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위로가 와닿지 않을 때

by 동이

세상의 모든 언어가 텅 빈 메아리처럼 느껴지는 밤이 있습니다. 그 밤은 유독 차갑고, 어떤 온기조차 받아들이기를 거부합니다. 따뜻한 위로의 말들이 귓가에 닿기도 전에 유리 조각처럼 부서져버리는 시간입니다. 당신은 괜찮을 거예요, 곧 나아질 거예요, 라는 긍정의 문장들은 오늘은 차라리 잔인한 거짓말처럼 들립니다. 마음이 너무 굳게 닫혀서, 외부의 어떤 빛도 틈입할 수 없음을 스스로 압니다. 이것은 슬픔이라기보다는, 모든 감각이 마비된 듯한 무중력 상태에 가깝습니다. 손을 내밀어 보지만, 그마저도 무의미하게 허공을 가를 뿐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밝고 활기차지만, 그 모든 활력이 나에게는 먼 별의 소식처럼 아득합니다. 그저 모든 것이 잠시 멈추기를, 이 고요한 붕괴가 나만의 일로 끝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모든 위로가 튕겨져 나가는 날, 마음은 미아가 되어 길을 잃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타인의 시선과 기대를 맞추기 위해 내면의 톱니바퀴를 과도하게 돌려왔습니다. 남의 기분에 내 표정을 맞추고, 남의 슬픔에 내 감정을 조율하느라 정작 내 안의 에너지는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나는 늘 타인의 감정선을 향해 겨누어져 있었습니다. 그 긴장의 시간이 너무 길어서, 이제는 쉬라는 말조차 명령처럼 들립니다. 억지로 이 감정을 털어내려 애쓰는 것은, 이미 지쳐버린 심장에 다시 채찍질을 가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은 그 어떤 의미도 찾으려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유를 분석하는 일도, 내일은 꼭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도 모두 내려놓습니다. 무기력함 그 자체가 오늘의 진실임을 인정하는 순간이 필요합니다. 이 무거운 마음을 억지로 가볍게 만들려 하지 않는 것이 역설적으로 가장 깊은 위로가 됩니다. 모든 것을 차단하고 싶은 절실한 욕구가 온몸을 지배합니다.

이제는 세상의 모든 스위치를 끄고 싶습니다. 밝게 빛나는 바깥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가장 안전한 나의 영역으로 퇴각합니다. 푹신한 이불은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라, 외부의 모든 자극을 흡수하는 방음벽이 되어줍니다. 이불 틈으로 깊이 숨어들어, 나는 잠시 세계로부터 사라집니다. 누구에게도 친절할 필요가 없고, 아무 표정도 지을 의무가 없는 이 완벽한 고립 속에서 안도감을 느낍니다. 이 공간은 나만의 침묵을 위한 성역입니다. 무거운 마음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더 이상 그것을 짊어지고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됩니다. 이불 속의 어둠은 낯선 것이 아니라, 나를 품어주는 따뜻한 유모의 그림자 같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모든 책임과 역할에서 벗어나, 그저 호흡하는 하나의 존재로만 머무릅니다. 나를 짓누르는 무게를 느끼지만, 이제는 그 무게와 싸우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은 가장 폭력적인 감정입니다. 모든 문제는 반드시 풀려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는 지친 영혼에게는 독약과 같습니다. 오늘은 그 폭력적인 강박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날입니다. 아무것도 바꾸려 하지 말고, 아무것도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흐르는 시간 위에 몸을 눕힙니다. 시간은 마치 강물과 같아서, 내가 애쓰지 않아도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나는 그 강물 위에 떠 있는 작은 나뭇잎이 되어, 물결이 이끄는 대로 표류합니다.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유일한 소리는 나의 심장 박동과 시계 초침 소리뿐입니다. 그 느린 소리들이 불안했던 마음을 조금씩 진정시킵니다. 나만의 속도로 가라앉는 이 평화로운 행위가 내일의 나를 위한 가장 진실한 준비입니다.

이 침묵의 시간은 패배가 아니라 재충전의 의식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 잠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기 위해 멈춥니다. 아무에게도 해명할 필요 없는 나의 고독은 이토록 충만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텅 빈 감각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 텅 빈 공간이야말로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는 가능성의 여백입니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이것이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굳이 밝은 척 위장할 필요도, 활기찬 척 연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이 순간의 무력함 속에서 조용히 휴식할 뿐입니다. 외부 세계를 향한 문을 닫고, 내부의 작은 불빛 하나만 남겨둡니다. 그 불빛은 나를 위한 것이며, 나를 지키기 위한 고독한 신호탄입니다.

누구나 이런 날들을 통과합니다. 어쩌면 이 감정은 나만을 위한 비밀스러운 의무감일지도 모릅니다. 너무 열심히 살아온 당신의 영혼이 잠시 로그아웃을 요청하는 중입니다. 모든 접속을 끊고, 이제는 내면의 OS를 다시 부팅할 준비를 합니다. 외부의 소리 없이 내 안의 목소리만을 듣는 법을 배웁니다. 그 목소리는 아주 작고 희미해서, 온전한 침묵 속에서만 들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참아왔는지 조용히 속삭여줍니다. 그러나 그 속삭임 속에는 "잘했어"라는 위로도, "힘내"라는 독려도 없습니다. 오직 "이제 쉬어"라는 단 하나의 진실만이 존재합니다.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것은 내일의 문제입니다.

창밖의 공기는 여전히 차갑지만, 이불 속 공기는 따뜻한 정체 상태를 유지합니다. 나는 이 정지된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복원합니다. 몸의 모든 근육이 느슨해지고, 긴장했던 어깨가 비로소 바닥으로 내려앉습니다. 마음에 쌓여 있던 모래알 같은 피로들이 서서히 침전됩니다. 잠시 동안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존재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든 정체성을 잠시 유보합니다. 그저 이불의 무게와 부드러운 촉감만을 느낍니다. 이것이 나를 치유하는 가장 은밀하고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어쩌면 위로란 타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허락하는 이 절대적인 멈춤일 것입니다. 멈춤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형태의 전진이 됩니다.

흐르는 시간 위에 가만히 누워 있는 동안, 나는 텅 빈 나를 느낍니다. 이 텅 빔은 곧 채워질 공간이 될 것임을 희미하게 예감합니다. 내일 아침, 스위치를 켜고 다시 세상으로 나설 힘을 비축합니다. 그때의 나는 오늘 밤의 침묵을 기억할 것입니다. 튕겨져 나갔던 모든 위로의 말들은, 사실 이 침묵을 통해 비로소 제자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침묵 속에서 정화된 마음은 비로소 타인의 말을 따뜻하게 수용할 준비가 됩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이불 속에서 깊이 안식하세요. 당신의 영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세상의 위로가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에게 주는 시간입니다. 깊은 침묵 속에서 다시 태어날 당신의 아침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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