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들어가긴 전 짧은 글
유치원 때부터 직접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게 되기 전까지, 내가 저녁밥을 먹는 시간은 항상 밤 9시였다.
부모님이 맞벌이였기에 나는 늘 하교 후 밤 9시까지 집에 혼자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으로 인해 맞벌이를 뛰어도 빠듯했던 부모님은 좀처럼 일찍 퇴근하는 법이 없었고, 시금치처럼 축 처져 집에 온 아빠는 넥타이도 풀지 못한 채 주방으로 가 냉동 동그랑땡과 계란 프라이를 구워주셨다. 하루 중 마주 앉는 유일한 시간임에도 그 흔한 ‘오늘 뭐 했냐’는 질문은 오가는 법이 없었다. 어차피 둘 다 일과가 늘 똑같았기 때문이다. ‘기상 후 죽도록 일하기’와 ‘하교 후 죽도록 혼자 있기.’ 그래서 서운해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아빠나 나나 밥은 꿀떡꿀떡 잘 넘어갔다. 아빠는 드디어 일이 끝났고, 나는 드디어 혼자 있기가 끝났으니까.
성장기에 9시까지 굶어도, 배가 허기진 것보다 마음이 외로운 게 더 고통스러웠다. 그때 깨달은 건 외로움은 잠수 같다는 것. 외로운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버티기 힘들고 괴로웠다. 그렇게 싫어하던 방과 후 독서 돌봄 교실을 신청하게 된 이유도 외로움과의 잠수 대결에서 백기를 들고 나서다. 하교 후에도 학교에 남아있어야 하는 건 억울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좀 줄어든다는 게 좋아 꼬박꼬박 출석했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여기는 외로운 애들만 다니는 거야.”
돌봄 교실에 다닌 지 2주 정도 지났을 때, 점차 눈에 익기 시작한 옆자리 여자애가 속삭였다.
“왜?”
“가난한 애들만 다니니까.”
“누가 그래?”
그 애는 더 바짝 붙어 속삭였다.
“쌤들이”
*
“엄마. 외로우면 가난해?”
“아니.”
“그럼 가난하면 외로워?”
“...“
퇴근 후 뻗어버린 엄마를 나는 한참 동안 괴롭혔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 애의 말이 틀렸다고, 완강히 말해줬으면 했다. 바라던 것과 달리, 엄마는 침묵했고. 그 침묵은 예스보다 더 큰 예스로 다가왔다. 더욱 애가 타 엄마의 팔뚝을 살짝살짝 꼬집으며 답을 보챘다.
“몰라!!!”
엄마의 고성에 놀라, 나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에겐 방 대신 옷장 문짝을 뜯어 만든 칸막이가 있었는데, 그 뒤로 숨어 엉엉 울었다. 놀란 마음에 터진 울음인지, 아니면 모른다는 말이 맞다는 말처럼 다가와 서러워 터진 울음인지.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은 알 수가 없다.
그 뒤로 며칠간 울다 지쳐 잠에 들었다.
사실 흔한 일이었다. 그때 나는 엄마 아빠의 자는 모습을 구경하는 걸 좋아했고, 그렇게 조용히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꼭 눈물이 났기 때문이다.
‘그럼 있잖아. 가난하면 외로운 거면, 우리 엄마 아빠는 외롭겠네. 나처럼 외롭겠네.’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사실보단,
가난하니까 외로울 우리 엄마 아빠 생각에 더 슬펐다.
가난은 잘 몰라도, 외로움은 너무 빠삭하게 아니까.
그땐 역시 허기보다 외로움이 더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