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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의 사소한 긁적임 Nov 20. 2021

아이들에게 '힘'의 힘을 가르치자

힘의 균형의 중요성

 예능을 잘 챙겨보지 않는 내가 간간히 챙겨보는 것이 있는데, 바로 금쪽이(금쪽같은 내새끼)다. 교육계에 있다보니 아이들의 행동문제에 관심도 많고, 오은영 박사의 조언에서 배울 것들도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보면서 갸우뚱거릴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엥? 엄마가 저렇게 한다고 애가 저렇게 된다고? 이면에 뭔가가 또 있었겠지, 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을 때가 많은데, 아이의 복합적인 행동문제와 원인을 이루는 부모의 행동이 60분 안에 담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미묘한 감정선, 부모의 유년시절 상처 그리고 아이의 기질 모두를 설명하고 분석하는 데에는 상담 10회기로도 어려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화는 어떻게 해서든지 박제해두고 싶었다. 이번 화는 엄마를 극도로 싫어하고, 거부하며 아빠와 할머니한테는 끔찍하게 달라붙는 아이에 대한 내용이였는데, 정말 추후 학교폭력 예방교육 자료로 쓰일 수 있을만큼 폭력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는 이야기가 담겨져있었다. 초반에는 엄마가 아이에게 다가가기만 해도 아이는 오열을 하며 자신을 만지지 말라고 하고, 엄마랑 같이 못살겠다고 하며 할머니에게 엄마를 죽이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한다. 그리고, 부부사이에서 아이의 아버지는 엄마가 노력하지 않고 있다, 엄마가 대화하려 하지 않고 있다 등 엄마의 사랑과 노력의 부재에 대해 굉장한 답답함을 표한다. 후반에는 엄마, 아빠, 아빠의 엄마, 그리고 아이가 넷이서 밥을 먹는데, 아이는 엄마의 핸드폰 번호가 저장이 되어있지 않다, 010으로밖에 안되어있다며 엄마를 조롱하고 남편과 할머니는 그것에 대해 같이 웃는다. 그리고 엄마가 밖에 나갔을 때, 남편은 아이와 할머니에게 아내는 아이에게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몸매 만드는 데에만 신경쓴다고 불평한다.


이에 대해 오은영박사는 가족 내에서 힘의 균형이 완전 깨진 상황에서 아이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힘이 강한 아빠와 할머니에게 붙는 것이고 그 수단은 엄마를 싫어하는 것이 된 거라고 이야기한다. 엄마가 왜 싫은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없으나, 자신이 아빠와 할머니에게서 선택받기 위해서는 공공의 적인 엄마를 싫어하고, 거부해야 하는 것이다. 오은영 박사의 조언에 남편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굉장히 불편한 내색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신도 아내의 서투른 표현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아내가 노력하지 않아 답답하다고 또 한번 표현한다. 게다가, 남편은 아내의 장점에 대해 아이와 얘기해보라는 미션에서, 아이와 "너무 힘들지? 맞아, 아빠도 장점찾는게 너무 힘들었어"라고 까지 얘기하며,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조언이 엄마의 몸매라고 한다. (분노)


