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시한부의 암환자가 되면 누구나 효심이 깊어진다. 지금까지 못해준 것들도 생각나고 엄마의 인생이 안쓰럽고 고생만 하신 것 같다. 그리고 지금까지 엄마에게 차갑게 말하고 자주 화를 냈던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효심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현실과 습관에 의해 사라져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거기다 자신의 현실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고 본인의 정신과 몸까지 아프다 보면 평소와 같은 자식의 모습으로 돌아가며 심하면 더 심한 불효자가 돼버리기도 한다.
나 또한 엄마의 소식을 알게 되면서 그런 효심이 깊어졌지만 그런 마음으로는 엄마를 일관되게 간병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남겨진 삶을 1년이라고 치면 평생 내가 할 수 있는 엄마에 대한 효도를 모으고 응축해서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보았다. 매일 내가 엄마를 위해 조금씩만 해주었던 따뜻한 말과 보살핌을 모으고 모으면 하루종일 엄마에게 최선을 다해야만 평생을 거쳐 평소의 내가 엄마에게 줄 수 있는 효도와 양이 같아질 것이다.
다리가 불편한 엄마를 위해 휠체어를 샀다. 매번 고관절 재활을 위해 걷는 것을 장려하고 두 다리로 힘차게 걷는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이제는 그 미래가 없음을 받아들였다. 무릎 양쪽 인공관절 수술과 고관절 골절로 인한 인공고관절치환술로 내가 썼던 에너지와 시간들이 보답을 받길 바랐지만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고 이렇게 가실 운명이 되었다. 이제 엄마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다가 병원에서 누워계시며 오랜 잠을 잘 것이다. 이것은 내가 거스를 수 없는 미래이다. 보통 자식들은 부모들이 늙고 병들어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왜냐면 부모는 항상 내가 기대기만 했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가 할머니가 되어가면서 귀가 멀어가고 눈이 침침해지고 다리를 절고 허리가 굽어가도 그 현실을 모른척한다. 보통 제삼자는 그것을 보며 자식이 참 부모에게 관심이 없다고만 생각하기 쉬운데 자식의 내면에 부모가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그 현실을 피하고 싶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엄마가 처음으로 지팡이를 집던 때, 틀니를 하던 때, 다시 임플란트를 하던 때, 귀가 잘 안 들려서 보청기를 하던 때에 그런 두려움을 느꼈다. 아무튼 이제는 엄마의 죽음이라는 확정된 미래를 생각해 보니 지금 엄마의 노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게 되기도 한 것 같다. 언제나 사람은 최악을 마주할 때 차악을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휠체어를 타다 보니 더위 때문에 휠체어용 선풍기를 사게 되고 휠체어 목받침, 경사로 진입 보조대, 우산 고정용 걸이 등도 사게 되었다. 하루에 3번 정도 집 주변 산책을 나갔다. 밥 먹기 전 산책을 좀 하고 엄마는 밥을 먹었다. 밤에 엄마가 잠을 들지 못하면 집 근처 카페에 같이 가서 차를 마셨다. 물론 이런 산책이나 카페데이트는 그전에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엄마가 부르면 언제든지 갈 수 있도록 식당에서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초인종 벨을 샀다. 엄마방에서 그 초인종을 누르면 거실에 놓아둔 수신기에서 벨이 울렸다. 그러면 내 방이나 거실에 있다가 엄마방으로 갈 수 있었다.
엄마는 본인의 삶을 살아갈 때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었고 그로 인해 불안이 많았다. 삶이 안정이 되어도 그 불안의 흔적은 늘 삶에 남아있었고 자식들을 믿으며 불안감을 조절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런 엄마의 불안감을 잘 알았고 지금 병이 생긴 이 시점에는 더 심해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그 불안감은 정신적인 것만이 아닌 치명적인 담도암의 신체적인 신호일 수도 있기에, 내가 충분히 관리를 해야 했다. 그래서 직장에 갈 때는 엄마와 계속 연결이 될 수 있도록 휴대폰 요금제를 무제한으로 바꾼 후 무선 이어폰으로 계속 엄마와 통화 중인 상태를 유지했다. 직장에서 들리는 소음이 들리겠지만 엄마와 나는 그렇게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연결이 되어 있을 수 있었다. 직장에서는 물론 평소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초기에는 직장을 휴직하려고 했었다. 그러다 직장을 유지하면서 일찍 마치고 엄마에게 가며 집이든 병원이든 엄마 근처에서 자는 것으로 생각을 정했다. 최대한 삶의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왜냐면 결국 내가 하는 행동은 엄마를 낫게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계속 상기했다. 내가 하는 행동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야만 하는 것이 미래에 엄마가 없는 삶에서 내 삶이 정상화되기 쉬울 것 같았다. 물론 먹는 것 운동하는 것 쉬는 것 등을 어느 정도는 포기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