범한 하루’라 부르지만 그 평범함 속에는 수많은 눈물이, 인내가, 그리고 사랑이 숨어 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알고 있으니까. 오늘의 나에게, 지금의 나에게, 조용히 말해준다.
“괜찮아.
정말 수고했어.”
그리고 그 말이 내 안에서 천천히 퍼져나간다. 불안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눈을 감으면 그제야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다시 내일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나로 맞이할 것이다. 그렇게 삶은 이어진다.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