아이의 가족이 식탁에서 이야기하는 장면은 나에게 불편하지만 익숙한 장면이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지 않는 아이들의 교우관계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생존의 논리가 작용한다. 어떤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고, 어떤 집단에 소속을 하여야 나의 안전이 담보될까. 이러한 질문을 끝없이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학창시절을 보내게 된다. 부모와 안정적인 애착관계에 있는 아이들은 이미 안전에 대한 담보가 가족으로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과 대화하고,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에 있어서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부모와 애착관계가 조금 불안정한 아이들은 안전한 소속을 위해 정말 물불가리지 않고 온갖가지 작전을 활용하여 친구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한다. 노력의 일환으로는 뒷담화, 귓속말, 좋아하는 친구한테만 선물주기, 좋아하는 친구들끼리만 단톡방 만들기 등등 아주 온갖가지이다. 이러한 사소한 것들로 끝나면 정말 다행인데, 부모와 애착관계가 굉장히 불안정한 아이들은 자신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해하는 정도까지의 행동을 보인다. 경험상 다른 사람이란,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준 사람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피해를 줄 수 있는, 자신보다 약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 아이들은 자신의 지위=자신이 무서운 정도 라는 사고방식을 잠재적으로, 하지만 굉장히 강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담임교사로서 다양한 학교폭력 사례를 마주하고 정말 다양한 학부모들과 상담을 하게 되는데, 다른 학생에게 의도적으로 피해를 준 학생들의 학부모들은 최대한 심층적으로 상담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이 학부모들이야말로 정말 상담을 받아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정말 다양한 사례가 있다. 갑작스럽게 남편을 여의어 혼자 아이를 키우게 된 학부모, 또는 심각한 가정폭력이 존재하는 상황이나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같이 계속 살고 있는 학부모(이 부분이 제일 많음), 아내와 별거중이고 아픈 노모를 모시며 사는 학부모 등... 정말 사연이 많다. 그런 사정으로 인해 부모 스스로의 자존감이 현저하게 낮은 상태를 유지하고, 자식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가장 심각하고, 가장 대하기 어려웠던 부모는 폭력이 내면화되어있는 부모였다. 폭력이 내면화되어있다는 것은, 자신이 가하는, 또는 당하는 폭력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며 아이에게 폭력 상황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상태이다. 이런 부모는 정말, 백이면 백, 가족 내에서의 힘의 균형이 와르르 깨져있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힘의 크기가 달라야, 강한 자가 연약한 자를 더 쉽게 통제할 수 있고 연약한 자는 더 쉽게 자신을 하찮게 생각하며 폭력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 있는 부모는 정말 상담하기 힘든 것이, 아이의 폭력적 행동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고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굉장히 강하게 방어기제를 표출하곤 한다. 자신도 폭력의 언어로 살아왔기도 했고, 아이의 행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기 시작하면 자신의 인생 자체에 대한 부정을 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 현장도 동일하다. 학교 폭력에는 굉장히 다양한 사례들이 있으나, 가장 피해정도가 크고, 관계가 회복되기 어려운 사안은 항상 관련 학생들 간의 힘의 균형이 심각하게 깨져있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예를 들면, 반에서 친구 7명과 항상 함께 다니는 아이 A가 있다. 이 아이 A는 카리스마도 있고, 유머감각도 있고, 아이들이 대체적으로 좋아하는 문화(아이돌, 화장, 유튜브 등)를 알고 있어 친구들이 많이 따른다. 그런데 다른 아이 B는 소극적이고, 말수도 없는 데다가 주류문화가 아닌 취미를 가지고 있어 친구가 1~2명 있을까 말까 한다. 만약에, A가 실수로 B를 쳤다고 하자.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A는 실수로 그랬어 미안~이라고 할 것이고 B는 표정은 좋지 않지만,  A친구 7명이 모두 쳐다보는 상황에서 성질낼 수는 없으니 응~ 하고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서, B가 실수로 A를 쳤다고 하자.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A는 표정이 살짝 안좋아질수 있고, 심각성을 느낀 A의 친구 7명은 일제히 B를 쳐다볼거고, B는 쭈뼛쭈뼛하거나 너무 당황스러워 말실수를 할 수도 있다. 것이 바로 힘의 차이이다. 한 사람의 행동의 파급력이 바로 힘인 것이다. 가장 심각한 학교폭력 사안은 A가 B를 어떤 이유로 인해 싫어하게 되고, A의 친구들도 함께 B를 싫어하게 되는 상황이다. 심각한 이유는, 뚜렷한 이유 없이 A의 친구들이 B를 싫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유가 없는 폭력은 중재로 인해 해결할 수 없다. B는 자신을 싫어하게 된 이유를 모르는 채로 폭력을 경험하게 되고, 이는 성격 형성에 굉장한 혼란을 준다. 학교폭력 사안에는 친구들 사이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우가 많아 이렇게 단순화될 수는 없지만, 폭력의 핵심은 힘의 균형이다.


이런 힘의 균형을 수치화할 수 있는 도구가 있으면 정말 좋겠지만, 이런 디지털 선진화 시대에도 그런 기계는 없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힘', '권력'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배울 수 있도록 꾸준히 교육하는 수 밖에 없다. 단 한명의 아이도, '나는 학교폭력을 해야지' 다짐하고 다른 아이들을 해하는 아이는 없다(심각한 성격장애 제외하고). 우리와 비슷하게, 아이들도 안전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절박하게 소속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폭력을 행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머릿속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이 어느정도 되는지 항상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교육해주어야 한다. 나는 담임교사로서 아이들을 처음 만난 날 하는 이야기가 권투 이야기이다. 헤비급과 라이트급은 경기에서 붙게 하지 않는다. 왜? 붙어봐야 헤비급이 이길 것이 뻔하고, 라이트급은 심각하게 다칠 것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이유로 자신이 헤비급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이 다투었을 때 이길 것이 뻔한 싸움을 시작하는 것은 굉장히 비겁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어차피 이길 싸움을 하는 것은 상대방을 해하고자 하는 목적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담임교사를 하며 교우관계를 매우 유심히 관찰하고, 누가 힘이 센지, 아이들이 누구의 말을 잘 듣는지 파악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 친구들이 힘의 개념을 이해한다면, 그 해는 대체적으로 무난하게 흘러가지만, 그 친구들이 힘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반은 분위기가 아주 어그러지곤 하더라.


이번 금쪽이 화를 보면서 아이에 대한 걱정이 아주 많이 되었다. 아이가 자신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잘 못하는 것을 보면서, 이 아이는 폭력의 언어에만 의존하고 익숙해왔던 아이라는 것을 보면서, 교우관계에서 조금의 불안이라도 생기면 문제행동을 보일 것 같았다. 여지껏 만났던 비슷한 여학생 몇 명도 기억나기도 했고 말이다. 사실 힘의 균형이 와르르 깨져있는 상황에서 다시 균형을 되찾기는 굉장히 힘들다. 힘을 많이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이 잘했기 때문에 그 힘을 가지게 된거라고 생각하며 자아도취되어있기 때문에, 힘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자신의 힘을 나눠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행복한 아이로 자라나게 하기 위해 엄마가 용기를 가지고 그 집에서 나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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