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 끝에서 머무는 말들

by 동이

사람들 속에 서 있을 때면 나는 종종 이상한 고요에 잠긴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옆에서 흐르고, 웃음이 부서지고, 가벼운 대화가 이어지는데도 내 안은 전혀 다른 계절을 살고 있다. 겉으로는 함께 있는 것 같은데 마음은 늘 몇 발짝 뒤에 머문다. 마치 모든 말이 입술 앞에서 멈추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나는 왜 이렇게 쉽게 말하지 못할까
왜 이렇게 평범한 감정조차 꺼내기 어려울까
대화할 사람은 많은데 정작 내 얘기는 꺼내지 못한 날들이 조용히 쌓여만 간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나는 괜히 설명할 말을 찾고, 괜히 웃고, 괜히 괜찮은 척을 반복한다. 이 모든 행동이 마치 하나의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고, 그 습관은 때때로 나조차 낯설게 만든다. 그렇게 나는 내 안의 작은 방에서 더 깊숙이 숨어버리곤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마음을 여는 일은 누구에게나 오래 흐르는 강물 같은 시간이라는 것을. 내 마음은 늘 안전한 순간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나를 자주 오해했다. 왜 이 정도 말도 못 하느냐고, 왜 이렇게 매번 조심스러우냐고, 왜 깊은 마음일수록 감춰둬야만 하느냐고. 하지만 천천히 깨달았다. 말을 아끼는 건 나약함이 아니라 나를 아끼는 방식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내 마음은 아무에게나 흘러가길 바라지 않았고, 아무 말이나 던지고 후회하고 싶지 않았고, 진짜 이해할 사람 앞에서만 자연스럽게 열리고 싶어 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야 내 안의 고요가 더 이상 나를 가두는 벽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늘 준비 중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말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말하고 싶어서. 가볍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내 마음을 알아줄 사람에게 닿고 싶어서, 나는 오랫동안 말을 다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말을 삼키지만 그 침묵이 예전처럼 무겁지 않다는 걸 스스로 느낀다.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겪는 하루의 무게는 여전히 존재하고, 내가 느끼는 고독의 결은 여전히 살아 있고, 내가 흘린 눈물의 온도는 분명히 나만의 것이다. 내 마음은 언제나 나를 지키고 있었고, 잠깐의 침묵이 나를 보호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아간다. 그 침묵이 나를 무너지지 않게 붙잡고 있었음을 조금씩 이해해 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아주 작고 조용한 말이 마음속에서 떠오른다. 말끝이 떨려도 괜찮고, 말이 어색하게 끊겨도 괜찮고, 울음이 섞여도 괜찮은 한 문장.
“요즘 조금 힘들어.”
그 말은 나에게서부터 시작된 작은 용기이자, 어느 방향으로든 천천히 흘러갈 수 있는 길이다. 변화가 생기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든, 그 순간의 나는 더 이상 완전히 혼자가 아니다. 그 한 문장은 나를 조금 더 밝은 곳으로 밀어 올려주는 미세한 바람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제 예전처럼 나를 탓하지 않는다. 쉽게 말하지 못하는 나도, 말하고 싶어 하는 나도 둘 다 나라는 사실이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진다. 나는 아직도 많은 말을 망설이지만, 오늘의 침묵은 어제의 침묵과는 다르다. 어제는 숨기기 위한 침묵이었고, 오늘은 준비하기 위한 침묵이다. 그리고 언젠가 마음이 스스로 열리는 순간이 오면 나는 아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할 것이다. 그 모든 시간 동안 내 마음이 내 곁에서 조용히 나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말하지 못한 날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나를 버티게 만든 시간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이제 조금은 더 나답게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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