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파 서러울 때

by 동이

몸이 아플 때면 세상이 조용히 멈춘 듯한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지만 가장 깊은 곳에서 흔들린다.
작은 통증 하나가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듯 느껴질 때도 있다.
몸이 보내는 신호는 종종 마음의 메아리를 불러낸다.
그 메아리는 어둡지도 밝지도 않지만 온기와 쓸쓸함이 함께 스며 있다.
아무도 모르는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다 보면 오히려 생각이 더 또렷해진다.
그 생각들은 쓸쓸함에서 태어나지만 이상하게도 따뜻하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이 더 섬세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섬세함은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나는 오늘도 그 작은 문틈으로 스며드는 감정들을 바라본다.

아플 때의 하루는 평소보다 더 길게 흘러간다.
시간은 무심하게 흐르지만 몸은 그 흐름을 따라가기 버겁다.
그럴 때 마음은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에 젖는다.
홀로 있다는 사실은 무겁지 않지만 외로움은 문득 찾아온다.
외로움은 때때로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지만 오래 머물 때도 있다.
그 바람은 차갑지 않은데도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흔들린 마음은 작은 말 한마디에도 쉽게 젖는다.
누군가의 다정한 숨결이라도 들리면 눈가가 금세 따뜻해진다.
그 눈물은 슬픔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외로움과 그리움이 포개진 자리에서 조용히 흐른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아프면 서럽다”고.
그 말은 단순한 위로처럼 들리지만 누구나 한 번쯤 깊게 체감하는 문장이다.
아픔이 찾아오면 우리는 생각보다 더 쉽게 무너질 수 있다.
그 무너짐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무너진 자리에서 우리는 우리의 진짜 속마음을 만난다.
그 속마음은 조용하고 차분하며 때로는 여린 목소리를 가진다.
그 목소리는 포기와는 다르다.
그 목소리는 살아 있으려는 마음의 작은 떨림이다.
나는 그 떨림이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아픔은 사람을 멈추게 한다.
멈춤은 때로 불편하지만 동시에 필요한 휴식이 된다.
그 휴식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지나쳐온 날들, 미뤄둔 감정들, 외면했던 마음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떠오른 감정들은 오래 묵은 책장처럼 서서히 펼쳐진다.
그 책장 속에는 잊고 지냈던 나의 얼굴이 숨어 있다.
그 얼굴은 어리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곧 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그 얼굴을 외면하지 않기로 한다.
아무 말 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조금씩 풀린다.
그리고 마음은 천천히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몸이 힘들면 주변 풍경도 달라 보인다.
창밖의 햇살은 어제보다 조금 덜 밝아 보인다.
공기의 온도는 평소보다 더 예민하게 느껴진다.
한꺼번에 들려오던 소리도 오늘은 멀게만 들린다.
하지만 그런 낯선 조용함 속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그 생각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랜 시간 준비된 것처럼 선명하다.
우리는 아플 때 비로소 마음의 속도를 낮춘다.
속도가 낮아지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세상의 모습이기도 하고 내 안의 풍경이기도 하다.
그 풍경들은 때로 서럽고, 때로는 아름답다.

누군가가 곁에 있어도 아플 때의 외로움은 줄어들지 않을 때가 있다.
그 외로움은 누가 대신 안아줄 수 없는 마음의 그림자 같다.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 나타난다.
그래서 아픔이 찾아온 날의 그림자에는 어딘가 빛이 함께 한다.
빛은 아주 작아도 마음을 조금 데워준다.
그 작은 온기가 때때로 하루를 버티게 한다.
온기는 말이 없어도 깊게 스며든다.
조용한 온기는 어떤 화려한 위로보다 더 오래 남는다.
그 남은 흔적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그 흔적을 소중히 여긴다.

아픔 속에서도 마음은 계속해서 말을 걸어온다.
그 말들은 투박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마치 오래된 친구가 속삭이듯 부드럽고 잔잔하다.
그 속삭임은 때로 나를 멈추게 하고, 때로는 다시 일으킨다.
나는 그 목소리를 따라 마음의 길을 천천히 걷는다.
그 길은 고요하지만 많은 감정이 오르내린다.
감정들은 멈추지 않고 흐르며 나를 채운다.
그 흐름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만난다.
만난 나의 모습은 예전과 닮았지만 조금 달라져 있다.
그 다름이 오늘의 나를 만든다.

오늘의 아픔이 내일의 나를 어떻게 바꿀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픔의 순간을 지나온 마음은 이전보다 더 깊어진다.
깊어진 마음은 더 느리고 더 따뜻해진다.
그 따뜻함은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은 온기의 형태가 된다.
우리는 모두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
몸이 아플 때 스며드는 감정들은 결코 헛되지 않다.
그 감정들은 나를 다시 세우기 위한 작은 기초가 된다.
나는 그 기초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을 살한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인다.
“지금 이 마음이 나를 데리고 여기를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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