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 좀 안아줬으면 하는 날이 있다. 아무 일도 없는데 마음이 이유 없이 무거워지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말도 더 이상 바닥까지 가라앉아 감당되지 않는 날이다. 익숙한 방 안인데도 이상하게 낯설고 멀게 느껴지고, 사람을 떠올리지만 정작 전화할 이름 하나, 기대고 싶은 어깨 하나 생각나지 않을 때 더 깊은 외로움이 밀려온다. 말할 곳 없는 무게는 더 깊게 내려앉고 그 무게를 안고 있는 자신이 초라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날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누군가 곁에 없는 날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그림자의 한 조각일 뿐이다.
“오늘은 왜 이렇게 힘들까.”
입술끝에서 흘러나온 말은 대답할 사람 없이 허공에 흩어지지만 그 말 하나만으로도 마음 속 어딘가가 조금 흔들리고, 흔들린 마음은 기댈 곳을 찾다가 다시 제 자리에 내려앉는다. 그래도 그 미세한 흔들림이 마음의 숨을 아주 조금 돌려주는 것 같다. 누가 나를 안아줬으면 하는 마음은 결핍이 아니라 오래 버텨온 마음의 작은 신호이고, 말하지 못한 강함의 깃털이 하나둘 떨어질 때 비로소 사람은 자신의 안쪽을 바라보게 된다. 그 안쪽에는 생각보다 많은 상처가 어둠 속에서 제 존재를 주장하듯 가만히 있었고, 그 상처들은 숨소리처럼 미약하기도 심장처럼 강하기도 하며 어쨌든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살아 있기에 아프고 아프기에 누군가를 찾는 것이며, 그래서 외로움은 결핍보다는 삶의 결을 이루는 한 줄처럼 마음 속을 흐른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없어도 괜찮을까.”
간단한 질문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말할 곳이 없다는 사실, 기대고 싶은 곳이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더 무너뜨린다는 진실이 숨어 있다. 그래서 사람은 외로운 날일수록 위로나 조언을 갈망하는데, 조언이 꼭 필요하다기보다 내 마음을 바라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그 느낌 자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느낌이 사라지면 사람은 투명해진 듯한 기분을 느끼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에 홀로 서게 된다. 그러나 마음은 그렇게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마음은 계속 뛰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도 마음은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건네며 그 작은 대답이 오늘 하루를 겨우 버티게 하는 마지막 끈이 되기도 한다. 누가 나 좀 안아줬으면 하는 날이 오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지만 어떤 이름도 떠오르지 않을 때 마음은 더 무겁게 흔들리고, 그럼에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이미 오랫동안 혼자 버티는 법을 배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 버팀은 어설프고 서툴러도 나를 지켜온 방식이었고, 그래서 오늘만큼은 스스로에게 조금 더 부드러운 말을 걸어도 되는 날이다.
“오늘은 진짜 힘든 날이야.”
그저 짧은 말일 뿐이고 위로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며 조언이라고 하기에는 소박하지만, 이 작은 문장 하나가 마음의 모서리를 조금 둥글게 만든다. 둥근 모서리는 내일을 향한 작은 틈을 만들고 그 틈 사이로 아주 희미한 빛이 들어오며, 그 빛은 크지 않아도 하루를 버틸 만큼의 온기를 품고 있다. 안아줄 사람이 없어도, 어깨에 손 올려줄 사람이 없어도 나는 오늘을 통과한다. 그리고 그 통과의 순간들에서 조금씩 살아나고 조금씩 앞으로 걸어가며 조금씩 내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누가 안아주지 않아도 마음은 계속해서 나를 끌어안고, 누구도 등을 두드려주지 않아도 나는 오늘도 내일도 천천히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