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자꾸 확인받고 싶은 마음에 대하여
“똥 누러 다녀오느라 놓쳤어요.”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교문 앞에 서서 우산을 꺼내고 있었는데, 2학년쯤 돼 보이는 남자애가 다가와 대뜸 얘기했다. 그러곤 엉덩이를 벅벅 긁으며 멍한 얼굴로 비에 젖은 운동장을 바라봤다. 똥을 눈다는 표현이 구수해서 웃음이 나왔다. 초등학교에서 늘 나를 놀라게 하는 건 바로, 아이들의 서슴없는 tmi이다. 가령 자기 통장에 30만 원이 있다거나, 아빠 왼쪽 엉덩이에 건포도만 한 점이 있다거나 같은….
“뭘 놓쳐?”
“똥 누러 다녀왔더니 우산 씌어주기로 한 친구가 가버렸어요.”
그 의리 없는 친구는 누구더니. 아이는 손을 내밀어 빗물을 받아보곤 차가운지 금방 탈탈 털어냈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점점 멀어지는 다른 우산들을 바라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괜히 우산을 폈다 접었다 했지만, 역시나 내 우람한 덩치 한 몸 들어가도 감지덕지했다. 어떤 낭만 없는 인간이 이렇게 작은 우산을 만들었을까.
인제와 솔직하게 말하지만 모른 척 퇴근하고 싶었다.
“이름이 뭐야?”
“준이요.”
“집이 어디야?”
“저기요.”
준이가 가리킨 곳은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아파트 단지였다. 나는 데려다준다고 말했고, 그 애는 내 손 꼬옥 잡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함께 교문을 나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빗줄기가 더욱 거세졌다. 왠지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솟구쳐 잔뜩 긴장한 채 걸었다. 아이와 함께 걸으니 어쩐지 세상이 더욱 험난하게 느껴졌다. 오늘따라 도로 위 차들이 더 씽씽 달리는 것 같았고, 폭우에 흔들리는 간판도 너무 위험해 보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천둥까지 목청을 내기 시작했다. 천둥이 칠 때면 준이는 무섭다고 소리를 질렀고, 나는 그런 준이가 더 무서웠다.
겨우겨우 아파트 단지 입구에 도착했을 땐, 우산을 같이 나눠 썼다는 말이 무색하게 나만 흠뻑 젖어있었다. 걷는 동안은 아이에게 온 신경이 쏠려 그렇게 처참히 젖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래도 뽀송뽀송한 준이를 보며 그럼 됐다 하고 안심할 찰나였다.
준이는 한 아파트에 다다르자마자 내 손을 홱 놓고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빗줄기가 차다며 금방 손을 털던 아이는 어디 갔는지, 개구리처럼 폴짝폴짝 물웅덩이 위를 뛰어다녔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안돼!!!! 갑자기 왜 그래 준이야!!!”
준이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포다닥 물을 털었다. 그러곤 어깨를 잔뜩 모은 채로 환히 웃으며 얘기했다.
“엄마 보여주려구요! 헤헤헤.”
헤헤헤?
그 애가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 나는 멍하니 준이의 홀딱 젖은 뒤통수를 바라봤다. 그제야 여름비의 추위가 느껴졌다.
그 날밤. 나는 여름 감기를 앓았다.
여름 초에 내리는 비는 다른 계절에 내리는 비보다 찼고, 하필 나는 추위에 취약한 사람이라는 게 문제였다. 준이 고놈... 감기까지 걸리며 애써 데려다줬더니 홀딱 젖어버린 그 애가 쬐끔 원망스러웠지만, 미워할 수 없었던 건 준이가 폭우 속으로 뛰어든 이유를 나는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 나는 우산이 있어도 줄곧 맨몸으로 폭우 속을 걸었다.
집에 도착하면, 엄마는 찌개를 끓이다 말고 달려와 뽀송한 수건으로 내 팔뚝과 종아리에 묻은 빗물을 꼼꼼히 닦아냈다. “우산이 없었으면 친구랑 나눠 쓰지 그랬어. 엄마가 데리러 갈 걸 그랬네. 다른 엄마들은 데리러 왔어?”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그저 속상하다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우산이 숨겨진 가방을 꾸욱 끌어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비를 맞은 날이면 엄마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수시로 깨어 내 이마에 손을 댔다 뗐다 하며 열 체크를 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그게 더 사랑 같았다. 더 사랑이라 믿을 만했다. 자꾸자꾸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유년 시절의 못된 나는 자꾸자꾸 폭우 속으로 뛰어들었고, 그래서 엄마는 자꾸자꾸 잠을 설쳤다.
그러니 나는 준이를 미워할 자격이 없다.
어리고 건강해 온몸으로 폭우를 받아내고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던 그때와 달리, 늙고 병든 지금의 나는 가랑비에도 덜컥 감기에 걸려 고생한다.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는 더욱이 서럽다. 아무래도 쉰 목을 일부러 더 긁으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철부지 딸은 폭우를 맞은 날이면 아직도 엄마의 걱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