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고 싶은 너에게 보내는, 낯선 바람의 초대장

by 동이

어느 날 문득, 세상의 모든 소음이 차단된 것처럼 고요해질 때가 있습니다. 분명 알람 소리에 눈을 떴고, 창밖에는 차들이 지나다니는데 내 마음속엔 텅 빈 바람만 붑니다. 익숙한 천장을 바라보며 몸을 일으키는 일이 마치 천근만근의 돌을 들어 올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아침.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이 타인처럼 낯설어 보일 때. 우리는 입버릇처럼 중얼거리곤 합니다.

"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혹은,

"그냥 이대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그 마음, 너무나 잘 압니다. 마치 투명 인간이 되어 세상의 궤도에서 슬쩍 빠져나오고 싶은 그 간절함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그 마음을 자신을 향한 비난으로 삼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건 당신이 나약해서 도망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아닐 겁니다.

오히려 그건, 지금과는 다르게 살고 싶다는 가장 뜨거운 외침입니다. 무채색으로 변해버린 일상에 다시 선명한 색을 입히고 싶다는 영혼의 투쟁입니다. 당신의 안쪽 깊은 곳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당신에게 보내는 간절한 신호인 셈입니다. '지금, 나는 살아있고 싶다'라고 말하는 생명의 박동입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같은 풍경 속에 갇혀 살았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길을 걷고, 같은 표정을 짓는 사람들 틈에 섞입니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을 견디며, 그것을 성실함이라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물론 버티는 삶은 숭고합니다. 그러나 버티는 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가끔은 익숙한 인력이 작용하는 궤도를 과감히 이탈할 필요가 있습니다. 항상 머리 위에 떠 있던 익숙한 천장 대신, 낯선 도시의 하늘을 당신의 눈동자에 담아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당신 스스로에게 건네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자 선물입니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가방을 꾸리십시오. 무거운 짐은 필요 없습니다. 그저 가벼운 옷가지 몇 벌과 읽다 만 책 한 권, 그리고 용기 한 줌이면 충분합니다. 지도 앱을 켜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걸을 수 있는 낯선 거리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공항의 북적이는 소음 속에 섞여 들어갈 때의 그 묘한 해방감을 기억하시나요. 혹은 기차의 덜컹거리는 진동이 등 뒤로 전해질 때의 설렘을 떠올려보세요. 내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는 곳에 떨어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나'와 마주하게 됩니다. 타인의 기대나 시선으로 덧칠해진 내가 아닌, 날것 그대로의 나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낯선 도시의 바람은 당신의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그저 당신의 뺨을 스치고 지나갈 뿐입니다. 그 무심하고도 다정한 바람 속에서 걷다 보면, 엉켜있던 생각의 실타래가 스르르 풀리는 순간이 옵니다.

"아, 별것 아니었구나."

그토록 나를 괴롭히던 고민들이 실은 저 거대한 풍경 속에 놓인 작은 점 하나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책상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어도 보이지 않던 답들이, 낯선 골목의 모퉁이를 돌 때 불현듯 떠오르기도 합니다. 익숙한 곳에서는 들리지 않던 내면의 목소리가 낯선 고요 속에서는 선명하게 말을 걸어오기 때문입니다.

잠시 길을 잃어도 괜찮습니다. 아니, 오히려 길을 잃어야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있습니다. 예정된 경로를 이탈했을 때 마주치는 우연한 아름다움이 여행의 진짜 묘미니까요. 인생도 그러합니다.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추락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넓은 우주를 유영할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낯선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의 웅성거림이 배경음악처럼 깔리는 순간. 이방인이 된 당신은 역설적으로 가장 편안한 소속감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 좁은 방보다 훨씬 넓고 광활합니다. 당신이 겪고 있는 슬픔보다 바다는 더 깊고, 당신이 짊어진 불안보다 하늘은 더 높습니다.

그 광활함 앞에 서면 우리는 겸손해지고, 동시에 강해집니다. 나를 짓누르던 무게가 실은 내가 놓지 못해 쥐고 있던 것임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은 당신에게 가르쳐 줄 것입니다. 당신은 생각보다 잘 웃는 사람이고, 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며, 걷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요.

그러니 죄책감 갖지 말고 떠나십시오. 당신을 기다리는 업무나 의무감은 잠시 내려두어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건 성실한 출근이 아니라, 낯선 공기의 냄새입니다. 폐부 깊숙이 새로운 계절의 냄새를 들이마시고 나면, 당신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도피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도망치듯 떠난 그곳에서, 당신은 분명 다시 뜨겁게 살고 싶은 이유를 찾아 돌아올 테니까요. 떠남은 결국, 더 잘 돌아오기 위한 긴 도움닫기입니다.

티켓을 끊으세요. 그리고 신발 끈을 고쳐 매세요. 문밖으로 한 발자국을 내디디면, 그때부터 당신의 세상은 확장되기 시작합니다. 바람이 불어옵니다. 당신을 부르는 소리입니다.

"어서 와, 이곳은 처음이지?"

그 낯선 인사에 환하게 웃으며 답해줄 준비가 되었나요. 당신은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세상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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